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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폐지' 제대로 알아야 할 것들

후암동남산 2015. 4. 2. 15:51

법이 개인의 성생활에 개입할 수 있을까? 늘 논란의 중심에 있던 간통죄. 최근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그 후 콘돔 회사의 주가가 상한가를 쳤으며 성인 나이트클럽은 축제의 현장을 방불케 했다는데, 간통죄 폐지로 인해 불륜에 대한 법률적 처벌이 느슨해졌다고 받아들여도 될까? 대한변호사협회 가사법 전문 변호사인 법무법인 한결의 조숙현 변호사와 간통죄 폐지로 인해 착각할 만한 것들 그리고 제대로 알아야 할 것들을 짚어봤다.

간통죄 폐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론…


하늘이 무너진 듯, 총 맞은 듯. 당해보지 못한 사람이 이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남편이 꽤 오랜 기간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년 동안 화목한 가정을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남편은 그런 내 노력을 한순간에, 간단하게 무너뜨려버렸다. 세상에 있을 법한 모든 욕을 퍼붓고 저주하고 싶다. 솔직히 말해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난다. 그들의 추악한 짓을 온 세상에 알리고 평생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를 써주고 말리라. 나는 '아내'라는 이름을 과감히 내던지고 그때부터 남편과 내연녀의 불륜 현장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기 시작한다…라는 시나리오는 이제 없다. 내 남편과 내연녀가 침대에서 뒹구는 것을 경찰과 함께 똑똑히 목격해도, 증거 자료를 찾기 위해 우악스럽게 이불을 잡아채도 부정행위를 저지른 두 사람을 전과자로 만들 수 없게 됐다. 간통죄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판결이지만 가슴 한구석이 허한 건 왜인지….

간통죄의 허와 실
폐지, 수순이었다?


간통죄 폐지는 수년 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돼왔던 사안이다. 이미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파경을 맞았던 연기자 옥소리가 간통 혐의를 받고 2008년 '간통죄 위헌'을 주장하며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헌재 재판관들의 결정은 위헌 의견이 더 많았다고 한다. 다만 정족수 1명이 모자라 합헌으로 최종 결론이 난 경우라고. 그러므로 이번 의정부지법의 위헌 제청으로 인한 간통죄 폐지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거의 불가능했던 간통죄 입증

간통죄는 입증하기 매우 어려운 범죄였다. 당사자의 자백이나 내연 상대와 아이를 낳았다거나 하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 이외에는 모두 현장 급습을 통한 성관계를 가졌다는, 매우 직관적인 증거를 확보해야 입증이 가능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부정행위 배우자의 뒤를 쫓아 숙박업소나 집에 해당하는 현장을 포착, 경찰을 대동해 들어가 현장 사진을 찍거나 체액이 묻은 물품을 찾아야 했다. 20년 전에는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갈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문을 열겠다'라고 당사자에게 통보를 한 뒤 이행해야 했으니 증거를 잡기란 더욱 팍팍해진 상황이었다. 남녀가 야심한 시간 한 방에 몇 시간 동안 함께 있다가 나왔다. 심적으로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불륜이지만 증거가 없다면 간통죄를 물을 수 없었다.

변호사도 말리는 간통 증거 잡기

불륜이란 부정행위는 분명 잘못된 행동이다. 그러나 조숙현 변호사는 배우자의 간통죄 입증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을 그리 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배우자의 간통 현장을 쫓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심적으로 피폐해지는 모습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간통 증거를 잡고 합의를 통해 위자료를 더 받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권하고 싶지 않아요. 찾아내는, 또 현장을 목격하는 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고통과 황폐함은 아무도 보상해줄 수 없기 때문이에요."

특히 가정에 헌신해온 사람이라면 충격과 고통의 범주가 굉장히 크다. 조 변호사는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상처 입은 감정을 추스르는 것이 선행돼야 하고, 또 자신의 미래를 대비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편이 건강에 좋을 것이라 조언한다.

간통죄로 콩밥 먹을 일, 별로 없었다

2008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간통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5,466명이지만 이 중 22명만이 구속 기소됐다는 기록이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실형 판결된 경우도 거의 없었다. 징역이라도 모두 집행유예 판결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10년 동안 범죄가 주로 불구속 재판주의로 행해지면서 간통 역시 불구속수사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므로 명백하게 간통죄가 입증됐다 하더라도 교도소 근처에도 안 가고 마무리되는 사건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머릿속에 '간통=감옥'을 연상했던 것은 그저 드라마 속 판타지였는지도 모른다.

가사법 전문 변호사이자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인 조숙현 변호사. 간통죄는 그간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일반적인 이혼 소송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던 유명무실한 죄목이었으므로 이번 폐지 결정으로 크게 동요도, 반색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말한다.
위자료를 더 받을 수 있는 협상 카드를 잃었다?


일부 간통죄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 중 하나는 간통죄를 취하하는 조건, 형사 합의를 해주는 것으로 이혼 위자료를 더 청구받을 수 있었는데 그 카드가 사라진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다. 그러나 따져보자. '당장 구속에서 풀려나야 하니까 합의를 한다'라는 것은 먼저 구속이 성립됐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앞에 언급했듯이 그간 대부분의 간통죄는 구속되지 않았다. 단지 전과자가 되면 직장생활하기가 불리한 조건의 일부 직업군에게 간통죄 혐의는 치명적이었던 건 사실이다. 경찰, 군인 같은 공무원이라면 직장에서 파면당할 수 있으니 그때는 합의가 필요할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간통 전과가 있다고 한들 직접적인 피해를 보지 않는 직업군이 훨씬 더 많으니 간통죄 합의를 위자료 협상 카드 중 하나로 보는 건 확대 해석이라 볼 수 있다.

간통죄 폐지, 이제는 제대로 알아야 할 것들
위자료 배상이 커질 공산 있다


이제 모든 배우자의 부정행위에 대한 소송은 민사를 통해 치러진다. 그럼 피해자는 민사를 통해 어느 정도의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동업자 사이에도 상호 간 계약을 지키지 않았을 때 계약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를 한다. 혼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게다가 이제 형사 처분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배상금은 증액돼야 한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조 변호사는 위자료가 전체적으로 증액될 가능성이 높다고 의견을 밝혔다. 실제로 배우자의 부정행위로 인한 위자료 금액이 점점 올라가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혼인을 유지하면서 민사소송을 할 수 있다


간통죄 여부와 상관없이 이전에도 가능했던 일이다. 다만 부부가 재산을 공동 관리하는 경우, 자신의 배우자에게 민사소송을 해 손해 배상을 받아도 무의미한 일이니 내연 당사자에게 소송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죠. 예를 들어 유부남, 유부녀가 함께 바람을 피웠다고 쳐요. 그 아내가 내연녀에게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했어요. 그러면 내연녀의 가계 재산에 타격을 주게 되잖아요? 그러면 내연녀의 남편이 가만히 있지 않죠. 불륜남인 남편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요. 그래서 두 집안이 주거니 받거니 벌금이 오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

벌금의 액수는 불륜 관계의 깊이와 지속 기간에 따라 몇백 만원에서 5, 6천만원까지 간다. 가정 파탄에 대한 잘못은 배우자의 책임이 더 커서 배우자에게 소송할 경우가 5천만원이라면, 불륜 상대에게는 3천만원 정도의 벌금이 내려지는 게 보통이다.

'애슐리메디슨', 맹점 있다


간통죄 위헌 결정으로 마치 간통이 허용되는 것처럼 인식하는 이들이 있다.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착각이라고 볼 수 있다.

"소송에는 형사, 민사, 행정이 있는데 이번 위헌 결정으로 부정행위에 대한 처벌 방식이 형사에서 민사로 가는 것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변호하는 입장에서도 사건을 대하는 기조에 큰 차이가 없어요."

간통죄가 없어졌다는 해방감으로 기혼 전용 채팅 사이트인 애슐리메디슨에서 은밀한 대화를 나눈다면? 그 대화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 실제로 이혼 소송에서 배우자의 부정행위로 가장 많이 채택되는 증거자료가 채팅 사이트 기록과 메신저 내용들이다. 애슐리메디슨에 가입하기 전에 이것이 민사소송에서 아주 불리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참고로 애슐리메디슨은 탈퇴할 경우 '내 흔적 삭제'라는 명목으로 2만원의 비용을 부과하고 있다).

그럼 현재 간통으로 소송을 진행 중인 사건은? 이번 결정으로 가장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배우자의 간통으로 형사소송을 진행 중인 이들이다. 막 고소된 건들은 죄가 되지 않으므로 불기소될 것이고, 재판 중인 사건도 검사가 기소취소할 것이다. 결국 더 이상 진행되는 것은 없고, 관련인들은 필요에 의해 민사소송을 청구해야 한다.

기존 전과자들의 기록은 자동으로 삭제 처리되나? 재심 청구 대상 기간인 2008년 10월 이후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만이 삭제 청구가 가능하다. 그럼 재심으로 무죄가 되면 죄가 없는 것으로 판결을 받았으니 형사 보상이 가능할까? 법률적으로 재심으로 무죄를 받은 사람 중 구금이 됐던 사람은 형사 보상 청구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재심 대상이 되는 2008년 10월 이후 간통죄로 구속이 되거나 실형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으므로 형사 보상이 되는 사안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간통죄, 그 이전에 생각해봐야 할 문제


불륜이 형사 처분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위자료를 얼마나 많이 받을 수 있을지 따지기 전에 먼저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바로 심정적인 부분이다. 실제로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알았을 때의 고통은 어떠할까? 수년간 부부 문제를 상담해온 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단편적인 예로 들자면 '매 맞는 아내'보다 '불륜을 알게 된 아내'가 더 큰 고통에 시달리며 괴로워한다고 한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니까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배우자의 불륜, 말로 표현 못하는 고통

15년 동안 수많은 부부를 상담해온 김미영 소장은 불륜은 배우자에게 "말로 표현되지 않는 상처"라고 입을 뗀다. 물론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기에 긍정성과 자존감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따라 불륜에 대응하는 방법도 다를 것이다. 특히 걱정스러운 부류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분리불안을 겪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배우자의 불륜에 극단적인 공포를 느끼게 된다.

"배우자에 대한 배신감과 불안감에 유독 힘들어하는 분들이 계세요. 상담을 하다 보면 그 원인은 어린 시절 겪은 분리불안에 기초한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들에게는 인간관계에 대한 기본 불안이 내재돼 있죠. 이들이 일정 기간 자가 치료를 하지 못하면 배우자의 단 한 번의 불륜으로 평생 고통 속에 살기도 해요. 공포가 학습된 '공포조건화'라고 하죠."

주부 A씨. 우연히 남편이 윤락업소 여성과 술을 마신 것을 알게 됐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배신감은 불면증으로 찾아왔다. 낮에는 괜찮았지만 잠을 청하려 누우면 남편과 술집 여자의 행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결국 새벽 2, 3시에 집 안은 눈물바다가 된다. 이런 일들이 몇 년동안 지속돼 결국 상담을 통해 의부증으로 진단받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직장인 B씨. 맞벌이하던 아내가 직장 동료와 깊은 관계였다는 걸 알게 됐다. 아내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고, 직장을 그만뒀다. 또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B씨 역시 그녀를 용서하기로 했지만 상처받은 마음은 치유되지 않았다. 외식을 하러 가도 순간적으로 "여기 그놈하고 왔었냐"라고 도발하기도 하고, 별일 아닌 일에 아내에게 시비를 걸었다. B씨는 화병 진단을 받고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모두 김 소장이 상담한 실제 사례들이다. 요즘 들어 주목할 점은 여성 외도로 인한 상담이 늘고 있다는 것.

"제가 가정문제상담소를 12년 전에 열었어요. 남편의 외도 상담이 10건이라면 1건이 아내의 외도였죠. 그런데 작년부터 그 비율이 엇비슷해지는 거예요. 올해 들어서부터는 여성의 외도가 더 많아요. 여성의 성인식이 많이 변한 거죠."

과거 간통죄는 부부 사이에서 상대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는 장치라고 보는 견해도 있었다. 그러나 여성 외도가 늘면서 이런 인식도 무의미해진 것이 사실이다.

스스로 다독이기


배우자의 외도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배우자를 잃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을 잃은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해지고 반쯤 넋이 나간 듯한 모습을 보인다.

"우울의 또 다른 표현은 분노예요. 내 속에 얼마나 많은 분노가 내재돼 있는가. 외향적인 사람들은 이것을 밖으로 표출하며 욕설이나 과격한 행동으로 나타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화를 내부로 집어넣어 자해나 자살을 행하죠. 그건 엄청난 공격성이에요."

분노는 마음의 문을 잠그고 있는 이상 달라지지 않는다. 김 소장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과거는 죽은 시간이라고 말해요. 죽은 시간에 에너지를 쏟기보다 이후에 자신이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집중하라고 해요. 실제로 배우자 외도로 괴로워하는 분들에게 시키는 것들이 있어요. 아주 재밌는 영화 10편을 보라고 해요. 그럼 한 스무 시간이 흐르겠죠. 불가입성의 원리를 적용해서 머리에 가득 들어 있는 고민들을 조금씩 기억 저편으로 밀어내는 거예요."

혹은 친구를 만나거나 산책을 하거나, 마음을 쏟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외도한 배우자들에게는 한 가지밖에 해줄 말이 없네요. 모든 잘못은 대가를 치르게 돼 있어요. 근신하세요. 술 마시지 말고 무조건 일찍 귀가하세요. 집안일을 배우자와 역할 분담하세요."

한 번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그 외도가 한순간 쾌락에 의한 것인지, 진정한 사랑인지는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한 가지 꼭 해선 안 될 일이 있다. 자신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배우자를 몰래 속이는 일. 그건 법적인 문제를 떠나 인간으로서 용서하기 힘든 행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