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재가자를 위한 修禪敎本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

후암동남산 2012. 3. 9. 12:49

 

대통령도 巨富도 물리친 큰스님의 '대쪽 리더십'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

"누구도 법당에서 정성을 다해 3000배(拜)를 마치지 않고서는 날 만날 생각 마라. 내 상좌들에게는 절대 사찰 주지나 주요 소임을 맡기지 마라."

올해 탄신 100주년, 내년 입적(入寂) 20주기를 맞는 한국 현대불교의 큰 스승 성철 (性徹·1912~1993) 스님은 생전에 이렇게 강조했다. 백련불교문화재단과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원(이사장 엄상호)은 '지금, 여기'에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니는 성철 스님의 행적과 사상을 기리기 위해 올해 다양한 기념사업을 마련했다. 성철 스님의 상좌로 입적 때까지 20년간 시봉했던 원택(圓澤) 스님(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은 14일 간담회에서 여러 일화를 들어가며 '성철 리더십'의 요체를 설명했다.

↑ [조선일보]

↑ [조선일보]

3000배…권력·富와 거리 두기

"스님의 '3000배 요구'는 청정한 수행자의 모습을 지켜내기 위한 철벽과 같았다. 권력(權力)·금력(金力)으로부터 자유로운 모습으로 모든 출가자에게 본을 보이신 것이다." 원택 스님의 설명이다. 1978년 구마고속도로 개통 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해인사를 방문했지만, 방장 성철 스님은 만나지 못했다. 당시 스님은 "대통령은 세상의 어른이지만 총림(叢林)에선 방장이 어른인데, 날 만나 삼배를 안 하실 바에야 서로 안 만나는 게 낫다"고 했다. 후일 금융사기 사건으로 구속되는 '큰손' 장영자씨 부부도 1980년대 초반 백련암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당시 주변에선 "장씨 부부를 한 번만 만나주면 대한민국 사찰 불사(佛事)가 전부 다 해결된다"며 졸랐지만 스님의 대답은 이랬다. "그런 불사라면 안 할란다."

보직 맡기지 말라…주변 관리

성철 스님은 또 상좌들이 자신의 그늘에서 권력과 이권을 누릴 여지 자체를 없애버렸다. 세속 말로 하면 일종의 '친인척 관리'다. 1967년 해인사 방장으로 추대된 뒤 주지에게 늘 "내 상좌들에게는 절대 본·말사 주지나 주요 보직을 맡기지 말라"고 '명령'했다. 원택 스님은 "볼멘소리를 하는 이도 있었지만, 어쩌면 그 덕에 지금껏 상좌들이 큰 다툼 없이 살아온 것 같다"고 했다.

수행처 24곳 순례… 기념행사 다양

백련재단과 불교인재원은 내달 31일 스님의 생가를 복원해 세워진 산청 겁외사를 시작으로 평생 수행처 24곳을 매달 순례하는 '영원한 자유인 성철 큰스님 수행도량 순례'를 시작한다.〈지도〉 장마철과 한겨울을 빼고 2014년 8월까지 계속될 대장정이다. 스님이 출가 전 참선을 시작해 40여일 만에 동정일여(動靜一如)의 경지에 들었던 산청 대원사(4월), 출가 본사인 합천 해인사(5월) 등을 거쳐 스님이 깨달음을 얻어 오도송을 읊었던 대구 동화사(9월), '봉암사 결사'의 현장인 문경 봉암사(2013년 7월)도 간다. 10년 장좌불와(長坐不臥)하며 정진했던 대구 파계사 성전암(2014년 4월) 등을 거쳐, 1966년 이후 1993년 열반 때까지 주석했던 해인사 백련암에서 순례의 마침표를 찍는다.

또 내달 5일부터는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서울 견지동 전법회관 선운당에서 '백일법문 강좌', 내달 11일에는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탄신 100주년 다례재, 9일부터 6월 3일까지는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성철 스님의 유품과 유필, 사진, 동영상 등을 선보이는 성철 스님 생애 특별전 '자기를 바로 봅시다'도 열린다. 또 작년부터 '퇴옹성철의 100년과 한국불교의 100년'을 주제로 열리고 있는 학술 포럼은 올해 '퇴옹성철과 한국불교'를 소주제로 스님의 돈점사상과 중도론 등을 4차례에 걸쳐 논의한다. (02)1661-1108

"누구도 법당에서 정성을 다해 3000배(拜)를 마치지 않고서는 날 만날 생각 마라. 내 상좌들에게는 절대 사찰 주지나 주요 소임을 맡기지 마라."

올해 탄신 100주년, 내년 입적(入寂) 20주기를 맞는 한국 현대불교의 큰 스승 성철 (性徹·1912~1993) 스님은 생전에 이렇게 강조했다. 백련불교문화재단과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원(이사장 엄상호)은 '지금, 여기'에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니는 성철 스님의 행적과 사상을 기리기 위해 올해 다양한 기념사업을 마련했다. 성철 스님의 상좌로 입적 때까지 20년간 시봉했던 원택(圓澤) 스님(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은 14일 간담회에서 여러 일화를 들어가며 '성철 리더십'의 요체를 설명했다.

↑ [조선일보]

↑ [조선일보]

3000배…권력·富와 거리 두기

"스님의 '3000배 요구'는 청정한 수행자의 모습을 지켜내기 위한 철벽과 같았다. 권력(權力)·금력(金力)으로부터 자유로운 모습으로 모든 출가자에게 본을 보이신 것이다." 원택 스님의 설명이다. 1978년 구마고속도로 개통 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해인사를 방문했지만, 방장 성철 스님은 만나지 못했다. 당시 스님은 "대통령은 세상의 어른이지만 총림(叢林)에선 방장이 어른인데, 날 만나 삼배를 안 하실 바에야 서로 안 만나는 게 낫다"고 했다. 후일 금융사기 사건으로 구속되는 '큰손' 장영자씨 부부도 1980년대 초반 백련암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당시 주변에선 "장씨 부부를 한 번만 만나주면 대한민국 사찰 불사(佛事)가 전부 다 해결된다"며 졸랐지만 스님의 대답은 이랬다. "그런 불사라면 안 할란다."

보직 맡기지 말라…주변 관리

성철 스님은 또 상좌들이 자신의 그늘에서 권력과 이권을 누릴 여지 자체를 없애버렸다. 세속 말로 하면 일종의 '친인척 관리'다. 1967년 해인사 방장으로 추대된 뒤 주지에게 늘 "내 상좌들에게는 절대 본·말사 주지나 주요 보직을 맡기지 말라"고 '명령'했다. 원택 스님은 "볼멘소리를 하는 이도 있었지만, 어쩌면 그 덕에 지금껏 상좌들이 큰 다툼 없이 살아온 것 같다"고 했다.

수행처 24곳 순례… 기념행사 다양

백련재단과 불교인재원은 내달 31일 스님의 생가를 복원해 세워진 산청 겁외사를 시작으로 평생 수행처 24곳을 매달 순례하는 '영원한 자유인 성철 큰스님 수행도량 순례'를 시작한다.〈지도〉 장마철과 한겨울을 빼고 2014년 8월까지 계속될 대장정이다. 스님이 출가 전 참선을 시작해 40여일 만에 동정일여(動靜一如)의 경지에 들었던 산청 대원사(4월), 출가 본사인 합천 해인사(5월) 등을 거쳐 스님이 깨달음을 얻어 오도송을 읊었던 대구 동화사(9월), '봉암사 결사'의 현장인 문경 봉암사(2013년 7월)도 간다. 10년 장좌불와(長坐不臥)하며 정진했던 대구 파계사 성전암(2014년 4월) 등을 거쳐, 1966년 이후 1993년 열반 때까지 주석했던 해인사 백련암에서 순례의 마침표를 찍는다.

또 내달 5일부터는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서울 견지동 전법회관 선운당에서 '백일법문 강좌', 내달 11일에는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탄신 100주년 다례재, 9일부터 6월 3일까지는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성철 스님의 유품과 유필, 사진, 동영상 등을 선보이는 성철 스님 생애 특별전 '자기를 바로 봅시다'도 열린다. 또 작년부터 '퇴옹성철의 100년과 한국불교의 100년'을 주제로 열리고 있는 학술 포럼은 올해 '퇴옹성철과 한국불교'를 소주제로 스님의 돈점사상과 중도론 등을 4차례에 걸쳐 논의한다. (02)1661-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