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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바이러스 번져가는 서울 관악구 남강고등학교

후암동남산 2013. 7. 21. 11:59

입력 : 2013.07.16 03:03

[웃음 바이러스 번져가는 서울 관악구 남강고등학교]

학업 스트레스·경쟁에 찌들어 축 처진 아이들 모습 안타까워
이상혁 교사가 '깔깔 운동' 시작…
웃는 얼굴 찍은 티셔츠 입더니 아이들 많이 웃고 자신감 찾아
티셔츠값 5000원 중 1000원은 개도국 굶주린 아이들에 기부

지난 10일 서울 관악구 남강고 교정엔 학생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이날, 이 학교 학생 40여명은 자신의 얼굴이 전사(轉寫)된 특별한 티셔츠를 선물 받았다. 티셔츠에 인쇄된 사진 속 얼굴은 모두 입을 크게 벌리고 웃고 있었다. 일부 학생들은 콧구멍을 크게 벌리고 혀를 빼물면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2학년 윤언(17)군은 자신의 티셔츠에 찍힌 자기 얼굴은 생각지도 않은 채 다른 친구들의 티셔츠를 보며 "너 얼굴이 그게 뭐야"라며 크게 웃었다. 한 학생은 "입학한 이래로 친구들이 이렇게 크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 학교 영어 교사 이상혁(32)씨는 4년 전부터 학생들에게 각자의 웃는 얼굴이 새겨진 '깔깔 티셔츠'를 나눠주는 '깔깔 운동'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학업 스트레스와 경쟁 때문에 축 처져서 우울해 보이는 학생들이 안타까워서였다. 이씨는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매일 보고 싶었다"며 "항상 웃지는 못 하더라도 가끔이라도 웃는 얼굴을 보이면서 생활하라는 생각으로 티셔츠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5일 서울 관악구 난곡동의 남강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웃는 모습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거나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오른쪽 위 작은 사진은 '깔깔 운동' 티셔츠를 입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상혁 교사. /성형주 기자
15일 서울 관악구 난곡동의 남강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웃는 모습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거나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오른쪽 위 작은 사진은 '깔깔 운동' 티셔츠를 입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상혁 교사. /성형주 기자
깔깔 운동의 효과는 이씨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티셔츠에 새겨진 학생의 웃는 모습을 본 다른 학생들이 따라 웃고, 티셔츠의 주인공 역시 이 모습을 보고 더 크게 웃었다. 깔깔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의 웃음이 바이러스처럼 전교로 퍼져 나갔다. 이씨는 "미소 짓는 게 어색했던 학생들이 어느새 과거에 보지 못했던 행복한 미소를 보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깔깔 티셔츠'는 이씨가 학생들과 함께 수작업으로 제작한다. 이씨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사진으로 찍고, 이어 학생들과 함께 전사지(轉寫紙)로 출력해 흰색 티셔츠에 다리미를 이용해 옮겨 담는다.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게 웃는 학생을 위해 이씨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시범을 보인다.

이씨의 꾸준한 노력으로 최근 교내에서 깔깔 운동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이씨는 매년 4~5명분의 티셔츠를 만들었지만, 올해는 2학년 11반 학생 11명 등 40여명에게 티셔츠를 만들어줬다. 이씨를 비롯한 이 학교 교사 3명도 미소가 담긴 티셔츠를 만들어 입었다. 지난 10일 이씨에게서 깔깔 티셔츠를 건네받은 학생들은 그 주 내내 교복 상의 속에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올해 처음 깔깔 운동에 참여한 2학년 강민석(17)군은 "학교에서 내 얼굴을 본 아이들이 우습다고 깔깔대는 걸 보고 자신감이 생겼다"며 "학원이나 길거리에 다닐 때도 입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학생들이 낸 티셔츠 제작비 5000원 중 1000원을 학생 이름으로 국제연합아동기금인 유니세프(UNICEF)에 기부하고 있다. 이 돈은 개발도상국의 굶주린 어린이들에게 전달된다. 학생들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통해서도 깔깔 운동을 전파하고 있다. 이상혁 교사는 "깔깔 운동이 학교 담장을 넘어 개발도상국 아이들뿐 아니라 전국으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