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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 축구의 최후.홍명보

후암동남산 2014. 7. 1. 08:20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아니 ‘홍명보의 아이들’이 결국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탈락했다. 사실 나는 대표팀 엔트리가 처음 발표됐을 때 굉장히 분노했지만 솔직한 지금 심정으로는 조별예선 탈락에 대해 별로 감흥이 없다. ‘우리 대표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벨기에전 패배와 조별예선 탈락에 화도 나고 슬프기도 했겠지만 그냥 남의 나라 탈락과 별로 느낌이 다르지 않다. 자기들끼리 팀을 짜 자기들끼리 쿵짝거리는데 여기에 무슨 ‘우리’라는 감정이 있을까. 아마 많은 이들이 이번 대표팀을 보고 ‘우리’라는 단어보다 ‘너희’라는 단어를 더 친숙하게 느꼈을 것이다. 옆 동네 사람들 친목회 하는데 나까지 그 사람들 즐겁게 놀라고 회비를 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전혀 공감되지 않는 그들만의 축제, 그게 딱 내가 홍명보호를 바라보는 심정이었다.


홍명보의 아이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1무 2패라는 참담한 성적을 거두며 결국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사진=연합뉴스)

논란과 의문만 가득했던 최종 엔트리
이번 엔트리는 모든 게 의문이었다. 홍명보 감독 스스로 세워 놓았던 원칙을 모두 깼다.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는 뽑지 않겠다”고 했다가 그와 정면으로 위배되는 박주영과 윤석영을 끝까지 챙겼다. 여기에 김보경이나 구자철, 홍정호, 지동원 등도 소속팀에서는 벤치를 오가는 신세지만 과감히 발탁하는 등 2012 런던올림픽 당시 홍명보 감독과 함께 했던 선수들이 대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반대로 홍명보 감독의 원칙에 부합하는 박주호와 이명주 등은 아예 엔트리에 포함조차 시키질 않았다. 이유도 구구절절했다. 박주호는 부상이라고 했고 이명주는 자신이 원하는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명주는 소속팀 포항에서 무려 10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전대미문의 기록을 썼다. 더 이상 이명주가 얼마나 더 잘 했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건 누가 봐도 자기 식구들 챙기기였다.

박주호에 관한 문제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최종 엔트리 발표 당시 나는 분노에 찬 마음으로 칼럼을 썼었다.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그중 특히 박주호의 탈락에 대해 자세히 언급했다. 당시 박주호는 봉와직염이라는 부상 때문에 월드컵 본선 때까지 회복할 수가 없어 대표팀에서 뺐다는 게 홍명보 감독의 설명이었고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박주호와 박주영은 같은 부상이었고 박주호의 회복 속도도 그리 늦지 않다는 이유였다. 여기에 그를 끝까지 믿고 기다리기 위해 먼저 박주호를 발탁한 뒤 개막 직전까지 그가 회복되지 못할 경우 엔트리를 교체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홍명보 감독은 며칠 뒤 같은 포지션의 김진수가 부상을 당하자 박주호를 대표팀으로 불러들였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말을 바꾼 것이다. 홍명보 감독의 말처럼 박주호의 부상이 심해 월드컵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아예 그는 김진수 대체자로 엔트리에 뽑히지 말았어야 했다.

박주영 챙기기는 도를 넘었다. 다른 선수들은 수도 없이 테스트를 받았지만 박주영은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 그것도 딱 45분만을 뛴 뒤 무한한 신뢰를 받았다. 이후 여러 공격 옵션을 실험할 것도 없이 대표팀 주전 공격수는 박주영으로 확정됐다. 병역 논란이 있고나서 직접 기자회견장에 같이 나와 “박주영이 군대에 가지 않으면 내가 대신이라도 가겠다”고 말했던 그다. 그렇게 ‘홍명보의 아이들’ 리더격인 박주영은 딱 평가전에서 45분을 뛰고 대표팀 부동의 공격수가 됐다. 그 자리에서 한 번이라도 테스트를 받기 위해, “소속팀에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홍명보 감독의 원칙에 부합하기 위해 죽어라 뛰었던 이들은 땅을 칠 일이다. 이게 ‘의리 축구’가 아니면 또 뭘까. 감독이 추구하는 스타일에 부합하는 선수를 꼽는 건 존중해야 하지만 이 정도라면 누가 봐도 자기 식구들을 챙기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월드컵 개막 직전 나는 이게 심히 우려스러웠고 칼럼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지적했다.


홍명보 감독의 박주영 챙기기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사진=연합뉴스)

베테랑도 없고 교체 카드도 없던 ‘의리 축구’
결국 홍명보 감독은 월드컵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명백한 실패다. 그것도 자기 식구를 챙기다가 당한 실패여서 더 참담하다. 특히 그렇게 무한한 애정을 보냈던 박주영은 두 경기에서 아무 것도, 정말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경쟁도 없이 편하게 대표팀에 승선한 ‘홍명보호의 아이들’ 중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는 결단코 단 한 명도 없다. 부상 없이 그라운드에서 뛸 수만 있다면 선발이 보장된 벤치워머 해외파들은 월급 13만 원의 이근호보다도 못한 활약에 머물고 말았다. 부동의 원톱 박주영의 백업으로 뽑힌 김신욱이 보여준 짧지만 굵은 활약은 ‘홍명보의 아이들’보다 인상적이었다. 정말 편 가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해외파와 국내파를 나눠 논란을 조장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근호와 김신욱이 K리그 선수라서 옹호하는 게 아니라 공교롭게도 그나마 가장 잘한 선수가 바로 이 둘과 손흥민 정도였다. ‘홍명보의 아이들’은 헛바람만 잔뜩 들어가 있었다.

‘엔트으리’ 논란의 정점은 벨기에전이었다고 생각한다. 박주영이 없었는데 무슨 ‘엔트으리’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벨기에전에서 교체 투입된 선수를 보면서 ‘의리 축구’의 단점이 명백히 드러났다고 본다. 벨기에가 한 명이 퇴장 당해 수적으로 한국이 우세인 상황에서 홍명보 감독은 공격적인 교체를 단행해야 했다. 두 골차 이상으로 이겨야 실낱 같은 희망을 이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때 교체 투입된 선수들이 지동원과 김보경, 이근호다. 워낙 논란이 거센 박주영을 여론상 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쓴 교체 카드다. 이 선수들 말고는 공격 자원에 투입할 선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동원과 김보경이 후반에 투입돼 한 게 뭐 있나. 수적으로 앞선 상황에서 분위기 반전을 꾀해야 할 선수들이었지만 이들은 경기 흐름을 다 끊어 먹었고 아무 것도 보여준 게 없다. 소속팀에서도 벤치 신세인 선수들의 경기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이건 처음에 엔트리를 구성할 당시부터 홍명보 감독의 완벽한 실수였다. 홍명보 감독은 대회 기간 내내 박주영을 부동의 원톱으로 기용하고 가끔 김신욱을 교체 투입해 남은 시간을 좀 때울 생각이었다. 홍명보 감독의 머리에는 오로지 박주영만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그렇게 믿었던 박주영 카드가 앞선 두 경기에서 실패하고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김신욱을 선발 출전시켰다. 플랜A는 더 이상 쓸 수 없었고 교체 투입이나 생각했던 김신욱이라는 플랜B를 선발로 쓰니 후반에는 활용할 카드가 없었다. 수적으로 앞선 상황에서 공격은 해야겠는데 벤치를 보니 남은 선수는 소속팀에서도 주전 경쟁에 버거워하는 지동원과 김보경 뿐이었다. 이들이 투입돼 경기 분위기를 바꿔줄 수 있을 리 만무했지만 ‘의리’로 선발한 선수말고는 공격 자원이 아예 없는 상황이었다. 수적으로 앞선 상황에서 상대의 2군을 맞아 오히려 0-1로 패하는데 무슨 16강이고 1승인가.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 카드가 실패하니 바꿀 전술도 없었고 교체 카드도 없었다.

여기에 알제리전에서는 한 번 무너지니 손도 쓸 수 없을 만큼 경기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누차 말하지만 그라운드 안에는 흔들리는 선수들을 잡아줄 베테랑이 있어야 한다. 최강희 감독도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노장’ 김남일을 대표팀에 뽑아 이런 역할을 해주길 원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예 이런 테스트는 시도조차 하질 않았다. 김남일도 데려다 써보고 이동국도 데려다 써보고 경험 있는 선수라면 그 누구라도 테스트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알제리전에서 한국이 속절 없이 무너질 때 주장 완장을 찬 선수는 1989년생으로 웬만한 팀에서는 아직도 중고참 축에도 끼지 못하는 구자철이었다. 자기 입맛에 편한 선수들로만 팀을 구성하다보니 대표팀은 통제도 없고 끈기도 없고 경기장에서 리더 역할을 해줄 이도 없었다. ‘의리 축구’로 아마 합숙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편하게 생활하는 데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이게 보이스카우트 수련회나 다를 건 또 뭔가.


시작부터 ‘의리 축구’ 논란으로 삐걱된 홍명보호는 결국 월드컵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사진=연합뉴스)

이게 바로 ‘의리 축구’의 최후다
이번 엔트리 23명 가운데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주역, 흔히 말하는 홍명보의 아이들은 무려 12명이나 됐다. 특히 남태희를 제외하고는 박주영과 구자철, 기성용, 김영권, 정성룡 등 올림픽 베스트11 가운데 10명이 모두 뽑혔다. 여기에 부상으로 올림픽에 가지 못한 홍정호와 한국영,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홍명보호에 합류했던 김승규까지 포함하면 23명 중 홍명보의 아이들은 무려 15명에 이른다. 그런데 상표나 등급을 숨기고 평가하는 ‘블라인드 테스트’가 축구에도 있었다면 홍명보의 아이들 중 몇 명이나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한국영과 김승규, 기성용 정도를 제외하면 다 수준 미달이었다. 아예 대표팀의 새 판을 짜야할 수준이다. 여기에 홍명보의 아이들이 아니었던 김신욱과 이근호, 손흥민이 펄펄 나는 모습을 보니 더 어이가 없다. 이번 대표팀은 ‘의리’가 다 망쳤다. 홍명보의 아이들, 그들이 보여준 ‘의리 축구’의 비참한 결과다.

이런 팀이 성적이 나오는 게 더 불행한 일이다. 차라리 다행이다. 만약 의리를 앞세운 이런 축구가 성적을 냈다면 그게 더 끔직하다. 그랬다면 앞으로도 자기들끼리 한국 축구를 다 해 먹었을 것 아닌가. 결과만 좋으면 과정이야 어떻건 큰소리 떵떵 쳤을 홍명보의 아이들은 결과로도 보여주질 못했다. 홍명보 감독은 ‘관피아’와 ‘해피아’에 이어 ‘축피아’도 있다는 걸 보여줬고 이제 ‘보스’와 그가 챙기는 무리들만의 축제는 끝났다. 엉망인 엔트리에 전술 역시 무색무취였던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우리 대표팀, 아니 너희 대표팀은 봉합수술이 필요한 상처에 후시딘만 바르고 버티다 더 큰 상처를 입은 꼴이다. 이게 바로 ‘의리 축구’의 최후다.

김현회
前 스포츠서울닷컴 기자
前 풋볼위클리 축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