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걷기 좋은 길

한강 하트코스 자전거길...

후암동남산 2010. 2. 25. 23:10

사랑이 온다는 한강 ♡코스 한 바퀴… 봄이 제 오시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고 있다. 매서운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떤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 한 순간 지나치게 따뜻한 2월 날씨가 찾아왔다.매화나 산수유만 봄의 전령이 아니다. 우리 몸이 근질거리면 그게 봄이 다가왔다는 증거다. 한강변에는 벌써 자전거 행렬이 만들어졌다. 자전거 물결이야 말로 진정한 봄맞이라고 할 수 있다. 자전거는 겨울에 탈 수 없다. 눈 때문에 길이 얼고, 찬바람에 얼굴이 언다. 대강 영하 4, 5도가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최저 기온이다. 그러니 자전거를 타는 것은 봄이 왔다는 것이고 그 봄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서울 남쪽에 하트코스라는 자전거코스가 있다. 하트처럼 매끄러운 곡선은 아니지만 하트와 닮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는 길이다. 중요한 것은 그 모양이 하트와 얼마나 비슷한지가 아니라 거기에 얽힌 이야기 혹은 그 상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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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더들이 한강변 자전거 도로를 시원하게 질주하고 있다. 겨울 추위가 물러나면서 한강변 등에는 자전거 타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하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65㎞ 정도 되는 이 코스를 한번도 쉬지 않고 돌면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혹 사랑을 얻으려는 기대에 이 코스를 달릴지 모르겠다. 새해 첫 라이딩 같은 의미를 붙이거나, 초보의 딱지를 조심스럽게 떼려는 마음으로도 달려보는 길이다. 요즘 자전거 동호회 카페에도 이 길을 함께 돌자는 쪽지가 올라있는 것을 보면 라이더 사이에서는 한 번은 거쳐야 하는 코스 같다.

이미 두 아들까지 둔 마당에 새삼 사랑을 구할 것은 아니기 때문에 두번째, 세번째 이유로 이 코스에 도전했다. 사실 겨울이 시작할 무렵 자전거를 집에 들여놓은 뒤 처음 타는 것인데다, 지난해 하반기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면서 내 실력이 65㎞ 정도는 너끈히 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졌었다. 이런 날에 대비해 1월초부터 일주일에 3, 4일은 하루 30분 이상 실내 자전거 타기 운동과 러닝머신을 해왔으니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출발지는 한강시민공원 반포지구다. 한강 자전거 도로를 타고 안양천 자전거 도로로 접어든 뒤 학의천으로 꺾고 과천역을 거쳐 양재천 자전거도로, 탄천 자전거도로를 지나 다시 한강으로 붙어 출발지로 돌아오는 것이다. 서울, 안양, 과천, 의왕 등을 거치니 만만한 코스는 아니다.

각오를 다지며 자전거에 오르니 몸이 이상하다. 발에 힘이 가지 않고 발 놀림이 굼뜨다. 전체적으로 몸이 매우 무겁다. 지난해 처음 자전거를 탔을 때부터 한번도 힘에 부친 적은 없었고 50㎞ 정도를 달리고도 늘 힘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오늘 컨디션이 나쁜 이유는 그저께 당일로 다녀온 소백산 산행의 여독 때문인 것 같다. 거기에 자전거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탓도 있다. 타이어의 바람이 좀 빠지거나 어딘가에 약간의 이상이 있는 것 같다.

상쾌해야 할 출발에서 자신감을 잃으니 눈 앞이 깜깜했다. 그래도 힘을 내 달렸더니 조금씩 기운이 솟는다. 63빌딩을 지나자 헬멧, 고글, 자전거 의상, 신발 등을 화사하게 걸친 라이더들이 무리 지어 나타난다. 날이 따뜻해 소풍 나온 아이와 엄마도 많다.

그들을 뒤로 하고 계속 달려 한강과 안양천의 합수지점에 도착했다. 한강 자전거 길과 안양천 자전거 길에서 온 사람들이 자전거를 세우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같은 장소에서 단체로 쉬는 경향이 있다.

안양천은 모래톱이 많고 그 위에 새가 앉아 있어 한강과는 풍경이 약간 다르다. 안양천의 또 다른 특징은 강한 바람이다. 바람 때문에 누군가가 뒤에서 자전거를 붙잡고 있는 듯 앞으로 시원하게 나아가기가 어렵다. 슬슬 다리가 뻑뻑하고 엉덩이에서 통증이 느껴지며 눈이 침침하고 자전거 타기가 지루해진다. 안양의 박달동을 거쳐 학의천으로 꺾자 이쯤에서 중단하라는 은근한 유혹이 솟는다. 그러나 출발지로 돌아가려면 가던 길을 계속 가든, 온 길을 돌아가든 어쨌든 자전거를 계속 타야 하니 그렇게 할 수도 없다.

학의천 길 막바지까지 갔더니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행인을 붙잡고 묻고 물어 과천역으로 달리는데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어 찻길을 타야 했다. 도로주행을 별로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내 옆을 쌩쌩 달리는 버스, 트럭, 승용차가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다. 자동차의 속도에 맞추느라 죽을 힘을 다했다. 그런데도 과천역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낯선 거리를 헤매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 속도로는 오늘 중으로 이 길을 다 돌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 커졌다. 3시간이나 4시간이면 완주한다는 이 길을, 3시간30분 이상을 달려 절반 정도 온 것이다.

완주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까, 이쯤에서 다른 방안을 찾을까. 결국 현실을 선택해 버스에 올랐다. 얼마 가지 않아 양재천이 나타났고 거기에서 자전거 길로 붙었다. 버스에서 내리는데도 큰 결심이 필요할 정도로 체력과 정신력이 떨어져 있었다.

양재천은, 1980년대 초 개포동 개발이 막 시작될 무렵, 그 동네에 살면서 징검다리를 걸은 적이 많은데 그때의 모습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갈대 사이로 나타난 호화 고층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를 탄지 5시간이 넘어가는 순간 잠실운동장이 저 앞에 보인다. 왼쪽으로 꺾어 한강으로 접어들고는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갑자기 힘이 솟는다. 오늘은 내내 추월을 당했는데 이곳에서는 다른 자전거를 추월했다.

청담대교, 성수대교, 동호대교, 한남대교를 차례로 지나 마침내 출발지점으로 돌아왔다. 일부 구간은 버스를 이용했는데도 6시간20분이 걸렸다. 다른 사람의 2배 정도 걸렸으니 부끄러운 기록이다. 멈추지 않고 달리기는커녕 수도 없이 쉬었고 버스까지 탔으니, 혹시라도 새삼스러운 사랑을 찾을 일은 전혀 없을 것 같다. 초보 딱지를 떼겠다는 말도 차마 입에 올릴 수 없게 됐다.

그래도 한강과 그 지류의 제 모습을 발견한 것은 큰 기쁨이다. 한강 지류는, 자동차로 달린 적은 있어도 자전거로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다. 지류에는 갈대, 물고기가 있고 물고기를 노리는 철새도 많았다. 잠실운동장 부근에는 제법 짙은 뻘도 있었다. 한강의 자연은 생각보다 풍성했다. 그런데도 여의도, 양재천, 안양천 등에서는 포크레인까지 동원해 크고 작은 공사를 하며 인공의 힘을 과시하고 있었는데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힘에 부치는 여행이었다. 그렇지만 봄맞이를 제대로 했으니 기분이 좋다. 아이돌 그룹 2PM이 'Heart Beat'를 부를 때 오른손으로 표현한 것처럼 심장이 불끈불끈 뛰지는 않더라도, 심장에 더운 피가 도는 것 같다. 이 피가, 심란하고 답답한 내 마음을 달래주고 생기를 좀 주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여행수첩

-자전거를 타기 전에 타이어 공기압 등 기본적인 것은 반드시 점검한다.

-전체 구간을 숙지한다. 혼자 달릴 경우 학의천_과천역 구간은 헷갈리기 쉽다.

-한강과 지류의 자전거 길 가운데는 인도를 겸하는 곳이 많다. 자전거보다 보행자가 우선이므로 보행자를 보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