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최고… 소녀시대보다 유명한 한국 여가수
[서경이 만난 사람] 나윤선 재즈 보컬리스트
"새로운 한류 창출해야 100년 넘는 재즈처럼 세계 속의 문화 될 것" 車·영화·K팝에그치지말고 다양한 장르 해외에 알려야 제품·문화 시너지효과 창출 선순환 구조 만들 수 있어
"새로운 한류 창출해야 100년 넘는 재즈처럼 세계 속의 문화 될 것" 車·영화·K팝에그치지말고 다양한 장르 해외에 알려야 제품·문화 시너지효과 창출 선순환 구조 만들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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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보다 다양한 한국문화가 해외에 소개돼야 합니다. 그래야만 한국 제품과 문화가 서로 시너지를 창출하고 한류가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43)은 적어도 유럽에서만큼은 한류의 '원조'다. 유럽 사람들이 유튜브를 통해 한국의 대중가요를 접하고 K팝 팬이 된 것은 불과 수년 전. 그러나 그는 17년 전 프랑스로 건너가 재즈를 배웠고 그곳에서 데뷔해 지금은 당대 최고의 재즈 가수 반열에 올랐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직접 부딪혀 개척한 유럽 한류의 파이어니어다.
지난해 유럽에서 최고의 한해를 보내고 돌아와 국내활동을 마치고 다음달 2일 다시 유럽으로 떠나는 나윤선을 만났다. 그는 "전자제품ㆍ자동차ㆍ영화ㆍ드라마ㆍK팝까지 한국 제품과 문화가 세계에 소개되고 있지만 이제부터는 보다 다양한 한국문화가 세계에 나가야 한다"며 "새로운 단계의 한류를 창출해야만 재즈처럼 100년 넘게 가는 세계 속의 문화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기억하는 유럽의 한류는 문화가 아닌 가전제품에서 시작됐다.
"지난 1995년부터 프랑스에서 유학했는데 언젠가부터 LG TV, 현대차, 기아차 이런 것들이 주변에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한국 사람들이 참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이런 게 처음 느낀 한류였어요."
그로부터 몇 년 뒤부터는 프랑스 사람들은 자신을 만나면 하나같이 영화 얘기를 물어봤다고 한다. 박찬욱ㆍ홍상수ㆍ김기덕 등 작가주의 감독들이 유럽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이후 몇 년 전부터는 유럽 젊은이들이 유튜브를 통해 K팝을 즐기게 됐고 이는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도 급속히 확산됐다. 이것이 유럽에 한류가 전파된 대략의 과정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유럽에 제품수출을 열심히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문화가 나가게 된 건데요. 이제는 이후의 선순환 구조를 생각해야 합니다. 요즘 모두가 한류를 이야기합니다만, 그 근본에 있는 논리가 지나치게 상업적이에요. 이런 상업주의는 한국문화가 균형 있게 세계에 뻗어나가는 데 방해물이 될지 몰라요."
나윤선은 재즈의 예를 들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재즈는 미국 흑인들이 아무런 물적 기반 없이 창조한 음악입니다. 이런 장르가 세계에서 100년 넘게 계승되게 한 힘은 거대한 자본이 아니에요. 그 힘은 장르 자체가 가진 어떤 '스피릿(spirit)'입니다. 한류도 이러한 단계로 넘어가야 하고 그렇게 되면 한국 제품도 더 많은 사랑을 받고 더 잘 팔 수 있을 겁니다."
그의 말대로 재즈는 100년 전 미국에서 태어나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훗날 미국의 상품, 미국의 팝음악, 미국의 프로스포츠가 세계화할 것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고 지금도 하나의 장르로 세계 음악시장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나윤선의 남편이자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기획자인 인재진(47) 상명대 디지털미디어대학원 겸임교수가 한마디 덧붙였다.
"한때 일본 제품과 자본이 세계를 휩쓸었지만 문화가 따라가지 못했던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돈만 아는 일본, 이코노믹애니멀로 비치던 때가 있었고 결국 지금은 일본 제품들도 예전 같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나윤선은 한국문화가 해외에 더 많이 소개되는 것과 동시에 한국도 더 많은 외국문화를 받아들여야만 문화강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뉴욕이나 프랑스 파리가 왜 세계인이 동경하는 곳이 됐을까요. 그곳에 가면 세계의 문화가 다 있거든요. 음악을 예를 들면, 파리에서는 인도에 가지 않아도 인도 음악을 접할 수 있고 아프리카 민속음악도 들을 수 있어요. 이제는 한국도 새로운 걸 들여와 경험하고 계속해서 다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창조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는 "그래야만 문화적인 면에서 한국이 지금보다 더 세계의 트렌드를 주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미 기업화된 것들이 아니라 개개인들이 세계 곳곳의 문화계에서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문화강국으로 가는 길이 빨라질 것"이라며 "이제는 상품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문화를 얘기하는 쪽으로 한류가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KDB산은금융그룹이 3년간 자신을 홍보대사로 위촉한 것도 개인의 차원을 넘는 의미가 있다고 봤다. 재즈처럼 팬이 한정된 장르, 그것도 해외활동을 위주로 하는 가수를 후원하는 기업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단계의 한류를 앞당기는 데 커다란 힘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산은금융으로부터 후원 의사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후원조건을 듣고는 더 놀랐습니다. '그냥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라'는 게 전부였거든요."
그에 대한 후원은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이 직접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 회장은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한 나윤선의 삶에 남다른 가치를 부여해 홍보대사 위촉을 결정했다.
"우선 저와 산은은 파이어니아적인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비슷해요. 재즈가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대중음악의 근간이듯이 산은도 대중적인 은행은 아니었지만 한국 경제의 근간 역할을 했잖아요. 그 점도 비슷하다면 너무 아전인수격인가요."
나윤선은 후원에 대한 감사 표시로 내년부터 내는 음반에 산은금융 기업 이미지(CI)를 삽입하기로 '자발적'으로 결정했다. 산은금융이 벌이는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계획이기도 하다.
그는 다음달 2일 프랑스로 건너가 곧바로 공연에 돌입한다. 5월까지 유럽 각지에서 50회의 공연이 잡혀 있다. 나윤선은 매년 100회 이상의 공연을 소화하는데 올해도 역시 공연을 통해 관객을 만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아울러 음반 준비도 서둘러 연말께 녹음한 뒤 내년 초 정규 8집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늘 열심히 공부하는 뮤지션이 되겠다'는 게 목표다. 무대와 음반에서 언제나 새로운 시도를 하고 늘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굴해 변신하고 싶다고 했다.
끝으로 나윤선은 어려운 시기에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했다. 자신도 좌절의 순간들을 희망으로 이겨냈다고 했다.
"한국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사실 지금은 어느 나라를 가나 다 어렵습니다. 제 주변도 다들 그렇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순간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는 말을 스스로 되뇌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빛이 보일 것입니다."
佛·獨 '올해의 가수'등 작년 재즈분야 상 휩쓴 유럽 한류 '파이어니어' ■ 나윤선은
나윤선은 지난해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그의 남편 인재진 상명대 디지털미디어대학원 겸임교수가 "지난해에야 비로소 감히 유럽 최고의 재즈 가수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위치까지 올라섰다"고 말할 정도로 활약이 돋보였다.
나윤선이 지난 2010년 가을 유럽에서 발표한 정규 7집 '세임걸(Same Girl)'은 지난해 유럽 재즈계를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매 이후 프랑스 재즈 차트에서 4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30주 연속 10위권에 들더니 지난해에는 통산 프랑스 재즈차트 1위에 올랐다.
큰 상도 여럿 받았다. 프랑스 최대 재즈어워드인 '아카데미 오브 재즈'에서 '올해의 재즈가수'에 선정된 데 이어 독일 레코드산업협회가 주는 '에코 재즈 2011' 시상식에서 해외 아티스트 부문 '올해의 여가수'에도 꼽혔다.
지금도 유럽 주요국 대형 음반매장의 재즈 코너에는 대부분 나윤선의 대형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다. 유럽에서는 적어도 아직까지 K팝 스타들보다 나윤선이 더 유명하다.
나윤선은 이러한 성공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지난 15년 동안 활동한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세임걸' 음반은 딱 하루 만에 녹음했어요. 모든 곡을 원테이크로 연주하고 노래했지요. 어마어마한 자본을 들여 마케팅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15년간 새로운 모습에 도전한 결과라고밖에 말할 수밖에요."
나윤선은 "저에게도 이런 결과가 있었던 것처럼 너무 빠른 포기는 금물이라고 모두에게 말씀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나윤선의 삶은 도전 그 자체였다. 건국대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당시 사세를 급속히 확장하던 한 패션 회사에 취직했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8개월 만에 그만뒀다. 그러던 중 그의 친구가 당시 기획단계였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나윤선의 노래 데모테이프를 냈는데 기획자 김민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는 1994년 그 뮤지컬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이후 정명훈이 지휘한 환경음악극 '오션월드', 김민기가 연출한 뮤지컬 '번데기'에서도 주인공을 맡아 서울연극제 대상까지 받았지만 1995년, 27세 때 과감히 프랑스 음악학교 CIM 유학을 선택했다. 재즈를 선택한 것은 음악을 하는 한 친구가 "클래식을 하기에는 나이가 많고 대중음악의 원조인 재즈를 하면 다른 것도 다 할 수 있다"고 권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해 좌절도 많았다. 그러나 5년을 공부해 학위를 받은 뒤 그 학교에서 1년간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나윤선은 음악가족에서 나고 자랐다. 국립합창단을 만들고 오랜 시간 단장을 지내다 지난해 퇴임한 나영수(74) 한양대 명예교수가 아버지이고 어머니는 1세대 뮤지컬 배우인 김미정 씨다. 나윤선은 "아버지는 아마추어 합창단을 프로 수준으로 끌어올린 분"이라면서 "새벽3시까지 음악작업을 하시곤 했는데 고3 때도 저보다 아버지가 늦게 주무셨다"고 소개했다.
나윤선은 도전하는 삶을 남에게도 권하고 싶다고 했다. 파이어니어들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반드시 성공하고 그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게 나윤선의 지론이다. "저도 힘들 때 음악을 포기했다면 지금 같은 날은 오지 않았겠지요. 지금도 세계 곳곳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한국인 파이어니어들이 있습니다. 도전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들을 응원합니다."
◇약력
▲1969년 서울 ▲건국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 ▲1995년 프랑스 재즈학교 'CIM' 입학 ▲1999년 생모르재즈콩쿠르 대상 ▲2000~2001 CIM 교수 ▲2001년 앨범 '러플레(Reflet)'로 데뷔 ▲2005년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음반상 ▲2009년 프랑스 슈발리에 훈장 ▲2011년 독일 에코 재즈 해외 아티스트 부문 올해의 여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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