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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도 서민도 안쓴다…'소비한파 최악'

후암동남산 2012. 11. 16. 18:47

소비심리가 최악이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저소득층이건 고소득층이건 모두 지갑을 닫고 있다.

소비 증가세가 주춤해지면서 백화점, 할인점 등 유통업체들은 울상이다. 매출 감소세가 수 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최근 1년 새 급증한 자영업자의 타격도 크다.

국내 경제의 50%를 떠받치는 소비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국내 경기의 찬바람이 더 거세지고 있다. 수출, 투자 전망도 불확실한 상황에선 정부의 재정지출이 해법이지만 정권 교체를 앞둔 상황이어서 당분간 실행 가능성은 낮다.

◆ 소득 3분위 제외하고는 모두 소비지출 감소…이자 등 비소비지출 부담은 ↑

지난 3분기 소비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 증가하는데 그쳤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직후인 2009년 1분기(-3.6%) 이후 3년2분기만에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같은 기간 소득 증가율(6.3%)에는 한참 못 미친다.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평균소비성향도 2분기 연속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소득 분위별로 보면 경기 악화 영향을 크게 받는 저소득층의 증가율이 급둔화했다. 올 3분기 최저 소득층인 1분위의 소비지출 증가율은 1.2%로 전분기(7.1%) 보다 6%포인트 가까이 급락했다. 전분기 3.7% 증가했던 2분위의 소비지출은 0.9% 감소세로 전환했다. 3분위의 경우 0.2% 증가하며 전분기(-0.1%) 보다 개선됐으나 그 폭이 미미했고, 중산층 이상인 4분위(3.2%→0.0%), 5분위(5.1%→3.1%)의 소비지출 증가율도 나란히 둔화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이 금융위기 수준으로 떨어진 게 아님에도 소득 증가율이 크게 둔화한 것은 '경기가 당분간 좋아질 일이 없다'는 전망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소득층마저 지갑을 닫는 등 '일단 절약하자'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자ㆍ세금ㆍ국민연금 등 경직성지출인 비소비지출이 크게 늘어난 것도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비소비 지출 증가율은 올 3분기 6.1%로 전분기(3.2%)보다 두 배 가까이 확대됐다. 비소비지출 금액은 79만2000원으로, 2003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계소득(414만2000원)의 20%에 해당한다.

김윤기 대신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고령화 영향으로 의무적으로 나가는 비소비지출은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는데, 경기 악화까지 맞물리면서 소비 지출에 타격을 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지갑 닫는 소비자…백화점 등 '죽을 맛'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면서 백화점과 할인점의 매출은 수개월째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지식경제부 등에 따르면 백화점 매출액은 올 10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로 5개월 연속 감소했다. 할인점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할인점 매출액은 올 4월부터 8월까지 계속 줄었다가 9월에 0.2% 반짝 증가한 뒤 10월에 다시 7.4%의 감소세를 보였다. 승용차 내수 판매량은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넉 달 연속 줄었다.

소비자들의 향후 6개월간 경제 전망을 반영하는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달까지 석 달 연속 기준치인 100을 밑돌고 있다. 이 지수가 100보다 낮다는 것은 경제 전망을 좋지 않게 보는 소비자가 좋게 보는 소비자보다 더 많다는 것을 나타낸다.

주택 시장 부진, 가계부채 부담 뿐 아니라 최근 대기업의 희망 퇴직이 급증하는 등 인력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것은 향후 소비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이은미 삼성경제연구원 수석 연구위원은 "경기 호전에 따른 소득 증가, 금융시장 개선 등 제반 여건이 나아져야 소비 심리가 개선될텐데 상황이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 GDP 큰축 소비 둔화하면 뭐가 떠받치나

소비가 국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 가량이다. 만약 소비 둔화세가 지속된다면 투자, 수출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현실은 여의치 않다. 올 3분기 설비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 감소, 두 분기 째 마이너스를 지속하고 있다. 수출이 지난달 넉 달만에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증가율은 1.2%에 그쳤다. 한은 관계자는 "민간 소비가 위축되고 다른 부분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GDP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비와 투자가 줄면서 내수가 타격을 받을 땐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대선이 눈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당장 실현 가능성은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재정지출을 바로 확대하기도 어렵다.

대외 여건도 안갯속이다. 최근 미국 경제지표가 개선 추세를 보이고, 중국은 새 지도부를 맞이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됐지만 미국의 재정절벽 문제는 여전히 큰 변수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재정절벽이 현실화되면 내년 국내 경제성장률이 당초 전망치 3.5%보다 0.5%포인트 낮은 3%에 머물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윤기 실장은 "재정절벽 리스크로 내년 1분기까지 경기는 현재와 비슷하게 좋지 않을 것"이라면 "내년 상반기까지 저성장 기조가 이어진다고 하면 소비 역시 마찬가지의 패턴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