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그에게는 친구가 한 명 있다. 1985년생 동갑내기 친구, 그의 친구는 '천재'였다.
박주영. 그의 친구 박주영은 한국 축구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한국 축구는 세기의 천재가 등장했다며 환호했다. 2004년 AFC(아시아축구연맹) U-19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수비수 5명을 제친 후 골을 넣는 박주영의 모습에 한국 축구팬들은 매료됐다. 한국 축구를 이끌 세기의 천재가 세상에 공개되는 장면이었다.
이후 박주영은 승승장구했다. 2005년 FC서울에 입단해 K리그에 구름 관중을 몰고 다녔고, 2006 독일월드컵 대표팀 막내로 발탁되며 천재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어 프랑스 AS모나코에 입단하며 유럽 무대를 밟았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한국 공격의 핵으로 활약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가' 아스널 입단에도 성공하며 한국의 간판 공격수로서의 위용을 떨쳤다. 최근 경기력이 떨어져 팀의 주전에서 밀려나긴 했지만 숱한 논란에도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포함됐다. 천재 박주영은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항상 한국 축구의 중심에서 군림했다.
천재 친구의 화려한 이력과는 달리 그는 바닥부터 시작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연습생'부터 시작한 그는 2군 리그 MVP에 오르며 다음 단계로 올라섰다. 대구FC의 1군 멤버로 활약했고, 이후 주빌로 이와타 등 J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울산 현대에 입단하며 K리그로 돌아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AFC 올해의 선수상도 거머쥐었다.
그는 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왔다. 천재는 아니었지만 성실함과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조금씩 정상을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그는 최고가 될 수 없었다. 그의 옆에는 이미 정상에 오른 친구 박주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J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해도, K리그에서 최고의 선수로 평가 받아도 국가대표팀에만 오면 2인자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천재 친구와 포지션이 공격수로 같았기 때문이다. 1인자는 항상 박주영이었다. 박주영은 늘 그보다 한 발 앞서나갔다. 천재 친구를 뒀다는 이유로 그는 항상 비교 당해야 했고, 박주영보다 평가절하됐다. 언론 인터뷰를 할 때면 그를 위한 질문이 아닌 친구 박주영을 물어보는 일도 다반사였다.
잠시 박주영보다 빛났던 적이 있었다.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그는 대표팀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으며 한국을 7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았다. 당시 박주영은 AS모나코 이적 문제가 겹쳐 대표팀에 차출되지 않았고, 대표팀에 차출된 후에도 월드컵 예선에서는 이렇다 할 활약을 못했다.
그런데 결국 영광의 빛은 그를 비추지 않았다. 그는 남아공 월드컵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했다. 영광은 다시 친구에게로 갔다. 그는 월드컵이 코앞인 상황에서 유럽 진출을 시도하려다 실패했다. 그의 경기력은 하락했고, 끝내 월드컵 본선행이 좌절됐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하는 사이, 박주영은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한국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의 주역이 된다.
그는 4년을 기다렸다. 한을 품고, 독을 가지고 4년을 준비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군인 신분이라도 그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그는 드디어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최종엔트리에 들었다. 그는 친구 박주영과 함께 브라질로 갔다.
언제나 그랬듯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친구인 박주영에게 쏠렸다. 한국 대표팀 주전 공격수는 박주영이었다. 그는 항상 그랬듯이 박주영의 백업 멤버였다. 천재 친구의 그림자에 가려 이번에도 빛이 비켜간 그늘진 곳에서 대회 준비를 했다. 브라질에서도 2인자의 인생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박주영의 그림자에 항상 가려져 있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시기와 질투를 하지 않았다. 순박한 청년인 그는 진심으로 친구를 응원했고, 배려했고, 또 도왔다. 친구가 환한 빛을 내는 사이 그는 자신이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실력이 뛰어난 선수라는 평가는 받지 못했지만 '가장 열심히 뛰는 선수'라 평가 받고 있다. '투혼의 정석'이라 불린다. 그는 끝까지 성실함과 끈기, 투지로 승부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진한 그림자를 걷어냈다. 드디어 그는 천재 박주영의 그늘에서 빠져 나왔다. 그의 얼굴과 몸에 환한 빛이 비쳤다. 축구인생에서 처음으로 천재 박주영보다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 더 큰 찬사와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더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그는 브라질 월드컵 H조 1차전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한국의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러시아 골문을 무너뜨렸다. 한국의 첫 골이다. 한국 대표팀에 대한 불신을 믿음으로 바꾸는 골이다. 투지가 필요한 한국에 투지를 전파했다. 한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선사한 골이었다.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도 높인 가치 있는 한 골이었다.
이 골, 그가 해낸 기적이다. 천재 박주영도 해내지 못한 일을 그가 해낸 것이다. 그가 박주영을 넘어서 1인자가 될 수 있음을 알린 순간이었다. 월드컵에서 과거의 명성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골을 넣고 좋은 활약을 하는 이가 주인공이다. 그렇기에 러시아전 주인공은 분명 그였다. 그가 1인자고, 그가 한국 대표팀 최고의 공격 자원이다.
그는 경기 후 이렇게 말했다.
"4년 전의 서러움을 떨치는 것만 상상했다. 정말 오랫동안 꿈꿔왔고 바랐던 월드컵 본선에서의 골이라 정말 기쁘다. 아직 실감이 잘 안 난다. 슈팅에 자신감이 있었다."
그의 골이기에 국민들은 더욱 감동 받았다. 한을 품었고, 포기하지 않고 끝내 해내는 그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또 친구의 그늘에 가렸지만 시기와 질투가 아닌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일관했던 그의 모습에 또 감동을 받았다. 가장 열심히 뛰는 선수라는 그에 대한 평가가 언젠가는 빛을 낼 거라 믿었다. 그리고 해냈다.
한국의 첫 골 감사합니다,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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