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 모자를 쓴 채 앉아있는 학생이 눈에 띄어도 이젠 호통을 치지 않는다. 머리를 감지 못했겠지 좋게 짐작하고 애써 모른척하는 것이다. 한번은 학생으로부터 "EE381 강의를 듣는 xxx입니다, 서울에 올라갈 일이 생겨 강의를 결석하니 양해바랍니다."라는 짧은 이메일 편지를 받았다. 나는 잘 알겠노라고 답을 하면서, "교수와 같은 어른에게 편지를 쓸 때는 `양해바랍니다'라는 표현보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 하고, 편지의 끝에는 `xxx 올림'으로 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첨언하여 보냈다. 그러자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xxx 올림."이라는 답을 받아 기뻐한 적이 있다.
최근 발견한 강의실 풍경으로, 강의를 하고 있는 중인데 아무 말도 없이 강의실을 유유히 걸어 나가는 학생들이 더러 있다. 대개는 뒤쪽에 눈 마주치지 않게 하고 앉아 있는 학생들로, 급한 생리현상이거나 졸음을 쫓느라 나갔나보다 생각하였는데 아예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일이 내 클래스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런 학생을 찾아내 다음시간에 혼쭐낸 적이 있다. 예절을 모르는 정도가 지나쳐 학생이라는 본분을 망각하는 행동에 대하여는 단단히 일벌백계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학생이던 때에 비추어보면, 교수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강의실을 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긴, 교수들 중에도 다른 동료나 학생들에게 이런 저런 형태의 실례되는 행동을 하는 분들이 있다. 강의 때 잔뜩 써 놓은 칠판 글씨를 지우질 않고 나가 버리는 경우도 있고, 정시에 강의를 끝내질 않아 다음 시간에 그 강의실을 써야 할 교수와 학생들을 기다리게 하는 것 등이 말하자면 `예의'와는 거리가 있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을 마친 사람에게 기대하는 암묵적 인격모델이 있으며, 구성 요소로서 강한 윤리의식과 높은 예의범절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대학에서는 이들에 대하여 별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동안 가정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대가족시스템이 핵가족화하면서 가정이 별 역할을 못하는 현실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우리가 살면서 가끔 해보는 이 질문은, 특히 머지않아 독립하여 세상에 나갈 대학생에게는 심각한 물음일 수 있다. 이런 학생들에게 대학에서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구체적인 가르침을 제공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음가짐에 관하여는 `모더스 비벤디'(Modus Vivendi)란 라틴말이 좋은 힌트로서, 그 말 자체는 `사는 법'(Way of living)을 뜻하지만 `내 생각과 다른 것에도 동의할 줄 아는 마음자세'를 함의하고 있으며, 미지의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공생하라는 공자의 화이부동(和而不同) 철학과도 통한다고 생각한다. 학교 측에서는 구체적으로 예와 윤리를 묶어, 가칭, 예학(禮學)이란 교과목을 가르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이런 과목을 통하여 학생들은 여러 부류의 사람과 부딪치면서 살 때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는 법도 배우며, 바르고 떳떳하게 살되 남에게 폐가 되지 않고, 더 나아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멋있게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예'(禮)- 그 자체는 학문의 대상이 아닐 수 있지만 `예'의 본질을 생각해 보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하는 문화현상 속에서 어떻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속적인 소통관계를 이룰 것인가 따져보는 것은 학문적으로도 도전해 볼 만 할 것이며, 앞으로의 세상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큰 정신적 자산이 될 것이다. 사실 글로벌 시대에 세계를 적극적으로 잘 살아가는 데에 영어가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오히려 강한 윤리의식과 예의를 아는 마음가짐이 세계인들과의 원활한 상호 소통을 위한 충분조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