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행복한공부

2009년 자동차 판매왕 임희성 ^^

후암동남산 2010. 1. 27. 16:30

2009년 車판매왕 ‘촌놈’ 임희성의 1등 비결은?

"학교 때 좀 놀긴 했지유. 하지만 공부를 못혔다구 꼭 사회에서 실패하는 것은 아니잔유. 눈높이부터 낮추고 밑바닥부터 성실히 하면 분야를 막론하고 모두 성공할 수 있어유. 저 보셔유. 어딜 봐서 제가 억대 연봉자로 보이셔유?"
느릿느릿한 사투리가 오히려 구수하다. '느림의 미학'을 강조하는 충남 공주에서 자동차를 파는 7년차 영업맨 임희성(37) 현대자동차 과장. 그를 처음 본 순간 머릿속에 든 생각은 '목소리부터 촌티가 팍팍 흐르는데 과연 차 한 대나 팔 수 있을까'였다.

임 과장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영업사원의 모습과 많이 동떨어져 보인다. 느린 것도 답답한데 발음도 어눌하다. 약삭빨라 보이는 외모 대신에 유해 보이는 눈매가 '난 순진해요'라고 외치는 느낌이다.
하지만 왠지 신뢰가 간다. 느린 억양은 오히려 장점이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실리면서 신중한 이미지를 풍긴다. 순진한 외모지만 잘 차려입은 양복 등판에는 대문짝만한 글자가 수 놓아져 있다. '임희성 010-2378-XXXX'. 영락없는 영업사원이다.

그는 2009년 대한민국 최고의 자동차 판매왕이다. 그것도 현대자동차 사상 처음으로 중소도시 판매점에서 일하는 판매왕이다. 지방 판매왕은 1990년대 울산에서 한번 나온적 있다. 울산은 현대차의 텃밭. 그러나 공주는 현대차 어드벤티지가 없는 곳이다. 알고보니 그는 프로였다.

공주고등학교와 2년제 전문대학인 대덕대학을 졸업한 임 과장은 소위 말하는 '저주받은 94학번'이다. 군대를 다녀오고 학교를 졸업한 1998년은 매서운 IMF 한파가 막 시작되던 때. 대학에서 '지역사회개발학과'라는 생소한 전공을 한 임 과장에게 번듯한 직장은 '언강생심'이었다.

임 과장에게 생애 첫 직장은 동네 주유소였다. 취직을 못하고 주유소에서 일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냐고 묻자 임 과장은 "왜 아니었겠냐"며 "번듯한 직장에 들어간 친구들이 어쩌다 좋은 차를 끌고 와 주유를 하다가 알아보고는 '왜 여기 있냐'고 물을 때는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주유소서 시작한 사회생활, 영업의 바탕돼=하지만 부끄러움도 잠시, 특유의 영업본능이 조금씩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손님 하나하나를 기억하며 기름을 팔기보다는 서비스를 판다는 생각으로 성실하게 5년을 일했다.
이용객인 공주 지역 택시 기사들은 물론 일반 손님들에게도 그의 이름 '임희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정 주유소에 가격보다 스타 직원 때문에 고객이 몰리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2003년 그는 현대자동차 공주지점 영업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의 영업 본능을 발휘하기 위해 보다 큰 장터를 찾아간 것이다. 기름 때 묻은 옷을 벗고 양복을 입은 그는 경력 2년차 때부터 바로 연간 100대 이상 판매 기록을 세우기 시작했다.

당시 판매망의 기반은 주유소 아르바이트 때부터 관리해 오던 택시회사들. 주유소 직원 시절 영업을 위해 관리하던 인맥이 주유소를 떠난 후에 오히려 더 큰 고객이 된 셈이다.
6년째인 2009년에는 357대를 판매해 국산차 외산차 모두 합해 전국 최다 판매왕이 됐다. 임 과장은 자신의 기록에 대해 정부의 노후차 세제지원 혜택의 덕이 컸다고 공을 돌린다. 임 과장은 "중소도시의 영업직을 하다 보니 부자 고객보다는 서민층 고객이 많아 아반떼, 베르나, 포터 등이 주요 판매 차종이었다"며 "이들이 아끼면서 오래 탄 노후차를 교체하면서 판매왕이 된 것"이라고 공을 돌렸다.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직업 '영업'의 매력=


임 과장은 "내가 공부로는 재능이 없어도 영업은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영업에 대한 지론은 단순하다. '잔꾀 부리지 말고, 열심히 뛰자' 이것 하나다. 임 과장은 "보통 영업직을 하찮은 업종으로 보는 시각들이 있다"며 "하지만 영업직만큼 열심히 뛴 만큼 보상이 확실하게 주어지는 업종도 없다"고 말했다.
임 과장의 하루 일과는 항상 24시간 영업체제를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그 무기는 휴대전화다. 그가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휴대전화 단말기는 3대. 받기용, 걸기용 전화기와 손님과 통화할 때 정확한 상담을 하기 위한 검색용 PDA까지 3개다.

이 3대의 단말기 때문에 임 과장은 자동차 영업을 뛰기 시작한 이후 7년 동안 점심식사를 해본 적이 없을 정도다. 임 과장은 "그 시간에 한 명의 고객이라도 더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이 인터뷰를 하는 것도 기사를 보고 한 명의 고객이라도 더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말했다.
"너무 심한 강박관념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고객에게 전화가 올까봐 목욕탕에서도 탕속에서 빼고는 전화기를 항상 옆에 둘 정도니 내가 봐도 병은 병인 것 같다"며 "아마 죽어서도 관 속에 부인은 같이 못 들어가도 휴대폰은 갖고 들어갈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떤다.

▶37살 수억 연봉…하지만 투자도 만만치 않아=

임 과장의 현재 연봉은 약 2억여원.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
임 과장은 "과장 직급에 열심히만 한다면 이렇게 많은 돈을 만질 수 있는 직종이 바로 영업"이라며 "대한민국이 보다 활기차지기 위해서는 보다 젊은 인력들이 영업직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연봉이 임 과장 주머니로 고스란히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고객관리와 신규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자체 마케팅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 임 과장은 "연봉의 50~60%가량은 경쟁업체 영업사원에 비해 월등히 많은 플래카드와 전단 등 영업비용으로 재투자된다"며 "제조업으로 비유한다면 일종의 R & D(연구개발) 비용이 매우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임 과장에게도 고민은 있다. 가장 역할이다. 그는 "실제 집으로 가져가는 돈은 일반 대기업 사원들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 없지만 가정을 위해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나이에 비해 많은 연봉을 받는다며 주변의 시샘도 받지만 영업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백수라니, 거리에서 폐지라도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임 과장의 꿈은 모교인 공주고와 대덕대에서 후배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해보는 것이다.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묻자 잠시 머뭇거린 그는 "고등학교 시절 모의고사에서 전국 꼴찌를 했던 기억이 난다"며 "학교성적표가 사회성적표를 대신하는 것은 아닌 만큼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갖기에는 최근 경제 상황이 너무 안 좋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되받아쳤다.
"눈높이를 낮춰서 일단 일을 시작하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다. 취직할 곳이 없다면 길거리에 나가 폐지라도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러다 보면 하다 못해 신문이라도 읽고 폐지의 유통경로라도 알게 된다. 집에만 있다 보면 아무런 발전이 없게 된다."

지난해 '사실상 백수'가 400만을 넘었다. 15세 이상 인구 10명 중 한 명은 노는 시대다. 정부는 집에서 하는 일 없이 노는 인구 즉 '백수'가 전년보다 40만명이 늘어나면서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에 이렀다고 발표했다.
"청년실업, 청년실업 하고 떠드는데, 중소기업은 사람 못 구해 발을 구르고 있지 않나요." 임 과장은 자신보다 더 강력한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친 신세대 영업맨 후배들을 기다리고 있다. 윤정식 기자/yjs@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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