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붐은 아직도 최고로 통한다!'
지난 18일 마리오 고메즈의 '6분 해트트릭'과 함께 차범근의 '5분 해트트릭'에 대한 이야기를 칼럼으로 전했더니 인터넷 세상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직접적인 비교에 무리가 있다는 비판도 있었고, '선수' 차범근의 위대함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 '차붐 논란'은 선수 시절의 '레벨'로 번졌다. '당대 최고의 선수였다'는 칭찬과 '특급스타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냉정한 평가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다. 그렇다면 과연, '차붐' 차범근은 어느 정도 레벨의 선수였을까?
선수 시절 '갈색폭격기'라는 별명과 함께 세계 최고의 기량을 뽐냈던 차범근. / 스포츠서울 DB |
수많은 축구스타들이 차범근에 대한 높은 평가를 내놓았다는 사실은 널리 잘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독일 축구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미드필더라는 호평과 함께 '패스마스터'라는 별명을 얻었던 귄터 네처의 일화가 눈길을 끈다. 1970년대 한국과 친선경기에서 묀헨글라드바흐 소속으로 코너킥 골을 기록하며 국내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네처는 현역 은퇴 후 함부르크 SV 매니저로서 차범근을 영입하지 않아 땅을 쳤다고 언급했다. 그는 1970년대 말 차범근을 영입하려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훗날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고백한 바 있다. 네처는 차범근을 함부르크와 리버풀의 '슈퍼스타'로 통했던 케빈 키건과 비교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독일 내 일반인들도 '선수' 차범근은 A급(우수) 이상의 S급(특급) 선수로 바라보고 있다. 필자는 2001년 교환학생으로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당시 40~50대 교수들과 대화 중 단골메뉴가 바로 축구였다. 교수들이 '붐근차'('범근차'를 독일어식으로 읽은 것)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뿌듯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한 교수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차범근이 지금이라면 어떤 선수와 비견될 수 있겠는가?" 그 교수의 입에서 나온 선수의 이름은 바로 라이언 긱스였다. '살아있는 전설' 긱스의 전성기 시절과 비교되는 걸 보면, 차범근의 대단한 인지도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차붐'이 더 대단했다고 평가받았던 이유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 때문이다. 당시 차범근은 날개 자원으로 분류됐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윙' 포지션은 중앙 공격수에 양질의 크로스를 올려주는 것을 주요 임무로 했다. '윙이 돕고 중앙공격수가 해결한다'는 공식이 성립됐다. 하지만 차범근은 달랐다. 윙이었지만 윙같지 않았다. 측면을 중심으로 중앙까지 커버하면서 수 많은 골과 도움을 만들어냈다. 스피드, 체력, 돌파력, 몸싸움 능력, 슈팅력, 헤딩력, 양발 사용능력, 패싱력 모두 리그 최상급이었다. 현재 축구판의 포메이션과 전술을 파괴해버린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이들도 애초에 윙으로 분류됐지만 이제는 공격의 프리롤로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의 모습을 차범근이 먼저 보였다는 데 큰 의미가 담겨 있다. 차범근을 호날두, 메시와 비교할 수 있는 까닭이다.
혹자들은 "1980년대 축구 수준이 지금보다 낮았기에 차범근의 업적을 너무 과하게 평가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세계 최고의 리그였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꾸준히 좋은 경기력을 보였고, 현재 호날두와 메시가 그려내고 있는 '포지션 파괴자'의 모습까지 갖췄던 차범근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는 것은 결코 '오버'가 아니다. 팔을 안으로 굽혀서가 아니라, 냉정하게 봐도 차범근은 현재 최고의 축구스타들과 비교해도 결코 모자람이 없는 선수였다. 긱스를 메시, 호날두와 비교한다고 돌을 던진다면, 그 사람은 선수의 기량을 하이라이트만 보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차범근이 최고의 명문클럽에서 뛰지 못했다고 능력을 폄하해서도 곤란하다. 독일 최고명문 바이에른 뮌헨 뿐만 아니라 레알 마드리드와 AC 밀란도 차범근의 위력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1986멕시코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아르헨티나대표팀도 차범근에 대한 전담마크로 2~3명의 선수를 배치시킬 정도였다. 최고의 팀에서 뛰지 못했지만, 최고의 팀을 바짝 긴장시켰던 인물이 바로 차범근이었다.
차범근은 아직도 유럽 내에서는 '역대 최고의 선수 가운데 한명'으로 통한다.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 요한 크루이프등과 직접 비교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세계 최고의 선수로 기억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직도 '차붐'이라는 멋진 별명으로 불리는 그의 레벨은 '최고'였다.
'사는 이야기 > 함께하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 울리는 엄마의 일생' (0) | 2013.05.08 |
---|---|
요즘 뜨는 아이들...아빠 어디가? (0) | 2013.05.01 |
’드라마에서 착한 남자는 언제나 한 발 늦는다' (0) | 2013.04.17 |
플라시보 효과의 열가지 진실<上> (0) | 2013.04.15 |
2013년도 결혼에 대한 미혼자들의 생각 (0) | 2013.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