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남산이야기

또 다시 (2012년)임진년 당신이 눈 부릅떠야 흑룡이다

후암동남산 2012. 1. 1. 18:53

 

또 다시 임진년 당신이 눈 부릅떠야 흑룡이다
<신년 칼럼>한국을 비롯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모두 정권교체
북 김정일 죽고 불안한 출발…한반도의 명운이 2012년에 달려
      
모두들 묵은해와 새해의 갈림길에 서있다. 해마다 듣는 떠나보냄과 맞아들임의 이중주지만 언제나 그 울림이 새롭다. 그래서일까. 3일도 못가 무너지는 허망함을 번연히 알면서도 설레는 마음을 가눌 길 없어 새해 설계를 이리저리 세워본다.

특히나 내년은 용- 그것도 검은 용의 해라고 한다. 다음은 백룡, 청룡, 황룡, 적룡, 자(토)룡 중 어느 것이 될까하고 실없이 궁금해진다.

용의 색깔이 어떻건 그게 대수로울까. 2012년이 전세계적으로 격동과 변혁의 한 해가 될 것만은 자명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50~80여 개국에서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의 열병을 앓는다. 나라 숫자를 특정하지 못하는 것은 정부구조, 선거의 특성, 정권교체의 양태 등이 상이한데서 유래한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는 선거 열풍으로 달아 오른다

세계는 일단 옆으로 밀어 놓고 우리 주변을 한번 둘러본다. 미국과 러시아가 대선이 예고돼 있다. 중국은 주석단이 교체된다. 대만은 총통 선거가 얼마지 않았고 홍콩은 행정원장을 새로 뽑는다. 일본도 현 총리의 지도력 빈곤과 낮은 지지도로 퇴진이 점쳐진다. 북도 2011년의 끝자락에 김정일이 사망했으니 2012년으로 반올림하면 한 나라도 예외 없는 결과가 나온다.

바다 건너, 산 너머로 보냈던 시선을 거두어 나라 안으로 돌린다. 여권은 박근혜 체제가 가동되었다. 출발도 하기 전에 집안싸움의 조짐이 심상치 않다. 벌써부터 볼 멘 소리가 터져 나온다. 고함과 비명이 담 밖으로 넘어 나오고 기명이 깨지고 의자가 나르는 활극이 다음 순서를 기다린다. 단봇짐을 싸는 위기에서 딴 집 살림을 차리는 절정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극본 줄거리가 말 많은 이의 입에서 오르내린다.

내부 사정이 복잡하긴 야권도 마찬가지다. 제1막은 통합야당의 얼굴 마담을 선출키 위한 당권 경쟁으로 관중을 부른다. 관중이 워낙 없어 판이 적막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지휘부가 4.11 총선을 치른다. 본격적인 싸움은 그 때부터 개시된다. 현재로선 여권에 비해 야권은 뚜렷한 대권 후보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권의 피 내음이 솔솔 풍긴다. 기계와 술수와 음모가 난무하고 합종과 연횡이 수놓아져 보는 이의 얼을 빼놓을 것이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국민은 그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의 화려한 잔치에 속지 않아야 한다. 달 따오기가 호주머니에서 손수건 꺼내기보다 더 손쉬운 세치 혀 놀림에 현혹되지 않는 지혜가 요청된다. 간이라도 꺼내줄 듯 하는 그들의 거짓 친절은 과감히 뿌리치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도와달라고 내미는 손을 붙잡아서는 안 된다.

올해 치러질 총선과 대선의 두 번 선거. 그들은 우리에게 말의 성찬을 푸짐하게 차려 우리의 헛배를 한껏 부르게 할 것이다. 그들의 언약대로라면 이 땅에 사시사철이 봄날인 천국도 사흘 안에 지어진다. 삼일 안에 이 땅은 지옥으로 변할 것이라는 악담과 저주도 빼놓지 않는다.

허풍선이의 장터라서 선거를 외면했다는 변명에 몸을 숨기려고 하지 말라. 그거야말로 후대에 커다란 죄를 짓는다는 것을 모르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먹먹하다. 민주주의의 최대 적은 적대세력이 아니라 무관심과 방관이다. 다수가 침묵할 때 시끄러운 소수가 나라를 나락의 벼랑으로 몰고 갔다는 역사의 가르침을 되새김할 때다. 선거후 ‘그럴 줄은 몰랐다’느니 ‘내 손가락을 잘라야지’하는 때늦은 뉘우침이나 넋두리는 면죄부가 되지 못한다.

◇ 2012년 임진년 용의 해가 밝았다. 예로부터 최고의 능력과 상서로운 기운을 가진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의 해를 맞아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에 대나무와 철골로 만들어진 용 조형물 사이로 2012년 임진년의 새로운 해가 떠오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대북 정책이 무게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놓고, 나라의 명운을 놓고 주사위를 던지는 동안 북도 그들의 나갈 길을 놓고 계산기를 바삐 두드리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 3대 세습이라는 전대미문의 정치놀음을 성공시키는 작업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20대라는 연소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功) 없이 무임승차한 세습권력의 시멘트가 아직 굳지 않아서 그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나머지 앞뒤를 재지 않는 젊음의 ‘철없음’이 두렵다. 경험 미숙에서 오는 ‘무모함’이 걱정된다. 내우를 외환으로 해결하려는 ‘겁없음’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 밤잠을 설친다.

북의 눈치 보기에 보수 세력마저 체질화된 남의 정치판은 북의 체제 안정을 위한 더없는 무대장치로 활용될 것은 뻔하다. 남의 양대 선거는 북의 군침을 돌게 할 먹잇감으로 기막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날갯죽지 꺾인 지 오래다. 북에서는 대화상대가 아니라고 일찌감치 못을 박았다. 남의 지도자치고 어지간한 뱃심이 없고서는 북의 손짓, 발짓, 눈짓에 웃고 우는 꼭두각시 노릇 하느라 넋을 잃지 않을까 싶다.

선거전이 궤도에 진입하면 저마다 북의 환심을 사려고 저들의 구령에 맞춰 열중쉬어, 차렷을 하는 소극을 실컷 보게 될 생각을 하니 지금부터 토악질이 날 것만 같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아부경쟁, 충성경쟁이 벌어질까 우려가 한가득하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불변의 대북 정책이 있어야 한다. 통일문제가 정치권의 공깃돌이 되기엔 너무 무겁다. 이 모든 것도 우리가 고쳐 주어야 할 정치인의 못된 버릇의 하나다.

감성 외교로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주변 정세는 차원을 달리한다. 미국, 중국, 일본의 그 어느 하나도 1 대 1로 맞대응하기엔 우리의 국력으로 벅차다. 어느 일방에 치우쳤다간 나머지 하나로부터의 보복에 대한 뒷감당이 힘들다. 균형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사정이 이렇건만 나라 안에는 반미기류가 심상찮다. 반한세력의 반미 부추김이 도를 넘어 선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다 반미를 지적 유희로 삼는 일부 지식인의 선동도 가세하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하다간 나라의 미래가 우려스럽다.

광해 임금과 인조의 역사적 행적을 옛날이야기로 흘려들어서는 곤란하다.

이제껏 군으로 격하, 매도되었던 광해 임금은 명-청 교체기의 위기적 상황에서 균형외교, 실리외교, 현실 외교를 펼쳐 임진왜란 - 그러고 보니 2012년은 임진년이다 - 으로 심신이 극도로 고단해진 백성을 전란의 구렁텅이로 빠뜨리지 않았다. 인조는 국제 현실에 무지한 유생과 민생을 지팡이 삼고, 감성에 사로잡힌 명분론의 미망에 헤매면서 백성을 병자호란의 불구덩이로 처밀어 넣었다. 우리 민족이 당한 900여 차례의 외침 중 가장 참혹했던 것이 병란이었다. 화냥년이라는 단어, 홍제동, 홍제천 등의 지명은 오늘에도 당시 민중의 슬픔을 증언하고 있다.

오늘이라고 이 현실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의 외교적 접촉에서 중국과 일본의 외교관은 우리 외교관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고압적 자세로 나온다. 그렇지만 한-중-일 3국 대표가 자리를 함께 하면 양국 외교관이 우리의 환심과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한국이 일종의 균형자 역할을 하는 셈이 된다.

서해안 해경 살해 때 중국이 보여주었던 그 방자하고 오만 무례한 자세는 중화(中華)DNA의 실체임을 알아야 한다. 선린 우방국 하면서도 독도문제나 역사 왜곡 문제 등에서 한 치도 물러나지 않는 일본의 도국근성은 우리의 등 뒤를 노리는 비수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가 뒷목을 서늘케 한다. 우리의 외교적 전략은 차가운 이성과 냉철한 판단력을 기본 바탕으로 해야 한다. 반미 놀음은 이쯤에서 멎도록 하는 게 더 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자세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선거철이 되면 당선을 위해 영혼을 저당 잡히기를 밥 먹듯 한다. 나라의 장래를 파는 일쯤이야 눈도 끔쩍 않는다. 그동안 수차례의 선거를 치르며 정치 지도자의 놀음에 나라가 이리 차이고 저리 찢겨 성한 구석이 거의 없다.

선택의 갈림길에 선 국민의 책임과 도리가 그 어느 해보다 엄중하다. 일순의 판단 착오로 우리의 미래를 어둠의 구렁텅이로 내팽개치는 잘못을 범해선 안 된다. 우리 자신이 타율과 구속과 압제의 쇠사슬에 칭칭 묶여 자유와 자존과 독립을 반납하는 역사의 죄인으로 후대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면구스럽기 그지 없다.

1년 뒤 오늘 우리는 ‘열심히 살았다. 후회는 없다’라며 가슴을 펼 수 있어야 한다. 두 눈을 홉뜨고 깨어 있어야 한다. 천근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지렛대를 달리 찾을 필요가 없다. 거짓에 휘둘리지 않고 속지 않는 분별력이면 족하다.

글/조병철 언론인·전 세계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