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원효성사의 해골물이란?

후암동남산 2020. 12. 9. 08:34

불가의 수행 지침서 벽암록에 '줄탁동시'와 같은 결과이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고 신호를 보낼 때 어미가 알아차리고 같은 곳을 쪼아 주어야 수월하다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닭은 어미가 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알 속 새끼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원효에게 해골물이란 깨달음의 경계를 보여 준 사례입니다.

깨닫기 전의 우리는 오감에 대한 인식으로 무엇이든 받아들입니다. 오감의 영역은 경험이 많을 수록 다양해 지며 그 영역에 의미 부여가 되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가 경험한 것과 교육을 통해 익숙한 직접 혹은 간접적인 지식(지적인 것들의 접수)으로 인해 더럽다, 깨끗하다, 맛있다, 맛없다, 재밌다, 재미없다, 이쁘다, 이쁘지 않다 등의 다양한 표현으로 현실의 일상을 표현하곤 합니다.

이러한 표현에 익숙한 원효는 어둠 속에서 목마름은 깨달음에 대한 수행의 끈을 놓지 않은 상황에서 불현듯 나타난 일들 중 한가지 였습니다. 어둠속의 미망과 자신이 깨닫고자 하는 절실함의 어둠은 목마름에 기인한 단순한 물을 마신 행위 였지만 환한 아침에 자신이 어둠속에서 행한 자신의 행동을 감지하는 순간 구토를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서 구토는 또 다시 자신에게 익숙한 직간접적인 배움의 하나가 떠오르면서 구토라는 행위가 이어져 나온 것이랍니다. 원효성사께서 더이상 구토가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되자 자신의 전반적인 상황을 복기하는 수행자로서의 일상으로 돌아가자, 목을 축여주던 그 물과 해골물이라는  아침 현실 속에서 변화는 단지 해의 지고, 뜨는 것 밖에 없는 평온한 일상 이었지만 자신에게 발생된 맛남과 구토의 행위는 자신의 인식의 차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깨달음의 경계를 뚫고 법과 하나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해골물은 단지 수행자에게 깨닫게 하는 매개체일뿐 그 어느 것도 아닌 것이고, 원효성사께서 지속적인 깨달음의 경계를 노크하다 알게 된 깨달음의 실체에 본령의 진입처인 것입니다.

그러면 깨달음이란 각자의 절실함이 극에 달했을 때 다가오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선물일 것입니다. 원효성사에게 깨달음을 얻게 해준 매개체도 중요하지만 매개체로서 깨달음을 갖게 된 수행자 자신의 지극한 정성이 먼저 임을 잊으면 안될 것입니다. 따라서 깨달음의 매개체가 될 것은 많겠지만 그것의 매개체로서 다가오게 하는 것은 각자의 지속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절실함에서 그것이 드러나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