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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게임` 세계 철강 벼랑끝으로

후암동남산 2012. 11. 28.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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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철강 생산능력은 20억t 수준. 이 중 4분의 1인 5억t이 남아돈다. 그중 절반인 2억5000만t은 한국 중국 일본에서 넘친다. 한ㆍ중ㆍ일 3국 생산능력이 8억t인 점을 감안하면 30%가 공급 과잉이다.

세계 경제가 호황을 구가하던 2007~2008년 전 세계 철강회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생산을 늘렸다. 당시 대규모 증설은 5년이 지난 지금 공급 과잉이라는 부메랑을 맞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변하자 글로벌 철강회사들이 극한의 생존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세계 최대 철강회사인 아르셀로미탈은 지난 3분기 7억900만달러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순부채만 232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재무구조가 악화되자 미탈은 프랑스 플로랑주 소재 용광로 2기를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 내에서도 특히 좌파 성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되는 아르노 몽테부르 장관이 "이런 식으로 비즈니스를 하려면 차라리 프랑스를 떠나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2006년 프랑스 철강회사 아르셀로를 인수해 세계 최대 철강회사로 성장한 미탈이 프랑스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는 주장이다. 미탈은 이제 공장을 돌려도 손해만 늘어나 프랑스 공장을 폐쇄하고 싶지만 좌파 정부 공세에 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국내 3위 철강업체인 동국제강은 지난 6월 100만t 규모 포항제강소 1후판공장을 전격 폐쇄했다. 설비가 낙후된 탓도 있지만 공급 과잉과 단가 하락으로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생산량을 조절하기 위해서다. 철강업계에서는 1후판공장 폐쇄에 따라 300억원가량 고정비 절감 효과를 거둘 것으로 추정한다. 동국제강은 1후판공장 설비를 동남아시아 등 외국 업체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글로벌 철강산업은 마치 1990년대 반도체 D램 분야에서 벌어진 치킨게임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PC시장 호황기인 1990년대 20여 곳에 달하던 D램 업체는 공급 과잉과 수요 감소, 가격 폭락으로 인해 현재 삼성전자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3개만 살아남은 상황. 철강도 이런 운명으로 치닫고 있다.

올해 철강 수요 증가율은 당초 5.4%에서 3.6%로 줄어들 전망이다. 내년에도 시장 전망은 암울하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글로벌 철강회사 신용등급을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실적 부진이 가장 두드러진 아르셀로미탈은 `정크본드` 등급까지 추락하는 굴욕을 당했다.

결국 글로벌 철강업계는 `생존을 위한 버티기`에 돌입했다. 공격적인 인수ㆍ합병(M&A)을 통해 세계 1위가 된 아르셀로미탈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룩셈부르크 전력회사 에노보스 주식을 4억2900만달러에 매각했고, 철강 서비스 계열사인 스카이라인스틸과 관련 자회사를 6억500만달러에 매각하는 등 10억3400만달러를 긴급 확보했다.

신일본제철은 일본 3위 철강업체인 스미토모금속과 합병해 세계 2위 조강 생산 능력을 가진 신일본제철ㆍ스미토모금속으로 새 출발했다.

중국에선 정부 차원에서 철강업계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조강 생산 능력이 연간 100만t 이하인 중소 철강회사는 중국 정부 조치에 따라 시장에서 퇴출되고, 허베이철강 바오산철강 안강그룹 등 대형 철강회사로 흡수될 예정이다.

국내 철강회사도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고 있다.

포스코는 KB금융지주 SK텔레콤 등 보유 주식을 매각해 5800억원을 긴급 확보했고, 비핵심 자산 매각과 비주력 계열사 정리 작업도 벌이고 있다.

동국제강 계열사인 유니온스틸은 최근 희망퇴직을 받아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했고, 동부제철은 내년 3월까지 6개월 동안 전 임직원이 임금 30%를 반납하는 특별 대책을 실행 중이다.

반면 국외 수요 확대를 위한 현지화 전략도 적극 펼치고 있다. 포스코는 인도네시아에 내년 가동을 목표로 300만t 규모 고로 제철소를 짓고 있다. 동국제강도 포스코와 함께 브라질에 300만t 규모 고로 제철소를 2015년 완공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