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착한 남자는 언제나 한 발 늦는다'
극중 무정한(이희준)의 캐릭터를 상징하는 말인 듯합니다.우연히 맞잡은 미스김의 손에서 찌릿함을 느낀 이후 줄곧 미스김을 애타게 바라봐 왔지만, 절친 파마머리(오지호)가 난데없이 미스김에게 입맞춤을 하자 차마 자신의 마음을 내색하지 못하고 오히려 '도와주마' 친구를 격려하는 남자, 그 말을 해놓고 속이 체해 남몰래 식은땀을 흘리는 소심한 남자, 이 남자는 그래서 자전거만 탑니다.만원 전철에서 다른 사람을 밀칠 자신이 없기 때문이지요.
무정한의 절친이자 대학, 입사 동기인 파마머리는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더불어 꿈을 나누는 동료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지요, 하지만 계약직은 파마머리의 동료가 될 수 없습니다.반면 무정한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그 사람의 상황보다는 사람 자체를 존중하는 심성을 지녔지요.
미스김과 함께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정주리(정유미)는 와이장에 입사한 이래 늘 다사다난했습니다.밤새워 만든 자료가 든 USB를 찾아 땀나게 공사판을 누볐고, 왕빛나를 도와준다고 처리해준 파일이 잘못돼서 어마어마한 반품 사태를 초래했으며, 다른 사람이 받을 힐난은 자신이 챙겨듣고, 칭찬 받아 마땅한 업적은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기 일쑤지요. 파마머리에겐 비정규직이라 모욕당하고 부장에겐 이름조차 잘못 불리는 불운의 비정규직입니다.빠릿빠릿하고 유능한 미스김과 대비되는 인물이지요.
이런 정주리에게 다정하고 따스한 미소 한 자락을 건네주는 이가 팀장 무정한입니다.허허로운 웃음 뒤로 사람을 귀히 여기는 넉넉한 마음씨가 있습니다.부하직원이라고 반말하지 않고, 허드렛일 시키지 않으며 신분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칼퇴근하며 회식자리를 거절하는 미스김에게도 가족으로서 참석해 달라 부탁할 정도로 그는 직장을 가정처럼 여기는 온정의 사나이지요.
이런 무정한의 따뜻한 마음씨는 힘겹게 비정규직으로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정주리의 마음을 녹이고 있습니다.힘에 겨워 한계에 부닥치려는 정주리는 따로 불러내 점심을 사주며 자신이 든든한 계단이 되어주겠다 힘을 보태주는 선배이기도 합니다.파마머리처럼 유능해서 잘나가지는 못하지만 주변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보석 같은 존재지요.
홈쇼핑 입점을 위해 파마머리가 정주리의 희생을 요구했을 때 정주리의 자존심을 생각하듯, 무정한은 일과 성과를 중시하는 성과지상주의가 판을 세상에서 온정과 인간을 중시합니다.
형편이 어려운 엄마가 힘들게 마련해준 짝퉁 가방이 회사일로 망가져 버렸으나 수선할 돈이 없어 난감한 정주리의 사정을 우연히 알게 된 무정한은, 우연을 가장해 정주리를 찾아갑니다.자신의 신발을 고치러 갔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가방도 찾아왔다는 선한 거짓말과 함께 활짝 웃는 무정한의 표정은 고달픈 계약직의 삶에 허덕이는 정주리가 또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해주지요.
하지만 이렇듯 넉넉한 무정한도 미스김 앞에선 너무 서툰 약자입니다.그동안 차마 건네지 못한 고백을 어제 방송에선 기어이 내던지듯 해치우고 도망갔는데요. 버림받은 트라우마가 있는 미스김이 무정한의 진정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자못 기대가 됩니다.
무정한을 연기하는 이희준의 표정이 퍽 매력적입니다.애잔한 짝사랑을 품고 살지만 화창한 봄날같이 푸근하고 환한 미소는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한때 십년 전 김재원의 미소가 살인미소였다면, 요즘 이희준이 보여주고 있는 미소는 청량함과 함께 따뜻함이 가득한 힐링 미소 같습니다.똑 부러지는 통쾌한 미스김의 활약에 박장대소를 하다가도 이희준의 힐링 미소에 시청자도 푸근한 미소 한 자락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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