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남산이야기

정월 대보름

후암동남산 2011. 2. 19. 07:54

정월 대보름 달맞이 잘 하셨습니까?

 

 

 

정월 대보름 오곡밥 유래

 

      제21대 비처왕(毘處王 ?~500 炤知王)이 즉위한 지 10년은 무진년(488)인데,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하였다.  그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우는데, 쥐가 사람의

   말을 했다.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라”

      왕은 기병에게 명하여 뒤따르게 하였다.  남쪽의 피촌(避村)에 이르자 돼지

   두 마리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멈춰 서서 이 모습을 구경하다가 갑자기 까

   마귀가 간 곳을 놓치고 말았다.  길가에서 헤매고 있을 때 마침 노인이 나타났

   다.  연못 속에서 나와 글을 바쳤다. 그 겉봉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뜯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뜯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

      병사는 돌아와 그것을 왕에게 바쳤다.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야 뜯지 않아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겠지.”

 

      왕이 그렇게 말하자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두 사람이란 일반 백성이요, 한 사람이란 왕을 말하는 것입니다.”

      왕이 그 말을 옳게 여겨 뜯어보게 하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거문고의 갑을 쏘아라.(射琴匣)”

      왕은 궁궐로 돌아와 거문고 갑을 쏘게 하였다.  그랬더니 내전의 분수승

   (焚修僧)과 궁주(宮主)가 몰래 정을 통하고 있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참형을

   당하였다.


      이때부터 나라 안에 풍속이 생겨났다.  매년 정월 첫 해(亥, 돼지), 자(子, 쥐)

   일, 오(午, 까마귀)일에는 모든 일에 조심하여 함부로 행동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15일은 까마귀가 꺼린 날(烏忌日)로 삼고, 찰밥을 지어 제사 지냈는데, 

   지금까지도 행해진다.


      신라말로 달도(怛忉)는 슬픈 마음으로 모든 일을 삼가고 꺼린다는 뜻이다.

   노인이 나와 글을 바친 그 연못을 서출지(書出池)라 부른다. 

 

      출처 : 삼국유사(三國遺史)

 

 

 

      이런 연유로 정월 대보름에는 궁중에서는 잣, 대추, 밤 등 귀한 음식을 넣어

      약식을 지어먹었으나 서민들은 구하기가 어려워 오곡밥으로 대신해서 지어

      먹었습니다.

 

      이 풍속은 면면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정월대보름날에 오곡밥을 지어먹습니

      다.  예로 부터 정월 대보름에 만들어 먹는 별식을 ‘상원절식’이라고도 하는

      데,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는 장수를 빌며 오곡밥이나 약식을 지어먹고,

      아침에는 귀밝이술 ‘이명주(耳明酒)’을 마시며, 새벽에 부럼을 까서 이를

      튼튼하게 하고 종기를 예방한다는 풍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월 대보름에는 아침에 "아무개" 하고 불러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 가시오."  하며 더위를 파는 풍속이 있는데 저도 늘 써 먹고 있습니다. ^^

      달맞이행사를 통해 저마다 소원을 빌기도 하고,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등도

      하고 지내기도 합니다.  이 날은 그동안 날리던 연도 날려 버리는 풍속도 있

      있습니다.  모든 액운을 날려 버리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