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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서울대 나왔는데 왜 이렇게 못살아?" 8세 아들 말에 경악

후암동남산 2012. 11. 6. 07:25

"아빠는 서울대 나왔는데 왜 이렇게 못살아?" 8세 아들 말에 경악

입력 : 2012.11.06 03:08

[앵그리 397세대] [중] 생활 속에서 체득한 '생계형 진보'
자력으론 내집 마련 어려워 전세금도 계속 치솟아 대출금 갚느라고 허덕여
"부모·자녀·노후 모두 챙기는 3중 부양 마지막 세대일 것"
30대에 벤처 붐 40대와 달리 지금 30대는 성공신화도 적어

"아빠는 서울대 나왔는데 왜 이렇게 못살아?"

대기업 과장으로 일하는 김민재(가명·39)씨는 어느 날 아들(8)에게서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아들의 비교 대상은 김씨의 형이었다. 4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김 씨의 형은 서울에 있는 사립대를 나와 중견기업에 들어갔다. 1990년대 중반에 서울 강남에 중대형 아파트를 마련했고, 지금은 임원 승진을 앞두고 있으면서 많은 연봉도 받고 있다.

김씨는 동기 중에서 승진이 가장 빠른 편이고 연봉도 적지 않지만, 형처럼 풍족하게 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특히 그가 어려서부터 중산층의 상징이라고 여겨 온 '중대형 강남 아파트'를 마련하는 것은 이미 포기했고, 오히려 무섭게 뛰는 전세금에 허덕이고 있다. 부모 도움 없이 연애결혼한 그는 서울 강남 개포동에서 2억6000만원짜리 전세를 살고 있는데, 보증금 중 절반이 빚이다. 내년 초 추가로 5000만원 빚을 내야 할지 모른다. 최근 전세금이 3억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김씨는 "어려서는 항상 형을 주눅 들게 했었는데, 지금은 사회 진출이 7~8년 정도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생활수준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난다"며 "아들에게서 이런 얘기까지 듣고 나니 괜히 사회가 원망스럽다"고 토로했다.

물론 397세대 가운데 김씨는 사정이 아주 좋은 편에 속한다. 2000년대 초반을 전후해 사회에 진출한 397세대 가운데 상당수가 무섭게 치고 올라가는 집값 때문에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 최근엔 전세금이 크게 올라 많은 이가 '렌트푸어(rent poor·치솟는 전세금 때문에 빚더미에 올라앉은 사람)'로 전락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397세대를 두고 "부모 도움 없이 중산층에 진입할 수 없게 된 첫 세대"라고 평가한다.

◇자력으로 중산층 진입 불가 첫 세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튼튼한 직장만 있으면 자력으로 서울에 아파트를 마련하는 것이 가능했다. 2002년의 서울지역 전용면적 59㎡형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1억8849만원으로, 당시 30대의 평균 연봉인 3000만원의 6배 수준이었다. 그러나 현재 같은 크기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3억4337만원이며 현재 30대의 평균 연봉인 4500만원의 8배에 육박한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30대들은 그의 부모들이 내 집을 마련하는 과정을 보면서 그럴듯한 자기 집을 그럴듯한 곳에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현실은 이들의 눈높이를 맞춰주지 못해 절망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30대의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 증가율은 2.6%로, 전 연령층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대 6.2%와 50대 8.3%에 훨씬 못 미치고, 4%대인 40대와 60세 이상보다도 낮다. 통계청 관계자는 "다른 세대보다 30대들이 전세금 대출에 큰 고통을 받고 있다"며 "이 같은 부담 때문에 자산 축적도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486세대 중에는 자수성가해 30대부터 큰 기업을 일군 사례가 많다. 대선에 참가한 안철수 후보를 비롯해, NC소프트의 김택진, 네오위즈의 나성균, 넥슨의 김정주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30대 가운데는 이 같은 성공 신화를 찾기 어렵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경제구조가 안정화되면서 젊은이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많이 없어져 버렸다"고 말했다.

◇미래인식 가장 비관적인 세대

이 같은 현실로 인해 397세대들은 매우 비관적이다. 제일기획이 지난해 성인남녀 3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라이프스타일 조사'에 따르면, '성실히 돈을 모아도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항목에 30대는 59%가 '그렇다'고 답했다. 40~50대는 물론 20대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397세대들은 스스로를 '3중 부양 세대'라고 표현한다. 자신의 노후 대비를 하면서 부모를 모시고 자녀도 길러야 한다는 의미이다. 주부 김신정(가명ㆍ36)씨는 "아마 우리 세대가 부모와 자녀를 모두 돌보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며 "윗세대처럼 내 노후를 자녀에게 기댄다는 것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두를 돌봐야 하는 현실이 버겁다"고 말했다.

박정현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30대는 자녀 교육이나 부모 봉양 등 각종 가정 문제에 사회 공동 책임을 강조하는 의식을 갖고 있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문제를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생계형 진보'라는 설명이다. 요즘 정치권에서 앞다퉈 '무상 보육·양육'을 강조하는 것은, 이번 대선의 향방을 좌우할 397세대의 표심을 읽은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397세대

30대이면서 90년대 학번인 70년대생. 810만명가량으로 40대(850만명) 다음으로 인구 비중이 높다. 서태지·HOT로 시작한 아이돌 문화의 첫 소비 세대이고, 경제적으로는 유통시장 최대 소비 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