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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무너진 ‘샐러리맨 신화’에서 배우는 3가지 교훈

후암동남산 2012. 10. 15. 21:56

무너진 ‘샐러리맨 신화’에서 배우는 3가지 교훈 "창업 공신 자르고, 무리하게 확장"

비즈니스 포커스

‘샐러리맨 신화’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팔러 다니던 외판원에서 재계 자산 순위 31위의 그룹을 일궜던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백기를 들었다.

법정관리 직전 오너 일가의 지분 매각, 계열사 부채 상환 등 도덕적 해이가 드러나면서 윤 회장에 대한 채권단의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비난 여론을 견디다 못한 윤 회장은 10월 4일 그룹의 지주사인 웅진홀딩스 대표에서 사임하며 한 발 물러섰다.

사실 기업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다. 기업 창업 후 10년 이상 생존율은 10%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30대 그룹 중 15개가 무너졌다. 재계에서는 웅진의 법정관리 신청 소식이 알려지면서 ‘웅진 다음으로 무너질 그룹은 000’라는 흉흉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금융 당국에서도 유동성이 취약한 것으로 알려진 몇몇 그룹을 긴급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학습지와 정수기 렌털 사업의 성공으로 “외환위기를 견뎌낸 유일한 소비재 기업”이라는 칭송까지 들었던 웅진그룹이 이처럼 허무하게 무너진 이유는 뭘까. 우리는 웅진의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

윤석금 회장은 무리한 사업 다각화와 경영권 집착으로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치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무리한 확장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웅진의 실패는 무리한 사업 다각화의 결과다. 그 첫 번째가 극동건설 인수다. 윤 회장도 10월 5일 서울 충무로 극동빌딩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제가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다 보니 기업 회생 절차까지 오게 됐다. 건설과 태양광 사업에 무리하게 투자했다”고 털어놓았다.

웅진은 건설 경기 호황의 끝물이었던 2007년에 빚까지 내가며 7000억 원에 가까운 거액을 주고 극동건설을 인수했다. 게다가 ‘본전’ 생각 때문에 웅진홀딩스를 통해 4000여억 원을 쏟아 부었다.

문제는 극동건설 인수 시점에 태양광 사업까지 진출하며 무리하게 신규 사업을 추진한 점이다. 2006년 말 웅진에너지를 신설한 데 이어 2008년 웅진폴리실리콘까지 설립했다. 김상훈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기존 사업과 연관되지 않은 건설업과 태양광 사업을 동시에 진행한 데다 내부 유보 자금이 아니라 외부 차입금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선 것이 악수”였다고 진단했다.

사업 다각화는 기업들의 생존 방식이자 지속 성장의 핵심 수단이다. 기업 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세계 필름 시장을 삼분했던 코닥·후지필름·아그파 등 3개 업체 중 후지필름만 생존했다.

후지필름은 적극적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서 일찌감치 필름 비중을 줄이고 복사기·디지털카메라·의료기기 및 화장품 사업 등으로 사업 다각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그파와 코닥은 사업 다각화에 소극적으로 나섰다가 결국 무너졌다.

국내 기업 중에서도 두산은 소비재에서 중공업으로 사업 다각화를 통한 업종 전환에 성공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반면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대우건설을 인수했다가 이른바 ‘승자의 저주’에 걸려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수모를 당했다.

물론 사업 다각화의 성공은 수학 공식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업 다각화 전문가인 콘스탄티노스 마르키데스 런던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기존 시장에서 충분히 환호하는 특별한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한 무엇’은 독점일 수 있고, 차별화된 기술력일 수도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전무는 “사업 다각화 때 경영 전략 패러다임이 기존과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전무는 “출판업을 영위하던 기업이 건설과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었으면 옛날 성공 방식이 아닌 신사업에 맞는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금 회장은 10월 5일 서울 충무로 극동빌딩에서 가진 긴급 기자회견에서 “제가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다 보니 기업 회생 절차까지 왔다”며 “요 며칠 동안 반성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초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윤 회장이 무리하게 사업 다각화에 나선 까닭은 뭘까. 웅진그룹 계열사 사장을 지냈던 A 씨는 “그룹 창립 후 25년간 방문판매 네트워크라는 핵심 역량을 통해 건실한 성장을 해왔다”며 “이후 핵심 역량과 전혀 관련이 없는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무너진 것은 초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웅진그룹은 2005년까지 2조 원대의 견실한 중견기업에서 5~6년 만에 6조 원대의 30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2006년 태양광 사업 진출부터 건설업, 저축은행 등 비관련 업종으로 과감한 확장 전략을 폈다.

A 씨는 “2006년 쯤 윤 회장이 변했다”는 소리가 그룹 안팎에서 들렸다고 회고했다. 그 예로 그룹을 일으킨 공신들을 대부분 퇴진시키고 그 빈자리를 경영 컨설팅 그룹 출신으로 채웠다는 점을 들었다. 웅진을 일으킨 공신들은 회사에 대한 애정이 많고 충성도가 높은 데다 성공 DNA를 갖고 있는 사람들인데, 하루아침에 퇴물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윤 회장은 20 07년 7월 웅진홀딩스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그룹 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기획조정실의 책임자로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출신 Y 상무를 선임했다. 웅진은 2007년 극동건설을 인수했다.

Y 상무는 2008년 3월 극동건설 전략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아서디리틀(ADL) 출신 K 전무를 기획조정실장으로 영입했다. K 전무는 태양광 사업 진출과 웅진케미칼 설립에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에는 역시 BCG 출신의 S 전무가 웅진홀딩스 대표로 오면서 기획조정실장을 겸임했다. 외부 인재 영입은 현대 기업의 핵심 과제다. 삼성이나 LG그룹 등의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인재를 찾아 세계를 누비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외부 인재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탈이 나게 마련이다. 대표적인 그룹이 동부다. 동부는 삼성 출신 임원들을 대거 영입해 중용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실패의 원인은 해당 기업의 성장 동력 중 하나인 고유한 기업 문화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영 컨설턴트는 일반적으로 효율성을 최우선한다. 효율성만 따지다 보면 기존 인력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전직 유명 컨설팅 기업에서 일했던 한 중소기업 사장은 “기업에 들어간 경영 컨설턴트들이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데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기업 혁신 컨설턴트인 백대균 월드인더스트리얼 대표는 “성공한 기업 대부분이 성공에 도취해 초심을 잃고 오만에 빠진다”며 “특히 자수성가한 오너 경영인은 자신의 경영 방식이 최고라는 착각 속에 시장 환경에 맞지 않는 경영을 고집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은 신속하게 하라

이번 웅진 사태를 지켜보는 재계 관계자들은 윤 회장이 경영권에 집착한 나머지 구조조정을 신속히 진행하지 못한 점에 아쉬움을 표한다. 특히 그룹 구조조정 차원에서 내놓은 웅진코웨이 매각을 질질 끈 것은 향후 웅진그룹의 미래까지 어둡게 했다는 지적이다.

웅진코웨이는 매각 금액과 경영권 문제로 매수자가 계속 바뀌었고, 이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 그룹 부실화가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됐다는 것이다. 웅진이 웅진코웨이 매각을 발표한 것은 지난 2월이다. 지난 7월 중국의 콩카(KONKA)를 우선 매각 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이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달 KTB PE와 웅진코웨이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이 또한 결렬됐다. 8월 15일 MBK파트너스와 본계약을 체결했지만 웅진홀딩스의 갑작스러운 법정관리 신청으로 물거품이 됐다. 웅진은 당초 “웅진코웨이 매각 대금으로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웅진코웨이 매각 대금이 들어오기 직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채권단은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게다가 법정관리 신청 직전 계열사 차입금 상환, 오너가의 기습적인 주식 매각 등으로 ‘도덕적 해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이혁재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채권단은 경영권에 관심이 없다는 윤 회장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법정관리 신청 과정에서의 이중적인 태도로 인해 금융권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향후 기업이 회생되더라도 금융권과의 관계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윤 회장의 태도가 팬택과 비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팬택은 2007년 4월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된다. 박병엽 부회장은 워크아웃 돌입에 앞서 “창업자로서 회사를 살릴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내놓겠다”며 보유한 주식을 모두 내놨다. 이후 팬택은 끊임없는 자구 노력을 기울여 결국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재계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사심을 버리고 속전속결로 진행돼야 한다”며 “웅진처럼 끝까지 사심을 버리지 못하고 질질 끌다가는 구조조정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