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대학입시

대학입시 현장보고서 2013]“추천서·논술 등 제도 복잡해져… 뭘 하나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

후암동남산 2013. 1. 7. 08:57

ㆍ고3 담임 윤태호 교사의 1년

14년차 수학교사, 고3 담임을 맡고 있는 윤태호씨(38·서울 신서고 3학년부장·사진)의 시계는 지난해 내내 학급 아이들의 대입 시간표에 맞춰졌다. 수시 원서접수를 앞둔 여름방학 때는 상담하고 추천서를 쓰느라 사흘 쉰 것 빼고 방학을 통째로 반납하다시피 했다. 정시 원서접수 기간에 맞은 성탄절도 정신없이 지나갔다.

지난달 27일 정시 원서접수 기간이 끝난 뒤에야 윤 교사는 1년의 입시 사이클에서 벗어나 한숨 돌리고 있는 참이다.

11월 대입 수능 전까지 윤 교사의 하루는 오전 5시50분에 시작했다. 6시40분에 집을 나와 7시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자습을 지도했다. 자습이 끝날 무렵 5분간의 간단한 조회를 하고 오전수업을 했고, 수업이 빈 3·4교시에 점심을 미리 먹고 점심시간엔 30분 동안 ‘점심 자습’을 감독했다. 오후 4시20분 정규수업을 마치고 방과후 수업까지 끝나면 6시20분. 각종 잡무와 야간자율학습 지도 당번 등을 하다보면 오후 9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거의 없었다.

보통 교사들은 주당 16~18시간의 교과수업을 담당한다. 주당 35시간인 아이들의 시간표에 견줘 절반 정도 수업을 하는 셈이다. 학년부장인 윤 교사는 부장회의와 주 2회 특별활동시간까지 19시간이 묶여 있었다. 수업이 없는 시간이 절반 정도 되지만 EBS 문제풀이, 일주일에 한번씩 하는 방과후 수리논술수업 준비, 학생들의 면담 준비를 하다보면 시간은 늘 빠듯했다.

1년은 꼼짝없이 고생하자는 마음으로 맡았지만 고3 담임은 녹록지 않았다. 3월 학기 초에는 아이들을 한번씩 상담하며 상황을 파악했고, 6월 모의평가 후 6월 말~7월 초 기말고사 성적까지 나오고 나서 여름방학 땐 수시에 대한 면담을 진행했다.

입학사정관전형에 지원할 아이들의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작업도 여름방학부터 들어갔다. 논술전형에 갈 아이들은 논술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도 체크해 줘야 한다. 올해는 9월 모의평가 3일 후까지 원서접수 기간이었다. 모의평가 결과를 보고 마지막에 진로를 결정하는 아이들이 몰려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수시 원서를 쓰고 나면 입학사정관제가 시작됐고, 논술·적성검사·수능 준비도 동시에 해야 했다.

학급 아이들 37명의 학기 초 상담은 1인당 30분씩 아침 자율학습시간, 방과후, 점심시간에 나눠 2주 정도에 끝낼 수 있었다. 수시 상담이 들어가는 8월부터는 교사가 가장 바쁜 시간이다. 학생과 부모를 같이 상담하느라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입학사정관제 준비에 필요한 자기소개서나 추천서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윤 교사는 올해 6명의 추천서를 썼다. 한명당 2~3개를 썼는데, 내용을 채우기조차 쉽지 않았다고 했다.

“3학년 아이들은 공부만 하고 있어서 정작 아이들의 모습을 알기가 어렵죠. 저는 학교에서 겪었던 사례들을 학생들에게 다 써오라고 한 다음, 1·2학년 때 아이들이 겪었던 일에 대해서 해당 선생님을 만나 물어본 후 어떤 선생님이 이렇게 얘기해 주셨다고 썼어요. 글짓기 능력도 안되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으니 직접 인터뷰할 수밖에 없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정말 힘든 과정이죠.”


올해는 특히 여름방학이 짧아 다들 8월 중순에 개학했는데, 개학 후 학교에선 수업도 하고 면담도 진행하고 밤엔 추천서 쓰느라 몸이 축나는 교사들도 많았다. 보통 추천서 분량이 1500자 내외인데, 5000자를 쓰는 교원대 지원 학생이 있으면 말리고 싶을 정도였다고 했다.

수능 후 수시 2차시험이 진행되면서는 지방대·수도권 대학과 전문대 면담을 하고, 12월 초부터는 수시에 합격한 절반 정도를 빼고 다시 정시 면담에 들어갔다.

윤 교사는 “두번째 고3 담임을 맡았지만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지난번보다 더 어렵고 복잡해지는 것 같다”며 내년엔 3학년 담임을 맡고 싶지 않다고 했다. 육체적인 피곤함보다 ‘내가 교사로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뭘 할 수 있는 건지, 이것이 교육적으로 올바른 것인지’ 생각할 때 드는 자괴감이 크다고 했다.

윤 교사는 현재의 입시 체제는 내신도, 수능도, 논술도 다 준비하라고 하지만 학교에선 뭘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대입 선발 주도권이 대학으로 넘어간 상태에서, 고교교육과 입시가 따로따로 돌아가고 있다”며 “학생들과 교사들이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교육을 하고 그 결과가 충실히 반영되는 입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