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함께하는 이야기

목표와 독서의 힘.

후암동남산 2016. 12. 28. 07:25

정규 학교에 다니지 않고 산골서 밭일을 하던 댕기 머리 소년 류옥하다군(왼쪽)이 고교에 입학하기 전인 2013년 전남 신안군 우이도를 여행할 때 모습. 자유학교 물꼬 제공

첩첩산중에서 밭일하며 살던 댕기 머리 소년이 고등학교만 3년을 다니고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 합격해 화제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 대해리 물한계곡에서 사는 류옥하다군(18, 영동고 3)은 고등학교 외에 정규학교에 다니지 않은 산골 소년이었지만, 올해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수시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산골에서 댕기 머리를 꼬고 어머니의 밭일을 도우면서 유년을 보내다가 뒤늦게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3년 만의 일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류옥군은 유아 때 부모를 따라 호주와 뉴질랜드, 미국, 스웨덴, 핀란드,러시아, 에스토니아 등을 3년여 동안 여행하다가 여섯 살이 되던 해부터 지금의 물한계곡서 살았다. 대학에서 유아교육학을 전공한 뒤 새로운 형태의 학교를 만들어 보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물한계곡에 있는 옛 대해분교에 ‘자유학교 물꼬’를 세운 어머니 옥영경씨와 함께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인 아버지 류기락씨는 주말에 한 번 이곳을 찾아오곤 했다.

‘자유학교 물꼬’는 일종의 대안학교이지만, 계절마다 일주일 남짓 소수의 학생을 모아 명상하고 텃밭 일을 하면서 자연을 배우는 ‘계절학교’를 운영하는 게 전부였다.

류옥군도 자연스럽게 이들과 텃밭 일을 하면서 유년을 보냈다.

고교 3년만 정규 학교에 다니고 서울대 생명과학부에 합격한 류옥하다군과 어머니 옥영경씨가 지난해 아일랜드 더블린박물관에서 사진 촬영한 모습.자유학교 물꼬 제공

‘공부는 필요하면 정규 학교에 들어가서 하면 되고,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부모의 독특한 교육관 때문에 학교엔 다니질 않았다.

또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시간에 태산준령에 막힌 산골에서 밭일하면서 지내던 류옥군은 대신 밤마다 어머니와 함께 수많은 책을 읽었다.

또 자기 생각을 매일 노트에 정리하면서 사고력과 글쓰기 능력을 키웠다.

그러다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든 류옥군은 또래 아이들의 보편적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정규학교 진학을 결심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1년 만에 고입 검정고시를 통과한 류옥군은 영동고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모든 게 낯설었다.

그래도 검정고시를 탄탄하게 준비한 덕분에 처음 입학한 정규 학교의 첫 배치고사에서 1학년 200여 명 가운데 20등을 할 수 있었다.

성적표를 받아 든 류옥군은 허리까지 내려와 있던 댕기머리를 싹둑 자르고 ‘2학년 때 전교 5등 안에 들고 3학년 때 전교 1등에 이어 서울대학교에 합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학년 담임을 맡았던 최선우 교사는 “댕기 머리와 입은 옷 등 첫인상부터 달랐지만, 수업 시간의 집중력과 질문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매우 좋았던 아이였다”며 “무엇보다 ‘서울대에 진학해 인간의 뇌를 연구하겠다’는 목표가 확실한 아이였다”고 류옥군을 기억했다.

2, 3학년을 내리 담임한 서민수 교사도 류옥군의 이런 의식을 높게 평가했다.

서 교사는 “거의 혼자서 자란 탓에 사회적 적응력이 부족했지만, 뚜렷한 목표와 사고력을 토대로 놀라울 정도로 공부에 집중해 3년 만에 최고의 실력을 갖춘 학생이 됐다”고 밝혔다.

류옥군이 인간의 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10살 쯤 됐던 해 우연히 초등 특수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와 함께 특수아동 재활치료 프로그램에 참가해 생명에 관한 강의를 듣고 나서부터다.

“뇌 신경에 자극을 줬더니 깨어난 환자의 입에서 ‘신을 보았다’는 말이 나왔다”는 강연을 듣고 종교와 신이 뇌 신경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인간의 뇌를 연구하겠다고 다짐했어요.”

류옥군은 이 꿈을 이루기 위해 고등학교 3년 동안 방학 기간 외에는 집에도 거의 가지 않고, 책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골이라 마땅히 과외를 받을 곳이 없어 교육방송을 주로 보면서 부족한 학업을 이어갔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공부에 가장 큰 도움이 된 부분에 관해서는 ‘독서’를 주저 없이 꼽았다.

“산골에서 심심할 때면 어머니와 함께 책을 읽었어요. TV나 친구도 없고, 최대의 놀이가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폭넓은 독서가 학습 효과로 나타났어요.”

류옥군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밝혔다.

부모의 성을 모두 딴 류옥군의 이름도 독특하다.

‘하다’는 ‘큰집 하’(廈)자와 ‘많을 다’(多)자를 붙여 만든 이름으로 ‘큰집에서 많은 사람을 섬기고 살라’는 뜻이라고 어머니 옥씨는 설명했다.

옥씨는 이같이 독특한 방법으로 류옥군을 키운 내용을 상세히 담은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가제)라는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류옥군은 “앞으로 목표는 인간의 뇌를 연구해 ‘노벨의학상’을 타는 것”이라며 “서울대 합격의 꿈을 이뤘으니 이제 대학에서 더 열심히 공부해 이름의 의미처럼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류옥군이 다니는 영동고는 올해 이예림양(18)이 서울대 영어교육학과에 합격해 시골학교로서는 보기 드물게 2명의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