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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 현장보고서 2013]내신·수능·논술 다 하느라 녹초… 그래도 재수, 또다시 악몽 속으로

후암동남산 2013. 1. 7. 08:53

대학입시 현장보고서 2013]내신·수능·논술 다 하느라 녹초… 그래도 재수, 또다시 악몽 속으로

ㆍ고3 이성한군의 경우

지난 4일 오후 서울 노량진의 카페에서 본 이성한군(19·가명)의 머리카락 길이는 1㎜가 안됐다. 자칭 ‘반(半)삭발’이었고, 후드티에 트레이닝 바지는 한 달 전 봤던 그대로였다. 경기 안성에서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1월30일, 대학수학능력시험논술시험을 마치고 수시모집에 지원한 대학들의 당락을 기다릴 때였다. 달라진 것은 두 가지. 귀를 덮었던 덥수룩한 머리가 짧아졌고, 약속장소가 학교 앞에서 학원가로 바뀌었다.

이군은 “가족과 고향 친구들을 못 만나는 생활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한 달 전 이군은 “고3 시작하고 엄마 얼굴을 본 게 두 번”이라고 했다. 추석과 수능시험일. 부모가 이군의 자취방에 찾아와 함께 식사한 날이다. 집(경기 이천)에서 안성의 학교까지 통학하려면 1시간이 넘어 학교 옆에 자취방을 얻었고, 3학년이 된 뒤로는 공부한답시고 집에 가지 못했다. 학교·독서실·자취방이 있는 반경 500m를 벗어나지 않은 1년이었다.

후드티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가방을 멘 고3 수험생 이성한군이 지난 4일 서울 노량진에서 학원으로 걸어가고 있다. 경기도 이천에 사는 이군은 올해 대학 수시 모집에서 떨어진 뒤 일찌감치 재수를 결심하고 노량진 학원가에 둥지를 틀었다. |


▲ 갈만 한 논술학원 하나 없는
중소도시에서 자취 생활
“작년 엄마 얼굴 본 게 두 번”


▲ 나몰라라 뒷짐만 진 학교
“답도 없고 무능한 곳” 원망


“통기타도 배우고 싶고, 농구도 좋아하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싶었죠.”

고3에 오른 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이군이 미뤄놓은 ‘욕구’는 많았다. 5시간씩 잤다. 오전 6시30분에 눈을 떠 새벽 1시30분에 잠들 때까지 그의 하루를 지배한 것은 공부였다. 훑어본 EBS 교재와 수능·내신·논술시험용 참고서만 40권이 넘는다.

정작 학교는 이군의 1년 나기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했다. “학교만 믿고는 대학을 절대 갈 수 없어요.” 선생님들에게 입시정보도, 수능점수 올리는 방법도 특별히 구할 수 없었다는 이군에게 학교는 “답도 없고 무능한 곳”으로 남아 있었다.

돌이켜보면, 암기식 내신 공부는 수능에 방해만 됐다는 판단이다. 이군은 “수능은 사고력이 중요한데 학교에선 암기식 공부만 시킨다”며 “1년간 훑은 EBS 교재 공부도 상당 부분은 ‘문제를 외우는 것’을 의미했다”고 말했다. “내신과 수능, 수시·정시도 준비 방식이 달라 부담이 2배, 3배 커진” 입시였지만, ‘나몰라라’ 뒷짐진 선생님들을 보면 원망스러웠다는 것이다.

이군이 수시모집으로 지원한 서울의 사립대 5곳은 모두 논술전형이었다. 하지만 학교에선 논술을 충분히 배울 수가 없었다. 대형 논술학원이 없는 도시였기에 학교에선 서울 대치동 논술학원 강사를 초빙해 방과후수업을 열었다. 이군은 수업시간도 부족하고 만족감도 없어 포기했다. 대신 수험생들 사이에서 잘나가는 논술 인강(인터넷강의)을 들었다.

뭘 해도 찜찜하고 불안했지만, 한편에선 아이러니했다. “학교에선 재수생이 수능을 잘 보니까 현역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논술전형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교육에서 벗어난 지역에선 제대로 된 논술교육을 못 받아 대학 가기 더 힘들다”는 것이다. 이군은 “학교나 인강에서 알려주는 논술 내용이 맞는 건지, 그것만 배우면 합격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그래서 최대한 유명하고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에 가고 싶은데 현실은 한계가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11월8일 수능시험은 기대만큼 잘 보지 못했다. “12년 동안 공부한 걸 하루에 평가하는데 죽기 직전이 이럴까 싶었죠. 시험 2주 전부터 과도하게 긴장해서 컨디션을 놓쳤다”고 생각한다. 과목별로 내신 3등급대인 그는 모의고사보다 수능이 10점 이상 떨어졌다고 했다. 하늘이 노랗고 한숨만 나왔다.

수능시험일 저녁에도 이군은 독서실로 향했다. 바로 논술시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부가 잘될 리는 없었다. 논술 인강을 들으려 해도 수능 커트라인이 어느 정도 나왔을지 궁금했다. 수험생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락거렸다. 논술시험이 모두 끝난 18일에야 그는 이천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꼭 1년 만이었다.

수능을 보기 전만 해도 이군은 “입시에 운이란 없다. 전략과 실력뿐”이라는 말을 믿었다. 그러나 생각이 달라졌다. 윤리 과목에서 3점짜리 1문제를 틀렸는데 2등급이 됐다는 것이다. 실수 1개도 용납되지 않고, 1문제로 등급이 왔다갔다 하는 현실이 가혹하고 미웠다. 이군은 “마치 만점자 1%가 나올 것처럼 얘기하고는 (난도를) 못 맞추지 않았느냐”며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1년을 곱씹을 때 이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두 개밖에 없다고 했다. 책이 펼쳐져 있는 독서실 책상, 또 하나는 딱 한번 마음 편히 웃으며 즐겼던 학교 축제다.

해도 넘기기 전, 이군은 재수를 결정했다. 원하는 대학에 못 가는 아쉬운 수능 성적을 보고 정시 지원도 접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그는 짐을 싸서 서울 노량진 학원가로 올라왔다. 밤엔 고시원, 낮엔 학원. 올해도 그의 하루 중 15시간은 공부로 채워질 거라고 했다.

“재수 결정이 빨랐지만, 쉽지는 않았어요.” 수능 직후 아버지는 “재수는 절대 안된다”고 했고, 이군은 안 시켜주면 죽을 거라고 맞섰다. “왜 그 힘든 1년을 또 해야 하느냐. 대학 나와도 취업난이 심한데, 청춘이 아깝지 않으냐”고 물었다. “경영컨설턴트가 꿈”이라는 이군의 목소리가 커졌다. “조선시대 계층이 지금의 대학으로 바뀌었죠. 그럴수록 대학을 잘 가야 하고. 1년을 바쳐서 80년 인생을 편하게 살려고 재수하는 것 아니겠어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다시 현재를 저당잡힌, 이군은 대한민국 고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