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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넘으면 '현역코스' 제안…그랬더니 업계1위 된 日은행

후암동남산 2018. 9. 30. 19:15

정년 넘으면 '현역코스' 제안…그랬더니 업계1위 된 日은행

정년 넘으면 '현역코스' 제안…그랬더니 업계1위 된 日은행

[윤설영의 일본 속으로]  남들 퇴직했을 66세에 40대처럼 '훨훨'
 
일본 도쿄도 나카노(中野)구의 세이부(西武) 신용금고 사기노미야 지점을 맡고 있는 아라이 마사나리(荒井昌成) 지점장은 올해 예순 여섯이다.

 
남들은 이미 정년퇴직을 했을 나이지만 그는 도쿄시내 지점의 지점장을 두 곳이나 맡고 있다. 정년을 반년 정도 앞두고 회사로부터 “‘현역 코스’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현역 코스’는 세이부 신용금고에만 있는 제도로, 60세 이후에도 현역 때와 같은 조건으로 일하는 제도다. 35년 넘게 영업, 지점 관리, 신 점포 개발 업무 등을 해온 그를 회사로서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전체 직원 1200여 명 가운데 아라이 지점장처럼 ‘현역 코스’로 일하는 직원은 26명이다.
 
세이부 신용금고 아라이 지점장(66). 정년 후에도 같은 대우로 일하지 않겠냐는 회사의 권유를 받아, 도쿄 시내 2개 지점의 지점장을 맡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세이부 신용금고 아라이 지점장(66). 정년 후에도 같은 대우로 일하지 않겠냐는 회사의 권유를 받아, 도쿄 시내 2개 지점의 지점장을 맡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세이부 신용금고엔 ‘3 YES 1 NO’ 원칙이 있다. 실력 있고, 건강하고, 일할 의지가 있는 직원은 나이를 묻지 않고 고용한다는 원칙이다. 2011년부터 60세 정년 제도도 과감하게 버렸다. 70세 경력사원도 채용했다. 동시에 비즈니스 모델도 바꿔 나갔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전통적인 금융업에서 벗어나 컨설팅업을 확대했다.
 

"나이 정년 아닌 능력 정년, 70대 경력사원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처음엔 인사적체나 인건비 증가 등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업계 만년 2위였던 세이부 신용금고는 정년폐지 4년 만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2017년 기준 영업이익은 80억9500만엔(약 812억원)으로 2위 업체를 거의 2배 차로 따돌렸다. 저금리과 고객감소로 고전 중인 금융업계에선 단연 독보적인 성과다.
 
오치아이 간지 세이부신용금고 이사장은 “60세 이상 직원 층이 두터워지면서 견고한 조직이 됐고, 좋은 업무성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포츠 선수는 은퇴시기를 스스로 정하지 않나. 정년을 없앤 건 똑같은 원칙을 회사에도 적용시켰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고령화와 일손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업의 정년을 파괴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기존 정년을 끌어올리는 것은 기본이고 아예 정년을 폐지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기업 80%가 65세까지 '계속 고용'…고령자 취업률 52%→66%
 
30일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종업원 31명 이상 기업 15만 6113개 가운데 80.3%가 60세 정년 이후에도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65세까지 재고용하는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17.1%는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연장했고, 2.6%는 정년 제도를 아예 폐지했다. 
 
2006년에서 2017년 사이 60~64세 인구의 취업률은 52.6%에서 66.2%로 뛰어올랐고, 65~69세 취업률은 34.6%에서 44.3%로 증가했다.

  
20일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3연임에 성공한 아베 신조 총리가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EPA=연합뉴스]

20일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3연임에 성공한 아베 신조 총리가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최근 자민당 총재선거를 앞두고 "몇 살이 되든 고령자가 보람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계속고용제도'의 나이를 현행 65세에서 70세까지 끌어올리고, 동시에 공적연급 수급개시 연령을 70세 이후, 최대 75세까지 가능하도록 규정을 바꿀 방침이다. 일하는 고령자들에게 인센티브를 확대해, 일손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하루 3시간도 OK" 체력에 맞게 근무시간은 직원이 결정
 
‘정년 파괴’의 핵심은 ‘유연근무제’다. ‘9 to 6’식의 정형화된 근무형태로는 고령자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조업체인 산와전기제작소는 60세 이상 직원의 비율이 20%는 넘는다. 이 회사는 직원들의 건강상태나 체력에 따라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인사팀에서 월급과 연금수령액의 합계가 최대가 되도록 근무시간 컨설팅도 해준다.
 
산와전기제작소 최고령 근무자인 사와다(77)씨. 하루 6시간 정도 근무한다. 회사는 건강 상태와 금전상황 등을 고려해 직원이 원하는 시간대로 근무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를 택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산와전기제작소 최고령 근무자인 사와다(77)씨. 하루 6시간 정도 근무한다. 회사는 건강 상태와 금전상황 등을 고려해 직원이 원하는 시간대로 근무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를 택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하야시 다케히로 사장은 “근무시간과 급여액은 각자 직원이 결정하기 나름”이라면서 “엔지니어의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다. 하루 단 3시간이라도 직원들 의지가 있으면 회사는 다 받아들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호텔 업체인 도요코인은 전체 종업원의 24%가 60세 이상의 고령자다. 역시 근무 장소와 내용, 시간을 본인 희망대로 조정해주고 있다. 79세인 A씨는 하루 4시간 30분씩 월 10~15일만 일하고 6만6000엔(약 66만원)을 받고, 68세 B씨의 경우 하루 6시간 45분씩 주 5일을 근무하고 월 13만3000엔(약 132만원)을 받는 식이다.
 
낮은 임금·일자리의 질은 풀어야 할 숙제
 
일하는 고령자가 늘고 있지만, 임금격차 해소는 풀어야 할 숙제다. 대부분은 60세 이후엔 비정규직, 촉탁 계약 등으로 고용되다보니 급여수준이 크게 떨어진다. 2012년 도쿄도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근로자의 45.9%가 정년직전 급여의 50~70%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엔 법원에서 "고령자의 고용조건은 연속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취지의 판결이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일본 대법원은 후쿠오카현 기타규슈시의 한 식품회사에서 40년간 근무해온 직원이 “회사가 60세 이후 재고용을 조건으로 월급의 25%를 깎은 것은 부당하다”고 낸 소송에 대해 원고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후쿠오카 고등법원은 “정년 이전과 이후의 노동조건에 불합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고령자 없인 경제 안돌아가" 아베 정권, 정년 70세 시대로
2006년 도입된 ‘고령자 고용확보 조치’에 따라 종업원 31명 이상 규모의 기업은 정년 폐지, 정년 연장, 정년 후 재고용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여기에는 고령자를 고용하지 않으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만큼 심각한 인력부족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후생노동성 고용개발부 고령자고용대책과의 담당 직원인 고무라 마오(小村真央)는 "일하려는 고령자의 의지만큼 제도적 뒷받침도 중요하다"면서 "연금개시 연령을 높이는 동시에 정년을 끌어올려 갭을 줄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계속고용제도’ 도입으로 실질적인 퇴직연령이 늦춰졌다.
=2025년 이후엔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65세로 상향 조정되는데, 정년이 60세에 머물러 있으면 최소 5년의 갭이 생긴다. 정부는 실질적 정년을 65세에서 70세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연금 수령 연령을 높이면 동시에 정년을 끌어올려 갭을 줄여줘야 한다.
 

-정년이 연장되면 근로자 입장에선 “죽을 때까지 일해야 되냐”는 불만도 있지 않나.
=은퇴 후 연금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젊었을 때 연금을 제대로 내지 못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건 매우 중요하다. 일본 국민의 70%는 65세가 넘어도 일하고 싶어한다.
 
-고령자가 일본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현재 근로자 가운데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10% 정도 된다.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30년 전엔 5%였는데 2배로 늘었다. 곧 고령자가 일하지 않으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 온다. 고령자 고용은 기업으로선 필연적이다.
 
-고령자의 일자리는 저임금, 비정규직 등에 집중되어 있지 않나.
=임금 등 노동조건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정할 일이지 정부가 개입할 순 없다. 다만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에 따라 같은 일을 하면 연령과 관계없이 임금을 똑같이 받아야 한다는 논의는 진행 중이다. 법 개정을 통해 고령자의 임금격차도 조금씩 해소할 계획이다.
 
-연금수급 개시 연령을 늦춰서 사회보장비용 부담의 증가를 국민들에 전가하는 것은 아닌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사회보장비의 부담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 일본은 건강수명(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수명)이 72세까지 늘어난 상태다. 65세에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그 뒤로 7~8년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이다. 수입이 생기면 연금을 나중에 받아도 되고, 여러 논의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