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 후보를 분노하게 했나.
안 전 후보는 지난 23일 전격적으로 후보 사퇴 선언을 하면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측에 대단히 섭섭하다는 생각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핵심 측근은 26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안 전 후보가 (문 후보와 민주당 측에) ‘더티(dirty)하다’라면서까지 배신감을 털어놨다”고 밝혔다.
사퇴선언문 어디에서도 흔쾌히 문 후보에게 후보직을 양보한다는 뉘앙스를 찾을 수 없었다. 사퇴선언문에 남긴 말과 주변 인사들의 전언에 따르면 안 전 후보는 문 후보 측의 행태에 대해 기득권 지키기, 승리 지상주의와 같은 구태를 버리지 못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환멸과 심각한 무력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는 안 전 후보의 사퇴선언문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면 나타난다. 안 전 후보는 사퇴선언문 모두에 “단일화 방식은 누구의 유불리를 떠나 새 정치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뜻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문재인 후보와 저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제 마지막 중재안은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고 룰 협상이 사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음을 암시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의 가상대결 방식이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는 원칙이었고, 문 후보가 제시한 야권 후보 적합도 조사는 단순한 승리 방정식이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강조했다.
안 전 후보가 사퇴 직전 참모들에게 “제가 대통령 후보로서도 영혼을 팔지 않았으니, 앞으로 살면서 어떤 경우에도 영혼을 팔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안 전 후보 측 관계자는 “지지도 조사 방식은 진짜 아니었다”라고 협상 결렬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안 전 후보는 선언문에서 또 “더 이상 단일화 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문 후보님과 저 두 사람 중에 누군가는 양보해야 되는 상황”이라며 “제가 후보직을 내려놓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어떠한 경우에도 문 후보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니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본인이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였다. 기득권에 가로막힌 제3후보의 좌절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는 계속해 “이제 단일후보는 문재인 후보”라고 하면서도 문 후보 측과 논의되던 정책연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선거운동 방식, 공동정부 운영에 대해서도 일절 말하지 않았다. 안 전 후보는 선언문 말미에 “비록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지겠지만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한다”고 말해 문 후보에 대한 후보직 양보가 결코 가치연합이 아니라는 뜻을 드러냈다.
안 전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안 전 후보가 룰 협상 과정에서 많이 당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며 “민주당이 이 정도로 더티할 줄은 몰랐다고 실망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