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젊음은 나이순이 아니잖아요. ^^

[이용대의 등산칼럼ㅣ노년의 여가는 새로운 일에 투자하라 ]

후암동남산 2013. 1. 15.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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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년까지 산을 오르며 인생을 즐겼던 이탈리아 등반가 리카르도 카신


나이가 드니 세월이 빨리 간다고 자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생은 후반에 이를수록 활동의 폭이 좁아지며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고 산다. 하지만 잰걸음으로 할일을 찾아 바쁘게 살면 세월도 느리게 따라온다.

금년도 대학 수능시험장에는 79세와 77세의 두 분 할머니가 대입진학에 도전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나이 들어 대학 공부하여 어디에 쓰시게요?"라고 물으니 이들은 한결 같이 "더 나이가 들어 시작하면 조금 늦을 것 같아 그렇다"고 말한다. 일흔아홉 할머니가 전하는 당당한 메시지가 잊히지 않는다.

금년에 83세를 맞은 가톨릭 의대 박용휘 명예교수는 정년퇴임 후 17년 동안 집념의 시간을 투자해 세계최고 수준의 두툼한 의학교과서를 펴냈다. 미국의학계의 권위교수진들로부터 가장 앞서가는 연구를 집대성한 획기적인 저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분은 정년 후에도 많은 학술지에 연구논문을 발표하면서 현역시절 못지않은 활동을 펴왔다. 박 교수는 "괴테가 평생에 걸쳐 파우스트를 완성했듯이 학자로서 전공학문을 끓임 없이 다듬고 고쳐서 완결편을 남기려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올해 90세를 맞는 원로 산악인 김영도 선생은 30대 못지않은 완성한 정력으로 집필활동을 하고 계시다. 그는 30대 전문번역사 못지않은 열정으로 2년 사이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산악영웅 발터 보나티의 <내 생애의 산들>과 라인홀트 메스너의 <토레>를 번역했고 자신의 자서전인<나는 이렇게 살아왔다>를 일역했다. 뿐만 아니라 매달 거르지 않고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그분은 아직도 컴퓨터의 자판과는 거리가 먼 육필원고를 고집하며 힘든 집필 작업을 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보아도 삶의 의욕이 넘쳐나는 당당한 자세다.

전남 장흥에 사는 평범한 농부 이세근 할아버지는 올해 95세다. 낮에는 밭에 나가 농사를 짓고 밤에는 책을 읽으며 중요한 내용을 꼼꼼하게 챙겨 필사하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이다. 늙어서도 책을 가까이 하니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말한다. 아직도 그는 발음이 또렷하고 꼿꼿하게 허리를 편 채 걸음도 꽤 빠르다. 신체상태가 60대 후반 정도라는 느낌의 그는 한세대를 젊게 세월을 천천히 살아가고 있다.

이들 노익장들의 도전은 끝을 모른 채 앞만 바라보고 질주하고 있으니. 지금은 노익장(老益壯)이라는 말이 계면쩍게 들리는 시대가 되었다. 어찌 이런 분들에게 '노인 꼬리표'를 붙여줄 수 있겠는가. 지금은 일흔 살에 죽어도 일찍 죽었다고 생각하는 시대다.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해보고 무엇을 해야 내 삶이 의미 있는 것이 될까 끊임없이 고민해야한다. 스스로 할 일을 찾아내 그것을 목표로 삼고 나머지 삶을 다듬어 나간다면 의미 있는 인생이 될 것이다. 무엇을 해도 좋다 등산과 스포츠로 몸을 단련해도 좋고, 독서와 저술활동을 해도 좋다.

이탈리아 알피니즘의 산증인으로 1930년대 유럽 알피니즘을 주도해온 리카르도 카신은 78세가 되던 해에 초등 50주년 기념등반에서 28세에 등반했던 피츠 바딜레(Piz Badile·3308m) 북 동벽을 10시간 만에 올라 노병의 건재함을 보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어디 그 뿐인가 다음 날 그는 또 한번 이 루트를 등반하여 노익장을 과시했다. 놀랄만한 건강과 등반 지속능력을 유지 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극히 상식적인 답변을 했다. "술을 적게 마시고 과식을 하지 않으며, 적정 체중을 유지하면서 일을 많이 하고 등반을 끔찍이 즐긴다면 80세가 되어서도 등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98세까지도 여전히 등반을 즐기고 일을 해오다가 2009년에 9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고령자의 등반활동기록은 서양인 뿐만 아니다. 우리의 이웃인 일본사람들도 고령의 나이로 새로운 도전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열정이 가득한 노인들이 있다. 일본 여성 산악인 와타나베 다마에는 2002년 63세에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아 최고령 등정기록을 세웠다. 그런 그녀가 금년 5월 73세의 나이로 에베레스트를 또 한 번 올라 자신의 정상등정기록을 경신했다. 그녀는 세계의 지붕 끝을 밟고 무사 귀환한 현존하는 최고령 여성으로 그녀의 도전은 끝을 모른다.

2008년 일본의 이시카와 도미야스는 71세의 나이로 남극 최고봉 빈슨 매시프를 올라 세계 7대륙 최고봉 모두를 완등하는 세계 최고령 등정기록을 세웠으며, 일본 산악인 미우라 유이치로는 2003년 70세의 나이에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는데, 스키선수인 그의 아버지는 99세에 몽블랑 스키 선수권대회에 출전했고, 100세에 미국 스노보드 대회에 출전했다. 금년 런던 올림픽 최고령 참가자는 71살의 승마선수다.

당뇨와 고혈압으로 고생하던 75세의 할머니 네 분이 몇 년 전 태권도에 도전하여 올해 공인 3, 4단 자격을 따냈다. 이들이 허공을 가르며 발차기로 송판을 쪼개는 격파기술을 보면 유단자라는 말이 실감난다.

이들은 하나같이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도전 할 가치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이룩한 활동의 결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성과가 아니며 오래 전부터 지속적인 활동을 해오며 몸을 단련해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조기퇴직이 급증한 반면 평균수명은 길어졌다. 직장인 평균 퇴직 연령을 55세 평균수명을 80세정도로 잡는다면 퇴직 후 활동할 수 있는 노후기간이 25년이나 된다. 이쯤 되면 나머지 25년 백수인생의 거취가 고민거리로 등장 할 수밖에 없다. 내 주변에는 퇴직 후 잔여 인생을 무엇을 하면서 소일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종묘나 파고다공원에서 낮술에 취한 채 어슬렁거리며 세월을 까먹는 노인층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에 비해 젊어서부터 등산을 해온 사람들은 퇴직 후에도 바쁜 노년을 즐기며 청년처럼 활기찬 삶을 산다. 또래끼리 능력에 맞는 국내산이나 해외 트레킹대상지를 골라 산행을 하면서 자신의 건강을 돌보고 존재감을 확인하며 분주한 인생을 살아간다.

금년 8월 평균연령 60대의 산악인 몇 명이 의기투합하여 2년간 목표를 세워서 훈련을 하고 젊은이들이나 탐할 수 있는 수직고 1800미터의 눈, 얼음, 바위, 유수, 낙뢰 등 악조건을 고루 갖춘 악명 높은 아이거 북벽을 오르는 투혼을 발휘, 젊은이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다. 특히 조로현상이 심한 우리 산악계로서는 이들의 열정적인 등반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들은 지난해 1차 도전의 실패를 극복하고 금년에 재도전하여 성공했다. 이들 실버 팀의 최고령자는 예순다섯의 유동진과 금년에 환갑을 맞은 허욱이다. 이들의 시도를 지켜본 사람들은 과연 완등이 가능할까 우려했지만 이들은 그런 우려를 말끔히 뒤엎었다.

"늙도록 산에 다니면 노후 건강보험을 드는 것 보다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노 등산가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노년의 잦은 질병으로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보약구입에 퇴직금과 용돈을 축내기보다는 한걸음에 가까운 산에라도 올라보자. 여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어떤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제로 입증한 사람들이다. 한 치의 낭비 없이 꽉 찬 인생을 사는 이들의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