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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테마주 일찌감치 거품 꺼진 까닭

후암동남산 2012. 12. 26. 21:35

   
▲ 한동안 급등했던 대선테마주가 폭락세로 돌아서며 개미들의 무덤으로 전락했다. 일요신문 DB
대선이 끝나기도 전에 대선테마주는 일찌감치 시한장치가 작동하며 거품이 꺼졌다. 이들 종목이 ‘대선테마주’일 뿐 ‘대통령테마주’는 아니라는 점을 처절하게 입증하는 모습이다. 지난 1년간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테마주는 정치 이슈와 그 궤를 같이 했다. 연초 민주통합당의 4·11 총선 승리가 점쳐질 때는 문재인 테마주가, 4월 총선에서 예상 밖으로 새누리당 승리가 확인됐을 때는 박근혜 테마주가 힘을 받았다. 7월 안철수 전 후보가 사실상의 출사표인 <안철수의 생각>을 내놨을 때는 안철수 테마주가 상대적으로 기세를 올렸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의 출마선언 이후 이들 대선테마주들은 대부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지난해 6월 이후 주요 대선 테마주 27개 종목을 선별해 지난 12일까지 주가등락률을 분석한 결과 이들 종목은 최고가 대비 평균 68.68%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3분의 1 토막이다. 중도 사퇴한 ‘안철수 테마주(9종목)’의 평균 주가하락률이 마이너스(-) 77.32%로 가장 컸다. ‘문재인 테마주(9종목)’의 평균 하락률은 -69.26%였다. ‘박근혜 테마주(9종목)’는 59.46%를 기록했다.

최근 박근혜 문재인 테마주의 주가 차트를 봐도 그야말로 ‘절벽’이다. 이들이 진정한 대통령 수혜주라면 안철수 테마주가 탈락한 이후 남은 박근혜 문재인 테마주는 반등을 해야 논리적이다. 하다못해 여론조사 추이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정작 현실은 모두 폭락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대선이 박빙 승부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즉 박근혜 테마주를 보유한 입장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경우 주가폭락을 피하기 위해 먼저 손을 털 수 있다. 문재인 테마주를 보유한 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일부 투자자의 이 같은 선매도가 ‘방아쇠 효과’로 다른 투자자들의 투매를 유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먼저 팔면 손해를 덜 보는 상황이다 보니 너도 나도 매도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근본적인 이유는 대선테마주가 이름처럼 ‘차기 대통령 수혜 기대주’가 아니라 대선 이슈에 편승한 일부 작전 세력들의 놀이터라는 점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대선테마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안랩을 보면 결국 이번 정치테마주 판에서 누가 진정한 승리인지를 보여준다”며 “결국 돈을 번 건 안 전 후보와 일부 대주주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실제 안 전 후보는 지난 2월 13일부터 21일까지 86만 주를 매각했다. 주가가 10만 원이 넘던 시기였던 만큼 무려 930억여 원의 현금을 손에 쥐게 됐다. 그나마 안 전 후보의 경우 대선 예비후보기간 비용을 자비로 마련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사익만 챙겼다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안랩의 2대주주였던 원종호 씨는 주가가 급등했을 때 주식을 처분해 얻은 수익이 500억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대선테마주 부상 전을 제외하고 안랩의 매물벽이 가장 두터운 구간은 주가 11만~13만 원선인데, 이는 그때 투자자들의 거래가 집중된 것을 나타낸다. 현재 주가가 4만 원도 안 되니, 이때 투자한 이들은 60~70% 손실을 보고 있는 셈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6월 이후 올해 5월까지 대선 테마주로 분류됐던 대표적인 35개 종목의 주가 추이를 분석한 결과 거래에 참여한 계좌 중 195만 개에서 1조 5494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고, 손실 대부분(99.9%)이 개인투자자 계좌에서 나왔다. 한 개인투자자는 무려 26억 원의 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이 연초부터 일반 개인투자자보다는 최대주주나 경영진이 연루된 증시 불공정 거래 행위 단속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작전세력과 대주주가 결탁하면 테마주를 가장해 얼마든지 개인투자자들을 울릴 수 있는 증시 구조를 반영한 결과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작전을 할 때 주가 급등 전 해당 회사 주식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그러다 보니 어떡하든 해당 회사 관계자나 주주와 연계하려 애를 쓰게 된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올 들어 정치 테마주들의 최대주주나 임원들이 주가가 치솟는 사이 보유주식을 팔아 시세차익을 챙겨 투자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물론 이들이 작전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증거는 전혀 없지만, 이들이 대선테마주 열기의 수혜를 본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 전 가장 뜨거웠던 것이 4대강 수혜주, 즉 건설주였다. 4대강 수혜주들은 대부분 이 대통령 취임 후 폭락했고 건설주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경기가 꽁꽁 얼어붙으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일례로 당시 테마주 가운데 하나였던 이화공영은 대선 경쟁이 본격화했던 2007년 7월부터 새 정부 출범 시점인 2008년 2월까지 1000%가 넘는 주가 상승률을 보였다. 그러다 다시 2000원대로 주저앉았고, 현재 1700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일반인들이 볼 때야 우리나라 대통령 뽑는 게 더 중요해보이지만, 여의도 증권맨 입장에서는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느냐, 차기 중국 지도부가 어떻게 구성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지난 11월 미국 대선 때에는 밤잠을 설쳐가며 미국 정치 뉴스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사실 지금 우리 대선은 그리 열심히 보고 있지 않다”고 털어놨다. 적어도 증시에서만큼은 대한민국 대통령보다는 미국 대통령의 영향이 훨씬 더 크다는 얘기다.

아무리 테마주 투자에 대한 경고가 나와도 때만 되면 다시 테마주가 횡행하는 증시 현실을 감안한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이번 대선이 끝나더라도 또 다른 테마를 이용해 작전성 투기거래를 하는 세력은 언제든 재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상하한가 제도 개선이다.

최근 한국거래소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증권가에서는 상하한가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15%인 현행 상하한가 폭 제한으로 인해 주가 등락분이 하루에 다 반영되지 못해, 다음 거래일에도 상한가나 하한가 현상이 나타나 투자자들의 판단력을 흐릴 수 있다는 게 폐지론의 골자다. 물론 상하한가 폐지 및 완화로 발생하는 부작용을 방지할 만한 보호 장치가 충분히 마련된 후 시행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아울러 선물거래 증거금이나 신용거래보증금율 등이 모두 현행 가격제한폭인 ±15% 체제를 기준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에 전폭적인 변경은 불가피할 것이란 논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