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남산이야기

주택대출 갚는 데 월급 쏟는 "빚쟁이 나라 국민"

후암동남산 2011. 1. 13. 22:39

주택대출 갚는 데 월급 쏟는 ‘빚쟁이 나라 국민’

[한겨레] [창간 22돌 기획 대논쟁] 3부:정책을 말하다-경제


① 덫에 빠진 한국 경제- 부채의 덫


2008년 9월15일 세계 4대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보호 신청은 전세계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했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국의 자본시장과 부동산시장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금융위기는 곧바로 실물위기로 이어져 각국의 산업생산이 급감하고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경제 전문가들은 신자유주의주주자본주의의 종언을 선언하며 이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체제를 찾기위해 골몰하고 있다.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막차를 탄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구체제의 복원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무분별한 세계화와 양극화의 병폐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성장 위주의 시장만능주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감세와 규제완화, 저금리와 고환율을 통한 수출 대기업 위주의 성장전략이 바로 그 증거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주는 교훈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이에 < 한겨레 > 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경제 운용에 따른 경제 상황과 구조의 변화를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진보적 경제정책과 과제를 찾아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직장생활 12년째인 김정수(가명·42)씨는 대출금 상환에만 한달에 210만원이 들어간다. 홑벌이이긴 하지만 월 평균 봉급이 600만원으로 적지 않은데도 가계 수지는 늘 빠듯하다. 수입의 30%를 빚 갚는 데 쓰고, 두 아이 교육비와 생활비 등을 빼고 나면 저축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 김씨는 이게 모두 아파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07년 2억원 넘게 대출을 받아 용인의 아파트 한 채를 '질러버린' 것이다. 처음 1년 동안은 집값이 올라서 행복했다. 가계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서 점점 대출금 상환이 버거워졌다. 집을 팔려고 내놨지만 이제 보러 오는 사람도 없다. 그는 지금 공포감에 빠져있다.

비단 김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는 10년 동안 중산층 가계에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부채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지난 2001년 처음으로 벌어들이는 돈보다 부채가 더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벌어졌고, 이후 해마다 그 격차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비율은 2007년 이후 '서브프라임의 나라' 미국을 앞질렀다. 저축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5위에 그칠 정도로 떨어져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에는 가계수지가 더 악화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조사를 보면, 2009년 6월 말 현재 전국 주택소유가구 가운데 연간 소득 대비 부채가 3배 이상인 가구가 19.6%에 이른다. 월 평균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의 40%가 넘는 가구가 15.8%로, 7가구 가운데 1가구꼴이다. 통계청이 조사한 지난해 3분기 전국 가구의 가구당 월 평균 소득은 전년 동기보다 6.1% 증가에 그친 반면에 이자 지급액은 17.3%나 증가했다. 대한민국은 어쩌다 이런 빚쟁이 나라가 되었을까?

먼저 경기 부양을 위한'부채에 의존한 성장 정책'이 원흉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성장둔화 현상을 유동성으로 극복하려고 '화폐 살포 정책'을 펼쳤다. 금융규제를 완화하자, 은행들은 개인을 상대로 대출경쟁을 벌였다. 대기업은 현금유보율을 늘리면서 대출 비중을 줄였고, 중소기업 대출은 은행들이 꺼리는 상황에서, 대출의 물꼬가 개인 쪽으로 터졌다. 2003년의 카드 사태와 신용불량자 양산은 그 한 단면이었다. 대출로 풀린 유동성은 자산 거품을 자극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고, 펀드 열풍이 불었다. 개인들은 미친듯이 펀드에 가입했다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된서리를 맞았다. 경제교육 전문회사인 에듀머니의 제윤경 대표는 "개인에게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주입된 결과"라며 "심리적으로 저축을 하면 안된다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자산시장에 대해 정부가 적절한 개입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거품을 양산하는 정책을 폈다"고 비판했다.

가계부채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금융과 부동산의 곪은 상처를 공유하면서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살린다며 지난해 9월부터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사실상 없애버렸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부동산 경기의 연착륙을 유도한답시고 돈 꿔서 집 사라고 부추기고 있는 것"이라며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나라 가계는 대부분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 온 나라가 건설업체한테 포로로 잡혀 있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