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싱글은 지고 ‘비혼 세대’ 뜬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의 비혼(非婚)이라는 단어가 지금처럼 저항감 없이, 그리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로 쓰이게 된 데는 여성주의 단체 '언니네트워크'의 공이 크다. 이들은 2002년부터 비혼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를 등장시키고, 대안 가족으로 비혼 공동체 실험을 소개하는 한편, 비혼식을 진행하는 등 '비혼운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이들을 통해 미혼·독신·싱글 따위로 불려오던 단어가 '비혼'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언니네트워크를 통해 비혼으로서 삶의 지지대를 얻은 사람 28명이 각자 비혼 경험을 엮어 2009년 < 언니들, 집을 나가다 > 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지난 4월 한 달 동안 매주 목·금 오후 언니네트워크 주관으로 진행된 '비혼 제너레이션을 말하다' 강연은 이 같은 활동의 연장선이었다. 100석 규모의 강연장은 매주 '만석'을 기록했다. 수강자들의 나이와 성별 역시 다양했다. 주말 저녁이었고, 놀 곳은 물론이고 먹을 것도 많은 서울 서교동 홍대입구역 근처 가톨릭 청년회관에서 강의가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다.
비혼은 이기적인 건가?
이 같은 사람들의 반응에 강의를 기획한 언니네트워크 액션+공감팀 역시 깜짝 놀랐다. "강의를 기획하고 수강 신청을 받으면서도 '누가 이런 강의를 듣고 싶어할까?' '사람들이 관심 있어하는 주제일까?'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장소 문제 때문에 신청자를 다 받을 수 없어 안타까울 정도였다."
이른바 기성세대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결혼하라고 하고, 결혼하고 나면 아이를 낳으라고 성화다. 그것이 '정상'이라고 말한다. 결혼은 '당위'일 뿐 '선택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식이다. 놀라운 건 결혼을 이처럼 당연시하면서도, "결혼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그 누구도 명확히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질문은 그곳에서부터 출발했다. 결혼은 왜 해야 하지? 그래서 결혼하지 않음, 즉 비혼을 선택한다면 이기적인 건가? 결혼하지 않으면 불안할까? 비혼은 정말 저출산의 주범일까? 끊임없이 던져지는 질문에, 답을 찾아야 했다. 언니네트워크는 결혼·가족·비혼을 고민하는 현 세대를 '비혼 제너레이션(세대)'으로 명명하고, 이러한 비혼 세대가 등장하게 된 맥락과 조건을 이해하기 위해 이번 강연을 기획했다고 한다.
첫 번째 강의에 나선 전희경 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은 '비혼 세대'의 등장 시기를 2000년 초반으로 보고, 1970년 이후 출생한 여성들이 이 세대의 핵심을 차지한다고 분석한다. '아들처럼' 키워져 '아들과 경쟁해온' 1970년대 산(産) 여성들은 1990년대 들어 신세대로 불리며 시대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커리어 우먼' 담론이 유포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이 여성들은 학력 인플레이션과 해외 여행·어학 연수의 세례를 받았고, 1990년대 말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결혼의 안정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어쩌다 비혼'과 '페미니스트 비혼'으로 분화한다. 페미니스트 비혼의 경우 대학 내 여성학 수업이 보편화되고, 페미니즘 담론이 대중성을 갖게 되면서 가부장제와 이성애주의를 비판하는 지점에서 발생했다. 이들은 결혼 제도를 문제화시키며 적극적으로 비혼을 정치화해왔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세대 여성이 어머니와 맺고 있는 관계이다. 이들의 어머니는 1970년대 출산 통제 정책 속에서 핵가족을 꾸리며 살아온 '미친 교육열'의 주인공이었다. 그 속에서 고학력으로 자란 딸들은 '어머니의 아들'로서 자리매김했고, 대신 딸의 취업과 직장 생활로 어머니의 '주부 노릇'은 장기화되어야 했다.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라는 딸들의 다짐은 역설적으로 이 지점에서 발생했다. 비혼으로 살겠다는 선택의 등장이다. 이에 대해 전희경씨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라고 선택한 비혼이, '딸 시간'의 연장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정에 속한 존재'라는 전제 포기해야 비혼 가능
전씨는 무엇보다 "결혼 이전의 상태를 '임시 기간'으로 치부해버리는, 그래서 불안정하게 만드는 프레임에 갇히기보다, 비혼으로 살아온 시간의 '물질성'을 부정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결혼을 못한 게 아니라, 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늘 '젊은 여성'으로 비쳐야 한다는 강박증에 갇히기 쉬운 것도 비혼 여성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비혼 세대의 등장과 함께 비혼과 관련한 담론들도 활발하게 논의된다. 두 번째 강의에 나선 전은정씨(대학 강사)는 신여성에서 골드미스까지 '집 밖'의 여성을 다루는 담론에 대해 살펴봤다. 전씨는 '슈퍼우먼'이 되거나 '나쁜 년'이 되거나 선택해야 하는 여성의 역사 계보학을 훑어나가며, "여성이 1차적으로 '가정'에 속한 존재라는 전제를 포기해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모든 게 특수하고 유난스러운 '꼴통 페미니스트들' 이야기라고? 놀라지 마시라. 2010 인구주택총조사 잠정 집계를 보면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 가족'은 약 20%에 지나지 않았다. 1인 가구 역시 2000년 약 222만 가구에서, 2010년 약 403만 가구로 급증했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3%에 달한다. 가족 유형과 형태의 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런 점에서 세 번째 강연자로 나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다문화인권안전센터장 박선영 연구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가족의 기능보다는 친밀감이나 동거, 또는 생활을 공유하는 측면을 중심으로 가족 개념을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법의 시야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포괄되어야 한다." '비혼 세대'의 등장에 따른 다양한 '가족의 탄생'이 앞으로 사회가 고민해야 할 주요 과제라는 것이다.
언니네트워크는 이번 강좌 이외에도 '비혼 프레젠테이션(PT) 나이트'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지속 가능한 비혼으로서의 삶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5월에는 '파자마 워크숍', 7월에는 '비혼 PT 나이트'를 통해 기존 결혼과 가족 제도를 벗어나 다른 형태의 가족을 꾸리는 주체들을 직접 만난다. 이들은 자신들이 현재 삶에서 실현 중인 구체적 '비혼 모델'을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밝힐 예정이다.
지난 4월 한 달 동안 매주 목·금 오후 언니네트워크 주관으로 진행된 '비혼 제너레이션을 말하다' 강연은 이 같은 활동의 연장선이었다. 100석 규모의 강연장은 매주 '만석'을 기록했다. 수강자들의 나이와 성별 역시 다양했다. 주말 저녁이었고, 놀 곳은 물론이고 먹을 것도 많은 서울 서교동 홍대입구역 근처 가톨릭 청년회관에서 강의가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다.
ⓒ언니네네트워크 제공 어느 비혼식에 비혼 선언문이 내걸렸다. |
이 같은 사람들의 반응에 강의를 기획한 언니네트워크 액션+공감팀 역시 깜짝 놀랐다. "강의를 기획하고 수강 신청을 받으면서도 '누가 이런 강의를 듣고 싶어할까?' '사람들이 관심 있어하는 주제일까?'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장소 문제 때문에 신청자를 다 받을 수 없어 안타까울 정도였다."
이른바 기성세대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결혼하라고 하고, 결혼하고 나면 아이를 낳으라고 성화다. 그것이 '정상'이라고 말한다. 결혼은 '당위'일 뿐 '선택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식이다. 놀라운 건 결혼을 이처럼 당연시하면서도, "결혼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그 누구도 명확히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질문은 그곳에서부터 출발했다. 결혼은 왜 해야 하지? 그래서 결혼하지 않음, 즉 비혼을 선택한다면 이기적인 건가? 결혼하지 않으면 불안할까? 비혼은 정말 저출산의 주범일까? 끊임없이 던져지는 질문에, 답을 찾아야 했다. 언니네트워크는 결혼·가족·비혼을 고민하는 현 세대를 '비혼 제너레이션(세대)'으로 명명하고, 이러한 비혼 세대가 등장하게 된 맥락과 조건을 이해하기 위해 이번 강연을 기획했다고 한다.
첫 번째 강의에 나선 전희경 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은 '비혼 세대'의 등장 시기를 2000년 초반으로 보고, 1970년 이후 출생한 여성들이 이 세대의 핵심을 차지한다고 분석한다. '아들처럼' 키워져 '아들과 경쟁해온' 1970년대 산(産) 여성들은 1990년대 들어 신세대로 불리며 시대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커리어 우먼' 담론이 유포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이 여성들은 학력 인플레이션과 해외 여행·어학 연수의 세례를 받았고, 1990년대 말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결혼의 안정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어쩌다 비혼'과 '페미니스트 비혼'으로 분화한다. 페미니스트 비혼의 경우 대학 내 여성학 수업이 보편화되고, 페미니즘 담론이 대중성을 갖게 되면서 가부장제와 이성애주의를 비판하는 지점에서 발생했다. 이들은 결혼 제도를 문제화시키며 적극적으로 비혼을 정치화해왔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세대 여성이 어머니와 맺고 있는 관계이다. 이들의 어머니는 1970년대 출산 통제 정책 속에서 핵가족을 꾸리며 살아온 '미친 교육열'의 주인공이었다. 그 속에서 고학력으로 자란 딸들은 '어머니의 아들'로서 자리매김했고, 대신 딸의 취업과 직장 생활로 어머니의 '주부 노릇'은 장기화되어야 했다.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라는 딸들의 다짐은 역설적으로 이 지점에서 발생했다. 비혼으로 살겠다는 선택의 등장이다. 이에 대해 전희경씨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라고 선택한 비혼이, '딸 시간'의 연장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정에 속한 존재'라는 전제 포기해야 비혼 가능
전씨는 무엇보다 "결혼 이전의 상태를 '임시 기간'으로 치부해버리는, 그래서 불안정하게 만드는 프레임에 갇히기보다, 비혼으로 살아온 시간의 '물질성'을 부정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결혼을 못한 게 아니라, 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늘 '젊은 여성'으로 비쳐야 한다는 강박증에 갇히기 쉬운 것도 비혼 여성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언니네네트워크 제공 언니네트워크 회원이 거리에서 비혼을 알리고 있다. |
이 모든 게 특수하고 유난스러운 '꼴통 페미니스트들' 이야기라고? 놀라지 마시라. 2010 인구주택총조사 잠정 집계를 보면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 가족'은 약 20%에 지나지 않았다. 1인 가구 역시 2000년 약 222만 가구에서, 2010년 약 403만 가구로 급증했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3%에 달한다. 가족 유형과 형태의 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런 점에서 세 번째 강연자로 나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다문화인권안전센터장 박선영 연구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가족의 기능보다는 친밀감이나 동거, 또는 생활을 공유하는 측면을 중심으로 가족 개념을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법의 시야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포괄되어야 한다." '비혼 세대'의 등장에 따른 다양한 '가족의 탄생'이 앞으로 사회가 고민해야 할 주요 과제라는 것이다.
언니네트워크는 이번 강좌 이외에도 '비혼 프레젠테이션(PT) 나이트'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지속 가능한 비혼으로서의 삶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5월에는 '파자마 워크숍', 7월에는 '비혼 PT 나이트'를 통해 기존 결혼과 가족 제도를 벗어나 다른 형태의 가족을 꾸리는 주체들을 직접 만난다. 이들은 자신들이 현재 삶에서 실현 중인 구체적 '비혼 모델'을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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