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40대]‘임금피크’ 뒤 50대부터 소득 줄어… 노후경제행복지수 모든 세대가 불안
월급보다 양육비-집값 더 치솟아… “은퇴계획? 꿈도 못꿔”
[동아일보]
《 한국의 40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세대가 됐다. '사오정(45세에 정년퇴직)'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라는 유행어가 상징하듯 은퇴 연령이 낮아지면서 50대가 아닌 40대가 경제활동의 중심에 서게 됐고, 소득도 50대를 앞섰다. 하지만 40대는 본격적으로 집 장만에 나설 때이자 자녀 양육부담 또한 가장 크기 때문에 지출이 가장 많은 연령대에 속한다. 과거에는 40대 때 열심히 벌어 내 집 장만과 자녀 양육을 마무리한 뒤 50대에 높은 소득과 줄어든 소비로 노후를 대비하는 '은퇴 플랜'이 가능했지만 요즘은 노후 준비 자체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40대가 노후에 절대적, 상대적 빈곤감을 가장 많이 느끼는 세대가 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
그렇다고 나머지 연령대가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동아일보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산출한 노후경제행복지수에 따르면 40대를 제외한 나머지 세대들도 '낙제' 수준을 면치 못했다. 100점 만점에 60∼70점 수준으로 모두 '불안' 구간에 놓여 있었다. 김승권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회 양극화와 중산층 위축 추세를 감안하면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노후 불안감이 상당하다"며 "세대별 특성에 맞는 노후 경제생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벌어도 쓸 곳 더 많은 40대
"노후 준비요? 아예 생각도 못합니다. 벌이는 뻔한데 아이 교육비에, 생활비에…. 월급 250만 원으로는 적자인 달이 더 많아요."
대구에서 폐기물처리업체에 다니는 서모 씨(43)는 8년 전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저축을 중단했다. 피아노, 미술, 영어학원 등 사교육비와 학교 등록금, 급식비, 통신비 등 아들에게 들어가는 양육비가 월 100만 원을 훌쩍 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 씨의 소득이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 같지 않다는 점에 있다. 그는 20대 때 직장을 다니다가 자영업으로 방향을 틀어 2년 전까지 식당을 운영했다. 불황으로 폐업하고 어렵사리 재취직한 곳이 현재의 폐기물처리업체. 서 씨는 직장 경험이 많지 않은 자신이 50대가 된다 해도 임원 자리에 올라 높은 연봉을 받기는 힘들 것이라고 체념한다.
이런 걱정은 서 씨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김 연구위원이 2000년과 2010년 가구주의 연령별 소득대비 저축률을 비교한 결과 40대가 2000년에는 저축률이 20.6%로 30대(21.8%) 다음으로 높았지만 2010년에는 20.6%로 저축률은 그대로였으나 순위는 가장 낮은 연령대로 추락했다. 이 저축률에는 예·적금뿐만 아니라 부동산 구입, 전세 보증금, 귀금속 구입에 드는 자금도 포함된다.
40대가 소득 대비 저축률이 가장 낮은 세대가 된 데는 부동산 가격 상승과 교육비 부담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진호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소득 증가율보다 주택가격 상승률이 높아지면서 가계부채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국민은행에 따르면 40대의 월평균 소득은 2000년 223만9635원에서 2010년 375만5544원으로 67.7% 상승했다. 하지만 이 기간 주택가격지수는 69.5% 올랐고, 가계부채는 285% 급증했다. 또 지난해 40대의 자녀양육비 월 지출액은 108만9371원으로 가장 많았다. 2000년에도 자녀양육비 지출이 가장 높은 세대가 40대였지만 소득이 67.7% 늘어나는 동안 자녀양육비는 70.7% 증가해 부담이 더 커졌다. 한경혜 서울대 생활과학대 교수는 "자녀 교육에 헌신하는 한국 가족의 특성상 '자녀 리스크'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 씀씀이 줄이기 힘든 50대
50대는 노후 준비가 가장 절실한 연령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서울 성동구에 거주하는 주부 김모 씨(52)의 남편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대형 건설회사에서 명예퇴직한 뒤 소규모 건설 관련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월 소득 600만 원으로 수입이 적지 않지만 대학생인 두 아들의 등록금과 결혼 때문에 부담이 크다.
베이비부머의 대표 세대인 50대는 부모 세대의 은퇴를 지켜보면서 대책 없는 노후생활의 문제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노후 준비는 가장 잘 돼 있는 편이다. 자기 집 보유율이 72.9%나 되고 소득 대비 저축률도 22.4%로 30대(24.0%)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하지만 김 씨처럼 목돈 들 일이 많은 데다 평소 지출까지 많은 점이 문제다. 오종윤 한국재무설계 이사는 "은퇴 시기가 빨라진 50대가 은퇴 이전과 같은 규모의 씀씀이를 유지한다면 노후 빈곤이 일찍 찾아올 수 있다"며 "소비를 줄이거나 눈높이를 낮춰 제2, 제3의 직장을 적극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60대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곽모 씨(64)는 얼마 전 아파트를 리모델링한다며 가구당 2억 원씩 내라는 바람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3년 전 은퇴해 현금 수입이 없는 곽 씨는 집을 팔아 더 작은 평수로 옮길까 고민하고 있다. 곽 씨는 "부부가 200만 원 남짓한 연금으로 커진 씀씀이를 유지하기도 벅찬데, 목돈이 어디서 나오겠느냐"고 답답해했다.
○ 맞벌이 효과 없는 30대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사는 오모 씨(33)는 맞벌이 부부로 교육업체와 중견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오 씨 월급은 고스란히 양육비로 들어간다. 그는 "노후 대비가 걱정이지만 당장 앞날이 더 캄캄하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30대의 자녀양육비 지출액은 월 49만5022원으로 60대 다음으로 낮지만 월평균 소득(203만2567원)과 비교하면 24.4%로 50대(24.8%)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30대의 노후준비율은 2000년과 2010년을 비교하면 63.5%에서 87.5%로 24%포인트나 높아졌다. 하지만 30대의 노후경제행복지수는 61.2점으로 가장 낮다. 오 씨처럼 30대는 맞벌이 부부가 많지만 자녀가 어려서 양육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30대의 자녀양육비 증가율은 지난 10년간 무려 81.4%로, 40대(70.7%) 50대(53.5%)보다 월등히 높았다. 오 씨는 "저축성 연금, 펀드 등에 어떻게든 돈을 넣고 있지만 이걸로 노후 준비는 턱도 없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한국의 40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세대가 됐다. '사오정(45세에 정년퇴직)'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라는 유행어가 상징하듯 은퇴 연령이 낮아지면서 50대가 아닌 40대가 경제활동의 중심에 서게 됐고, 소득도 50대를 앞섰다. 하지만 40대는 본격적으로 집 장만에 나설 때이자 자녀 양육부담 또한 가장 크기 때문에 지출이 가장 많은 연령대에 속한다. 과거에는 40대 때 열심히 벌어 내 집 장만과 자녀 양육을 마무리한 뒤 50대에 높은 소득과 줄어든 소비로 노후를 대비하는 '은퇴 플랜'이 가능했지만 요즘은 노후 준비 자체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40대가 노후에 절대적, 상대적 빈곤감을 가장 많이 느끼는 세대가 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
그렇다고 나머지 연령대가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동아일보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산출한 노후경제행복지수에 따르면 40대를 제외한 나머지 세대들도 '낙제' 수준을 면치 못했다. 100점 만점에 60∼70점 수준으로 모두 '불안' 구간에 놓여 있었다. 김승권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회 양극화와 중산층 위축 추세를 감안하면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노후 불안감이 상당하다"며 "세대별 특성에 맞는 노후 경제생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벌어도 쓸 곳 더 많은 40대
"노후 준비요? 아예 생각도 못합니다. 벌이는 뻔한데 아이 교육비에, 생활비에…. 월급 250만 원으로는 적자인 달이 더 많아요."
대구에서 폐기물처리업체에 다니는 서모 씨(43)는 8년 전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저축을 중단했다. 피아노, 미술, 영어학원 등 사교육비와 학교 등록금, 급식비, 통신비 등 아들에게 들어가는 양육비가 월 100만 원을 훌쩍 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 씨의 소득이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 같지 않다는 점에 있다. 그는 20대 때 직장을 다니다가 자영업으로 방향을 틀어 2년 전까지 식당을 운영했다. 불황으로 폐업하고 어렵사리 재취직한 곳이 현재의 폐기물처리업체. 서 씨는 직장 경험이 많지 않은 자신이 50대가 된다 해도 임원 자리에 올라 높은 연봉을 받기는 힘들 것이라고 체념한다.
이런 걱정은 서 씨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김 연구위원이 2000년과 2010년 가구주의 연령별 소득대비 저축률을 비교한 결과 40대가 2000년에는 저축률이 20.6%로 30대(21.8%) 다음으로 높았지만 2010년에는 20.6%로 저축률은 그대로였으나 순위는 가장 낮은 연령대로 추락했다. 이 저축률에는 예·적금뿐만 아니라 부동산 구입, 전세 보증금, 귀금속 구입에 드는 자금도 포함된다.
40대가 소득 대비 저축률이 가장 낮은 세대가 된 데는 부동산 가격 상승과 교육비 부담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진호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소득 증가율보다 주택가격 상승률이 높아지면서 가계부채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국민은행에 따르면 40대의 월평균 소득은 2000년 223만9635원에서 2010년 375만5544원으로 67.7% 상승했다. 하지만 이 기간 주택가격지수는 69.5% 올랐고, 가계부채는 285% 급증했다. 또 지난해 40대의 자녀양육비 월 지출액은 108만9371원으로 가장 많았다. 2000년에도 자녀양육비 지출이 가장 높은 세대가 40대였지만 소득이 67.7% 늘어나는 동안 자녀양육비는 70.7% 증가해 부담이 더 커졌다. 한경혜 서울대 생활과학대 교수는 "자녀 교육에 헌신하는 한국 가족의 특성상 '자녀 리스크'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 씀씀이 줄이기 힘든 50대
50대는 노후 준비가 가장 절실한 연령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서울 성동구에 거주하는 주부 김모 씨(52)의 남편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대형 건설회사에서 명예퇴직한 뒤 소규모 건설 관련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월 소득 600만 원으로 수입이 적지 않지만 대학생인 두 아들의 등록금과 결혼 때문에 부담이 크다.
베이비부머의 대표 세대인 50대는 부모 세대의 은퇴를 지켜보면서 대책 없는 노후생활의 문제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노후 준비는 가장 잘 돼 있는 편이다. 자기 집 보유율이 72.9%나 되고 소득 대비 저축률도 22.4%로 30대(24.0%)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하지만 김 씨처럼 목돈 들 일이 많은 데다 평소 지출까지 많은 점이 문제다. 오종윤 한국재무설계 이사는 "은퇴 시기가 빨라진 50대가 은퇴 이전과 같은 규모의 씀씀이를 유지한다면 노후 빈곤이 일찍 찾아올 수 있다"며 "소비를 줄이거나 눈높이를 낮춰 제2, 제3의 직장을 적극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60대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곽모 씨(64)는 얼마 전 아파트를 리모델링한다며 가구당 2억 원씩 내라는 바람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3년 전 은퇴해 현금 수입이 없는 곽 씨는 집을 팔아 더 작은 평수로 옮길까 고민하고 있다. 곽 씨는 "부부가 200만 원 남짓한 연금으로 커진 씀씀이를 유지하기도 벅찬데, 목돈이 어디서 나오겠느냐"고 답답해했다.
○ 맞벌이 효과 없는 30대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사는 오모 씨(33)는 맞벌이 부부로 교육업체와 중견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오 씨 월급은 고스란히 양육비로 들어간다. 그는 "노후 대비가 걱정이지만 당장 앞날이 더 캄캄하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30대의 자녀양육비 지출액은 월 49만5022원으로 60대 다음으로 낮지만 월평균 소득(203만2567원)과 비교하면 24.4%로 50대(24.8%)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30대의 노후준비율은 2000년과 2010년을 비교하면 63.5%에서 87.5%로 24%포인트나 높아졌다. 하지만 30대의 노후경제행복지수는 61.2점으로 가장 낮다. 오 씨처럼 30대는 맞벌이 부부가 많지만 자녀가 어려서 양육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30대의 자녀양육비 증가율은 지난 10년간 무려 81.4%로, 40대(70.7%) 50대(53.5%)보다 월등히 높았다. 오 씨는 "저축성 연금, 펀드 등에 어떻게든 돈을 넣고 있지만 이걸로 노후 준비는 턱도 없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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