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시작해 이제 충무로에 없어서는 안 될 연기자로 많은 감독들의 러브콜을 받는 배우 신정근. 27년 동안 '연기'라는 한 우물을 팠던 신정근은 1987년부터 연극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50편에 가까운 연극을 소화했다.
그가 영화로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다. 연극으로 도저히 생계가 꾸려지지 않겠다고 판단, 영화 쪽에 열심히 프로필을 돌린 것. 그렇게 2002년 영화 < 복수는 나의 것 > '노동자 3역'이라는 단역으로 시작해 < 챔피언 > < 황산벌 > < 왕의 남자 > < 님은 먼 곳에 > 등 무수히 많은 작품에서 단역과 우정출연을 했다.
▲신정근(39)은 1987년부터 연극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4,50편의 연극을 소화하고 충무로까지 영역을 넓힌 배우다.
ⓒ 핑크스푼
그의 연기 인생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작품이 있으니, 바로 영화 < 거북이 달린다 > . 김윤석의 친구 용배 역을 맡은 신정근은 각 잡힌 트레이닝복을 입은 동네 한량으로 출연했다. 건달 같지만 마음만은 착한, 실제로 동네에 한 명쯤은 있을 법한 인물이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과 충무로 관계자들 사이에서 '저 츄리닝 남자 누구냐'고 궁금해 할 정도로 호연을 선보인 신정근은 그해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 평양성 > < 하울링 > < 광해, 왕이 된 남자 >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 은밀하게 위대하게 > < 더 파이브 > < 깡철이 > 등 다수의 작품에서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하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이 배우는 자신의 캐릭터에 집착하기보다는 영화의 완성도과 결을 더욱 탄탄하게 다지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한다. 올해 < 해적: 바다로 간 사나이 > < 끝까지 간다 > 두 편의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신정근을 만났다.
"오기로 버틴 극단 생활...무대서 많이 배워"
▲ 신정근"연극계에는 어마어마한 인재가 많아요. 충무로에서 그런 인재들을 캐스팅했으면 좋겠어요. 그 중에서도 감각이 좋은 친구보다 체력이 좋거나 의지가 굉장히 강한 친구들을 뽑으면 좋을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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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부터 연기자로 한 우물을 파고 있습니다.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이렇게 열정을 갖고 왕성히 활동하기가 쉽지가 않은데요.
"어렸을 때는 관상이 지금보다 더 좋지 않았어요.(웃음) 그래서 판매업을 할 수도 없었고. 연기 하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이것만 할 수밖에요."
- 대학로에서 오랜 시간 극단 생활을 하며 생활이 어렵지 않았나요?
"저는 어렸을 때 '감각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그럼 연출자님들이 '넌 이 극단이 우습지? 난 우둔하고 우직한 놈들이 좋다. 너 같은 애들은 금세 그만 둘 거야'라고 말하시곤 했어요. 어릴 때는 그런 말에 엄청 상처를 받았죠. 그래서 그렇게 말한 극단에서 4년 반 정도 버텼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연출자들이 쓸 만한 놈들한테 자극을 줘서 극단에 더 오래 있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오기로 버티도록... 4년 반 이후에는 작품 별로 많은 극단을 돌아다니면서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들과 만나고 연기도 더 배우고 그랬죠."
- 왜 감각이 좋은 연극배우는 안 되나요?
"감각이 좋은 친구들은 개인이 보이는 연기를 할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게 '애드리브 연기'인데, 사실 연기자는 개인기가 아닌 작품 전체를 보이게 하는 '통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옛날에는 애드리브 막 하고, 감각적으로 튀는 연기를 했었는데요. 내 애드리브에 관객들이 웃고 현혹되는 걸 봐서 더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 작품은 날아 갑니다. 극 전체가 보일 때 관객들은 엄청 크게 웃지만, 관객들이 애드리브 하는 캐릭터만 보면 웃음의 잔가지가 생기는 거죠. 진정한 웃음이 아니에요. 전 개인보다는 극을 생각하자는 주의입니다."
- 지금도 '연극협회축구단 액터스' 소속으로 여전히 대학로에서 연극계 후배들과 자주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연극계에는 어마어마한 인재가 많아요. 충무로에서 그런 인재들을 캐스팅했으면 좋겠어요. 그 중에서도 감각이 좋은 친구보다 체력이 좋거나 의지가 굉장히 강한 친구들을 뽑으면 좋을 듯 해요.
사실 예전에 비해 후배들에게 술을 자주 못 사주는 편이에요. 저는 예전부터 소주에 과일을 먹었거든요. 돈을 벌고 나서는 소맥. 대학로에서 술을 먹으면 처음에 3, 4명이던 인원이 나중에는 15명 정도까지 될 때가 있더라고요. 한 명씩 올 때마다 머릿속으로 숫자 세고(웃음). 후배들이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내서 제가 만취하면 집까지 바래다주고 그래요. 어떨 때는 미웠다가도 또 얼굴 보면 좋고. '대학로 가족'이죠."
- 어떨 때 대학로 후배들이 미워요?
"본인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자기 입으로 한 약속 잘 안 지킬 때 밉고. 술 주사 심한 후배들은 좀 안 좋아하고요. 옛날에 후배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많이 혼냈어요. 근데 지금은 애들 상처 받을까봐 그런 말도 못 해요. 요즘에는 '그냥 입 닫고 지갑을 열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배우에게 도움이 되는 건, '산'과 '책'"
▲"나에게 가장 힘이 되는 분들은 이준익 감독님과 정진영 선배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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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주로 해주는 편인지.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 할 수 있는지 궁금해요.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는 건 '산'과 '책'. 저는 산을 15년 탔어요. 서울에 있는 산은 거의 다 다 가보았죠. 산책 삼아 가는 산이 북악산과 인왕산. 거기에 혼자 대본을 갖고 올라가거나, 대본이 없을 때는 베스트셀러라도 한 권 가지고 올라갑니다.
배우는 체력이 엄청 좋아야 해요. 체력이 좋지 않으면 상대방에게나 현장에서 투정을 부리게 되죠. 여유가 있어야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어요. 운동 안 하는 연극배우를 원래 싫어했어요. 살찌고 얼굴빛도 안 좋고. 저도 매일 술을 먹는데, 대신 낮에 산을 타고 마시라고 해요. 술도 더 맛있고, 건강해진다고.
책은 내가 모르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어요. 책을 안 보는 사람과는 오래 대화하기가 힘들죠. 배우가 캐릭터를 만들 때 간접적인 경험이 도움이 돼요. 거기에 나오는 무수한 인물들을 나로 생각하기 때문에... 저도 < 태백산백 > < 장길산 > 을 읽으면서 캐릭터에 도움이 많이 됐던 경험이 있거든요. 대사, 발음, 호흡도 참 중요하지만 요즘은 캐릭터 위주잖아요."
- 대학로에서 많은 후배들에게 힘이 되고 있는 든든한 선배인데, 신정근씨에게 든든한 분들은 누가 있을까요?
"이준익 감독님과 정진영 선배님이죠. 영화 < 와일드 카드 > 때 정진영 선배님을 만났는데, 그때 저를 잘 보셨는지 '오디션 볼래?'라고 제안하셨던 영화가 이준익 감독의 < 황산벌 > 이었어요. 정진영 선배님은 매우 따뜻한 분인데 뛰어난 분석력을 갖고 계셔요. 사람이 필요한 자리를 알고 있어요. 이준익 감독님은 되게 소년 같고, 굉장히 호탕한 분이에요. 직선적이지만 악의는 전혀 없죠. 이준익 감독님 작품에는 < 소원 > 빼 놓고는 다 출연했어요."
▲그의 연기 인생에 결정적인 전환이 된 작품이 있으니 바로 영화 < 거북이 달린다 > 에서 김윤석의 동네 한량 친구 '용배' 역을 맡으면서부터. 이때 용배 역을 맡은 신정근은 각 잡힌 트레이닝복을 입은 동네 한량으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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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로에서 트레이닝복을 입고 후배들과 격 없이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츄리닝 신정근'이라는 말이 재미있더라고요.
"사실 어릴 때는 꽃무늬 와이셔츠도 입고 멋을 부렸죠. 겉은 번드르르한데 주머니 안에 돈은 한 푼도 없었어요. 이건 허세다 싶었죠. '돈 한 푼 없는 놈이 무슨 멋은...트레이닝복이나 입자' 한 거죠. 그때 운동으로 축구를 시작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그때보다 살림이 나아졌지만, 돈 좀 벌었다고 티내고 싶지도 않아서 계속 트레이닝복 입어요. 그게 제일 편하고요. 근데 요즘 고민스러운 게, 트레이닝복 입고 술 먹는데 저를 알아본 분들이 같이 사진 찍자고 하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검은 와이셔츠에 트레이닝바지나 등산바지를 입고 선글라스를 끼는 참 희한한 패션으로 다녀요."
- 앞으로 어떤 연기를 하고 싶어요?
"정말 중요한 대사는 모두가 초집중을 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힘 빼서 하고, 오히려 평범한 장면은 더 멋있게 만들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 꿈은?
"지금처럼 천천히 열심히 하는 거죠. 하고 싶은 배역도 많이 한 것 같고 큰 욕심 없이 지금처럼 봄날이든, 가을날이든 길을 떠나는 선비의 도포자락처럼 살고 싶어요. 펄럭 펄럭. 더 나중에는 농부가 되고 싶어요. 대신 여행을 좀 많이 다니는 농부. 내 먹을거리만 만들어서 조용히 사는 자급자족 농부가 나중에는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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