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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선거에 문재인은 없었다

후암동남산 2012. 12. 26. 21:27

민주당·문재인 왜 패했나
문재인 선거에 문재인은 없었다
   
▲ 사진제공=문재인
지금 민주통합당은 말 그대로 ‘멘붕’ 상태다. 대선 석패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가시지 않고 있고, 그것을 딛고 일어설 희망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후보의 막판 추격추세가 매서웠고, 투표율도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높은 수치였던지라 충격적인 패배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복기’를 해보면 그들은 지는 길로 가고 있었고, 그것을 알면서도 주변의 작은 변수에 기대를 거는 요행만을 바랐던 게 사실이다. 대선 전 당 주변에서 무수히 “쇄신의 이름을 걸고 문재인의 선거”를 하라고 조언했지만 끝내 그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거 내내 문재인의 이름과 비전은 보이지 않았다. 안철수의 지원에만 목을 맸고, 이정희의 막말에는 ‘불감청고소원’(감히 청하지는 못하나 원래부터 바라던 바임)의 비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거결과에 대한 ‘복기’는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꼭 필요한 수순이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에서 과연 그런 작업들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은 개표 직전까지도 철석같이 승리를 믿고 있었다. 과연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는 무엇부터 잘못됐던 것일까.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문재인 개인의 패배가 아니라 민주통합당 전체의 패배다. 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잘해서 민주당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한계와 문제점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최종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은 반독재 투쟁과 민주화를 절대가치로 여겨온 민주당에게 새로운 대안세력으로서의 역할을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그것을 끝내 수용해내지 못했다.

민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이에 대해 “민주당은 선거 내내 거만하고 건방졌다. 그들이 안철수 전 후보를 옹립하고 당을 해체한 뒤 신당창당을 하는 수순으로 갔으면 대선의 프레임 자체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게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었다. 하지만 친노세력의 저항으로 대선 막판까지 임명직 불참여와 같은 쇄신안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몇 줌 안 되는 기득권에 대한 집착 때문에 야권과 진보진영은 이제 깊은 침체기로 들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구조적 모순에 후보 개인의 소극적인 태도도 패배를 자초하는 원인이 됐다. 사실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친노그룹의 이해찬-박지원 동맹이 고르고 고른 인물이 바로 문재인이다. 하지만 문재인에 대해서는 친노그룹 내부에서도 “한 방이 없다”는 얘기가 선거 기간 내내 나왔다. 문 캠프에서 일한 한 친노그룹 인사는 이번 대선 전에 “2002년 ‘노짱’과 함께할 때는 힘들었지만 재미가 있었고 신바람이 났다. 당시엔 정말 민주당에서 곳간 열쇠도 안 줘서 돈도 하나도 없고 당 차원의 지원은 기대할 수도 없었는데 별로 힘든 줄 모르고 잘 버틴 것 같다. ‘노짱’이 워낙 승부사 기질이 있고 사람들 가슴을 뛰게 만드는 사람 아니냐. 노짱이 한 번 나서면 바람이 일어난다는 게 눈에 보였다. 당장은 지고 있어도 금세 역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는 노짱과 많이 달랐다. 한방이 없다. 그 대신 꾸준하게 올라가는 스타일이다. 노짱이 비해 실수도 적게 하고. 그러니 솔직히 재미는 별로 없었다”라고 말했다.

한방이 없다는 건 후보에겐 치명적이다. 안철수 전 후보가 포기하고, 범야권이 똘똘 뭉쳐서 지원을 해줬고 투표율마저 높은 수치를 기록했던 이번 선거는 선거전문가들이 볼 때도 도저히 질 수 없는 것이었다. 후보가 4050세대의 자영업자와 주부들에게 특히 인기가 없다는 민주당 자체분석 결과도 나왔지만 끝까지 그 계층을 공략하지 못했다. 대중유세와 TV토론 등에서도 박근혜 후보를 압도하지 못한 것도 준비와 능력 부족이었다.

문 후보는 과단성도 부족했다. 대선전 막판에 ‘친노 백의종군 선언’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계속 나왔지만 결국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양정철 등의 일부 강성인사가 반대했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후보의 의지 문제였다. 문 후보는 그런 전략을 모두 ‘정치 쇼’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한 선대위 간부는 “문재인 후보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표에 도움이 됩니다’라고 말해도 잘 듣지 않는다. 그런 걸 다 정치 쇼라고 보는 것 같았다. 정치 쇼를 하자고 사람을 내칠 수는 없다는 태도였다”라고 말했다.

   
▲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문재인 후보의 열세로 나오자 민주당 당직자들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임준선 기자

민주당이라는 하드웨어와 문재인이라는 소프트웨어가 모두 구조적 한계와 개인의 문제로 엇박자를 내자 다른 것들은 볼 필요도 없었다. 특히 선거에 임했던 핵심 인사들의 안일한 판단과 대응에도 상당한 문제점들이 있었다. 그들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지는 것으로 나와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또한 그것을 알면서도 주변의 작은 변수에 기대를 거는 요행만을 바랐다.

다음은 그 사례 하나. 민주정책연구원이 마지막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는 지난 17일이었다. 4%포인트 차로 문 후보가 지는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도 민주당에선 “우리 조사는 원래 좀 보수적으로 나온다. 가정주부와 자영업자들이 샘플에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라며 낙관론을 폈다. 설상가상으로 방송 3사의 17일 사전 조사에서 문 후보가 46.0%, 박근혜 후보가 44.6%로 나왔다는 얘기가 전해지자 민주당에선 “이미 역전에 성공했다. 100만 표 정도 표차로 이길 것 같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한 민주당 출입기자는 이에 대해 “전국에 지역위원회라는 막강한 조직을 두고 있는 민주당의 정보력과 그 판단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게 한심스러울 정도다. 그러니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정보를 총괄하는 기획본부장이라는 사람(이목희 의원)이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황당한 반응을 내놓은 것 아니겠느냐. 정보가 없으니 거기에 맞는 전략이 제대로 있었을 리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후보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 없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야권에선 항상 대선을 비롯한 주요 선거 때 ‘전략적 선택’이 화제가 됐다. 2002년 광주에서 시작된 노무현 바람이 대표적인 예다. 전략적 선택은 ‘우리 사람’이 아니라 ‘이길 사람’을 밀어주는 선택을 말한다. 당시 동교동계 주류는 이인제 후보를 밀다가 철저한 비주류였던 노무현으로 말을 갈아타는, 전략적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번 대선에서 야권은 전략적 선택이 아닌, ‘우리 사람’을 내세워 패배를 자초했다. 당시 경선과정에서 비주류는 “친노그룹으로는 박근혜를 잡기 힘들 뿐만 아니라 ‘박정희 대 노무현’의 대결 구도가 결코 유리할 게 없다”고 끊임없이 주장했지만 주류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패퇴했다.

비노그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앞으로도 문제다. 지금 야권을 보면 국민참여경선을 통해서 후보를 배출할 수 있는 그룹이 친노그룹밖에 없다. 당권이든 대선후보든 친노그룹만이 이길 수 있다. 조직력이나 정치력 면에서 친노그룹이 가장 잘 훈련이 돼 있고 잘 짜여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친노그룹은 본선에 내보내면 이기지 못한다. 문재인이 이걸 잘 보여줬다. 문재인은 친노그룹 치고는 이미지가 좋고, 전혀 싸가지 없거나 강성인 이미지도 아니다. 그런데도 본선에서 지지 않았나. 뭔가 큰 변화가 없다면 내부 경선에서 친노 인사가 당선이 돼서 본선에 나가서는 지고 마는 일이 또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친노그룹과 당의 완전 해체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게 민주당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