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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장수 제품 ‘활명수’ 등 4개의 기네스 기록… 100년을 지켜낸 ‘기업가 정신’이 비결

후암동남산 2012. 2. 26. 15:50

 

국내 최장수 제품 ‘활명수’ 등 4개의 기네스 기록… 100년을 지켜낸 ‘기업가 정신’이 비결


◎ 왜 이 기사를 읽어야 하는가?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명은 얼마나 길까? 2006년 5월말 기준으로 국내 기업의 평균 수명은 10살 정도다. LG경제연구원이 대한상공회의소가 보유한 약 28만 개 기업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결과다. 그나마 2000년과 비교했을 때 6년 만에 2년 정도 단축됐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업의 생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최근 지속 가능한 경영이 화두로 떠오르는 것도 기업들의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과 맥락을 함께한다. 본지는 국내 최고의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100년 기업인 동화약품을 통해 기업 장수의 비결을 소개한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편집자주)


 

4개의 대기록을 세운 4가지 정신
‘독립운동 자금을 대던 소화제’. 요즘 젊은 층에게까지 어필하는 이 광고카피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이름만 대면 알만한 바로 그 소화제, 활명수다. 놀라운 사실은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의 홍수 속에서 활명수가 여전히 100년 세월을 뛰어 넘어 마시는 소화제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는 것. 활명수는 한국 기네스협회가 인정한 국내 최고(最古)의 제품이다.


동화약품은 최장수 제품 활명수를 포함해 가장 오래된 제조회사 및 제약회사, 최초의 등록상표 부채표 등 현재 4개의 한국 기네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가장 오래된 상장기업이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동화약품이 100여 년간 최고의 제품과 브랜드, 역사를 건실하게 이어올 수 있었던 저력은 어디에 있었을까?


장수비결 1. 사회적인 가치를 주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이 곳은 서울 시청과 비슷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직할의 서울 연통부가 자리잡고 있었던 터이다…(중략)…연통부는 일제와 싸우면서 임정이 수립되어 활동하고 있음을 국민에게 알리고 나라 안의 각종 정보와 군자금을 임정에 보고 전달하였다…(중략)….이 곳은 원래 조선조 숙종대왕비 인현왕후가 탄생한 곳으로 1897년에 설립된 민족 기업인 동화약방이 들어섰다가 1962년에는 동화약품공업주식회사로 상호가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후략)’


 

광화문 근처 순화동 동화약품 본사에는 커다란 기념비석이 세워져 있다. 1995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정부로부터 공식인정을 받아 세워진 연통부 기념비다. 기념비에는 ‘독립운동 자금을 대던 소화제’의 근거가 되는 역사가 새겨져 있다.

활명수는 1897년 태어난 한국 최초의 양약이자 신약이다. 당시 민간인들은 급체로 목숨을 잃거나 소화불량에도 탕약을 달여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한의학에 조예가 깊었던 궁중 선전관 민병호가 양약을 가미해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소화제를 만들었다. 활명수를 대중화하기 위해 아들 민강과 동화약방을 창업하면서 활명수의 역사가 시작된다. 약이 나오자 당시에는 만병통치약처럼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동화약방은 수익의 일부를 독립운동 자금으로 댔다.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비밀행정부인 연통부를 동화약방 내에 설치, 운동자금의 전달기능을 담당했다.


동화약품의 태생과 성장의 역사는 최근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및 ‘창조적 자본주의’와 맞닿아 있다. 동화정신의 제 1항은 ‘동화는 좋은 약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봉사하고 그 효험을 본 정당한 대가로 경영되는 회사’라고 밝히고 있다. 즉 사람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가치를 지닌 제품과 활동을 하는 것을 기업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박스1 기사 참고) 이러한 선진적인 기업가 의식이야말로 동화약품의 장수와 혁신의 근본 토대가 됐다.


 

 


장수 비결 2. 본질에 충실 하라. 위기 너머에 있는 더 큰 기회를 볼 수 있다
동화약품은 112년 역사를 거치며 수많은 위기의 순간을 맞았다. 하지만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동화정신은 그 위기의 순간마다 과감하면서도 정확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했다.


▶일제 탄압기, 만주 시장으로 눈을 돌리다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했다. 일제의 군국주의가 더욱 강화되는 한편 물자가 귀해지고 정부가 모든 물자와 가격을 통제하는 시기가 됐다. 약품 배급제로 인해 가격도 정부가 통제했다. 이런 통제 상황에서는 영업확장이나 신제품 개발도 힘들었다. 특약점의 유통구조가 붕괴되며 대형 도매상 위주로 영업망을 정비해야 했다. 하지만 대형 도매상은 일본인들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게다가 광고를 낼 때에도 일제를 찬양하는 문구를 반드시 넣어야 했다. 민족자본으로 설립돼 독립운동을 벌이던 동화약품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동화약품은 해외로 눈을 돌려 이 총체적인 위기를 극복했다. 만주와 북한지역 진출로 1938년에서 1940년 사이에 매출 200%, 이익 1000% 신장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전쟁 혼란기, 정도 경영으로 더 크게 일어서다
만주와 북한지역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일본 패망과 남북 분단으로 북쪽의 공장과 미수금을 모두 잃는 손실을 안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6.25 전쟁으로 남한의 공장 건물이 폐허가 됐다. 하지만 동화약품은 1.4후퇴 때 제약기계 일부를 마산으로 가져가 임시생산을 계속할 수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약품이 귀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활명수를 판매해 큰 이익을 낼 수 있었다. 이로써 다시 일어설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연달아 신제품을 내 놨다. 당시 도매상의 힘이 워낙 강해서 약품 값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동화약품은 도매상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값을 올리거나 내리지 않았다. 정도경영의 이념을 고지식하게 지킨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로 인해 손해를 보기는커녕 놀랄 만큼 이익이 늘었다. 1955년 1961년 사이 동화의 매출액은 33.7배, 당기순이익은 18.5배가 증가했다. 윤리경영이 기업에게 성공적인 결과를 안겨준다는 역사적인 성공사례다.


▶IMF 불황, 구조조정 통한 체질개선의 기회로
IMF 당시 동화약품도 위기를 맞았다. 당시 부채비율이 300%가 넘는 등 경영이 악화된 것이다. 이 때 경영진은 ‘구조조정’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동화는 자신들의 정신을 끝까지 지켰다. 동화정신의 제 3항, ‘우리는 가족이다’라는 정신이다. 결국 동화는 사람을 자르지 않고 사업을 잘라냈다. 살충제 분야를 매각함으로써 일단 숨통을 틔웠다.


“인력감축이 아닌 체질개선을 선택했죠. 결국은 전화위복이 됐습니다.” 조창수 사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이 위기를 현명하게 넘긴 덕분에 임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와 유대감은 더 단단해졌다.

장수 비결 3. 경영자부터 능동적으로 혁신하라.
동화약품은 112년 역사를 통틀어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끊임없이 추구해왔다. 오늘날의 전문경영인제도와 비슷한 형태의 ‘지배인 제도’를 1937년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유능한 전문인들을 사원으로 초빙해 회사의 전반적인 업무를 관장할 권한을 주고 경영에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였다. 또한 동화약품은 공장 근로자까지 포함한 전 사원 월급제를 도입한 국내 최초의 기업이다. 1978년의 일이다. 공장 근로자 월급제는 IBM이 1958년에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인 기업은 1970년대까지도 많지 않았다. 공장 근로자들은 ‘일한 만큼’만 시간을 계산해서 임금을 지급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당시 경영을 맡고 있던 윤광렬 명예회장은 공장의 한 여종업원이 “월급 한 번 받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라고 한 말을 듣고 이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심한다.


지금은 윤도준 회장이 앞장서서 마인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하단 '同和人의 행복을 위해서' 표 참조). 윤 회장은 2005년 취임부터 ‘직원들이 진심으로 신명 나게 일할 때 고객이 감동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펴 왔다. 그리고 시스템과 문화부터 ‘파격적’으로 바꿨다. 대표적인 예가 회의 상석 폐지다. 더 이상 회의 테이블에 ‘높은 사람이 앉는 자리’는 없다. 평행하게 놓인 테이블에서 회장, 직원, 임원 할 것 없이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서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출퇴근 시간도 유연하게 바꿨다. 모든 직원들은 ‘8-5제(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와 ‘9-6제(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중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능률에 맞춰 자유롭게 출퇴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회사측에서는 ‘칼 출근, 칼 퇴근’을 장려한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자기계발에 투자하라는 이유에서다. 여성 채용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해 2명의 여성 임원을 영입했다. 현재 전체 직원 중 25%가 여직원이다. 100년 전통을 지닌 기업, 그것도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제약업계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행보다.


이처럼 자율성과 다양성, 열린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동화약품의 문화는 시대적인 변화에 유연한 동화약품을 만들어왔다.


 

 


장수비결 4.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속 가능한 자원’에 투자하라
동화약품의 대표품목이 ‘활명수’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매출이 활명수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동화약품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신약으로 더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동화약품은 2001년 세계 최초 방사성 간암 치료제인 '밀리칸주'의 신약 개발에 성공했다. 2007년에는 골다공증 치료 신물질인 DW1350의 기술을 미국 P&G사에 5억 1100만 달러(약 5000억 원)에 수출했다. 이는 국내 제약사상 최대규모의 수출액이다. 향후 제품이 시판되면 일정한 로열티 수입도 들어와 지속 가능한 수익원이 된다. DW1350의 개발에는 꼬박 15년이 걸렸다. 이처럼 혁신 기술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가 빛을 보며 불황에도 불구하고 동화약품의 성장세는 계속됐다. 2007년 1750억 원 규모였던 매출은 서브프라임 사태의 여파가 전세계 불황으로 번진 2008년에는 1880억 원으로 늘어났다.


신 기술뿐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교육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매 월 첫 번째 토요일 마다 동국대학교 강당에서는 동화특강이 열린다. 유명 교수 및 강사들을 불러 1교시에는 조직혁신, 리더십, 경영 트렌드와 관련된 ‘지식강의’를, 2교시에는 클래식, 미술 등과 관련한 ‘교양강의’를 듣는다. 충주공장은 매 월 두 번째 토요일 강당에서 동화특강이 열린다. 공장은 물론 인근 영업지점 직원들, 더 나아가 관계사 임직원들에게도 들을 수 있도록 개방했다. ‘협력사, 직원, 회사가 함께 커간다’는 의미에서다.


윤도준 회장은 독서경영을 통해 공부하는 조직문화 만들기에 힘쓰고 있다. 지난 해 윤도준 회장은 전 사원들에게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하나씩 적어 내라”고 했다. 회사 차원에서 그 책들을 구입해서 사내 도서관을 신설했다. 누구나 읽고 싶은 책을 가져가 읽을 수 있다. 각 팀별로 독서토론도 한다. 이 토론결과를 바탕으로 교육도 한다. 오후 2~3시경 사내 대강당에서 열리는 교육에는 외부강사는 물론이고 직원들도 강사로 나서 자신들의 스터디 내용을 바탕으로 발표한다. 교육을 듣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근무시간 중에 일을 중단하고 내려와 들을 수 있다. 교육도 근무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에서다. 이와 같은 기술과 사람에 대한 지속적이고 과감한 투자는 동화약품의 100년 지속혁신과 변화의 밑거름이 됐다.


지킬 것, 그리고 버릴 것은 무엇인가?
동화약품이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명확하다. ‘우리 기업이 지켜야 할 본질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고 정제된 하나의 생각으로 정립했다는 점, 그것이 조직원들은 물론 기업 의사결정에 실제적이고 일관된 힘을 발휘해왔다는 점, 그리고 경영자부터 나서서 기업정신을 눈에 보이는 문화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는 점, 마지막으로 본질을 추구하되 그 구현 방식에 있어서는 시대에 따른 변화와 혁신을 유연하게 취했다는 점 등이다.


지금 당신 기업은 어떠한가? 당신 기업만의 명확한 정신이 모든 구성원들의 마음 속에 새겨져 있는가? 그 정신이 눈에 보이는 문화로 자리잡았는가? 그 정신이 조직원들을 얼마나 강력하게 움직이고 있는가? 지켜야 할 본질과 변해야 것들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이 서 있는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100년 기업의 DNA가 조직 안에 자리잡게 될 것이다.


 

신입사원부터 대표이사까지… ‘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조창수 대표
Q.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고쳐서 전화위복이 되게 하라’는 동화정신이 인상 깊다. 요즘 경영자들 사이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실패학, 위기관리와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이 항목이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나?
조창수 대표: 사람은 언제나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수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 실수를 거울삼아 다시는 그런 실수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잘못된 점을 파악해 고쳐야 한다. 또한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가르침도 필요하다. 나는 가르침에는 엄한 가르침과 잔인한 가르침이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경쟁력을 갖춘 사람, 남에게 존경 받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관심과 애정을 갖고 상대를 아끼는 마음에서 진심으로 대해 주되 때에 따라 질책도 해야 한다. 기한을 정해 놓고 달성하도록 강도 높게 시키는 가르침을 엄한 가르침이라고 한다.


반면, 잔인한 가르침은 무엇일까? 상대방에게 일을 시켜 놓고 확인도 하지 않고 “잘 한다” 칭찬만 하며, 잘못이 있을 경우에도 바로 잡아주지 않는, 인기나 얻으려 하는 가르침이다. 이런 가르침이 당장은 좋을지 모르지만 시일이 흐르면 상대를 배운 것 없고, 능력도 없는, 못쓰는 사람으로 만들게 된다.


나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여러 부서 현장을 돌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항상 새로운 것을 현장에서 배울 때마다 상사로부터 잘못된 점에 대한 엄한 가르침을 받았다. 그 엄한 가르침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감사한다.


Q. 동화약품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면?
조 대표: 많은 것이 있지만 특히 ‘고염나눔’ 행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고염이란 감 모양으로 생긴 손톱만한 작은 열매다. 조그만 고염 하나라도 생기면 집안 전 식구가 나누어 먹는 정(情), 이웃에서 떡이 오면 온 식구가 둘러앉아서 오순도순 나누어 먹는 ‘한 식구’ 의식을 보여주는 문화다.


보당 윤창식 사장께서는 추석이나 연말에 거래선으로부터 들어오는 선물 중 과다한 물품이나 금전은 받지 않고 돌려 보냈다. 하지만 상대방의 정성이 담긴 작은 선물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런 선물들만을 모아서 1년에 한 번 본사를 비롯해 전국 공장, 연구소, 지점별로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추첨으로 나누어 갖게 했다. 말로만 식구가 아니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한 식구’라는 것을 직접 실천에 옮기셨다. 이것이 전통이 되어 오늘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다.


Q. 앞으로 100년 후에는 동화약품이 어떤 기업으로 남았으면 하는가?
조 대표: 동화정신을 바탕으로 질병치료뿐만 아니라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좋은 약을 만들어 고객이 신뢰하고, 고객에게 사랑 받는 회사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아울러 ‘모두가 다니고 싶은 회사, 일하고 싶은 동화식구들의 회사’로 남았으면 한다.


 

활명수는 동화 DNA의 대표주자
예종석 교수의 <활명수, 100년 성장의 비밀>
제품인지도 97.9%에 81억 병 이상 판매된 동화약품의 활명수는 1897년생으로 아스피린과 동갑이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제1호 브랜드’다. 국내 최초의 신약이기도 하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5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을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건실한 기업들(코카콜라, 포드, 존슨앤존스, 네슬레)도 100년을 살아남기 힘든데, 활명수가 112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예종석 교수의 《활명수 100년 성장의 비밀》은 활명수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고, 오늘의 험난한 기업 환경을 헤쳐나가야 하는 경영자들에게 지속가능경영의 비밀과 세대를 뛰어넘는 경영의 지혜를 알려준다.


저자인 예종석 교수는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장 및 글로벌경영전문대학원장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예종석 교수의 아주 특별한 경영수업》, 《희망경영》, 《모두가 사는 길로 가자》등의 저자인 예 교수는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경제학 학사, 인디애나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와 경영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종석 교수가 밝히는 ‘활명수 성공 비결 7’
1. 화젯거리가 되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활명수는 ‘궁중 비방’이라는 신화와 함께 태어난 셈인데 이러한 이야깃거리는 신제품의 성공적인 시장 진입에 큰 도움이 된다.


2. 좋은 브랜드 네임과 브랜드 마크가 있어야 한다.
활명수는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의 브랜드 네임과 ‘부채표’라는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브랜드 마크를 갖고 있다.


3. 모방을 불허하는 방어상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1910년 8월 15일 ‘부채표’를 우리나라 최초의 상표로 등록하고, 1919년 활명수 상표를 보호하고자 ‘활명액’이라는 유사상표 방어용 상표를 등록했다.


4. 소비자의 트렌드를 따라 변신해야 한다.
활명수는 한약처럼 달여 먹지 않아도 되고 휴대하기 쉽다는 편리함과 신속한 효력이라는 소비자 지향적인 특성을 내세워 소비자 욕구를 선도하고 시장을 선점했다.


5. 가격도 전략적으로 책정해야 한다.
활명수는 초기 고가 전략(당시 설렁탕 두 그릇에 해당되는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고급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심었다.


6. 신제품 개발의 최종 관문, 테스트 마케팅을 활용해야 한다.
활명수를 개발한 후 수시로 사람들에게 제품을 무상으로 나눠줘 사용하게 한 뒤 그들의 반응을 살폈다. 당시는 마케팅이란 개념조차 이 땅에 소개되지 않았던 때임을 생각해보면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7. 확실한 유통경로를 확보해야 한다.
활명수는 출시 초기부터 각 지역의 유지들로 구성된 전국 규모의 튼튼한 유통망을 구축해 제품 접근성을 높이고, 철저하게 지점과 특약점을 통해서만 제품을 공급해 중간상인과 공존는 영업 전략을 구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