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행복한공부

재산 분쟁소송 맡은 판사의 판결문 후기 ...

후암동남산 2008. 8. 30. 09:07

<재산 분쟁소송 맡은 판사의 판결문 후기 '화제'>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세태 꼬집어
(부산=연합뉴스) 이종민 기자 = "가슴이 먹먹하다. 자식들과 사위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할머니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아 보였다. 부디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데리러 올 때까지 남은 여생을 젊었을 때의 아름다운 추억만 생각하고, 지금의 자녀들이 아니라 옛날의 착하고 어린 아기들만 생각하길..."

자식과 사위간의 재산 및 경영권 분쟁 소송 재판을 맡은 판사가 쓴 판결문 '후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세태를 꼬집고 있어 읽는 사람들의 가슴을 저리게 하고 있다.
부산지법 민사13단독 채시호 판사는 이모(44.여) 씨가 부산에 있는 Y기업과 기업 설립자의 부인(82.여)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명의개서청구 소송의 판결문에 이례적으로 '후기'(後記)를 적었다.

지난 26일 선고가 난 이 소송은 작고한 Y기업 설립자의 장남이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회사 주식 1억6천500만원 상당을 제3의 인물인 이 씨에게 매각한 사안을 놓고 이 씨와 설립자의 사위이면서 Y기업의 공동대표로 있는 A씨 등이 벌인 법정다툼이다.

이 소송에서 원고인 이 씨는 설립자의 장남으로부터 정상적인 거래에 의해 주식을 매입했다고 주장한 반면 피고 측은 장남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 있는 어머니를 설득, 주식에 관한 권한을 위임받아 한 행위인 만큼 주식거래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채 판사는 이 소송에서 "피고들은 위임장이 위조됐다고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이 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 씨의 승소로 끝난 판결에서 채 판사는 판결문에 쓰지 못한 심정을 후기에 담았다.
"할머니는 눈물도 보였고 말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많은 자식들과 손자들이 있으나 할아버지가 없는 할머니는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법정싸움의 중간에서 지친 설립자의 미망인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채 판사는 이어 "창업주이자 남편인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과연 이 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라고 한 뒤 "(나도) 아내를 두고서 혼자 먼저 가지 않으련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에게든 찾아온다"라고 적었다.

채 판사는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부디 할아버지가 데리러 올 때까지 남은 여생을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젊었을 때의 꽃다운 아름다운 추억만 생각하길... 그리고 지금의 자녀들이 아니라 옛날의 착하고 어린 아기들만 생각하길..."이라는 말로 글을 끝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