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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17명이 프로팀 입단..열정 있으면 길 있더라"

후암동남산 2013. 11. 26. 00:50

'취임 2년' 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




처음 들어올 땐 '과연 될까' 생각

프로 보낼 때 '딸 시집보낸 기분'

44년 감독생활 중 딱 세 번 눈물

1977년 황금사자기 8강 못 잊어

'야신'보다 '잠자리 눈깔' 별명 좋아

이 시대의 필요한 리더십은 사명감


한겨레신문사 야구 동아리 '야구하니'의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기자에게 김성근(71) 고양 원더스 감독은 "테스트받으러 왔느냐"고 농담을 던졌다. 고양 원더스는 프로팀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들을 모아 2011년 12월 창단한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구단이다. 고양 원더스가 훈련장으로 사용하는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 '고양 국가대표 야구장'에는 야구 인생의 벼랑 끝에 몰린 선수들이 종종 찾아온다. 이런 선수들이 김 감독의 지도를 받아 지난해 5명, 올해 12명 등 모두 17명이나 프로팀에 진출했다. 이달 들어서도 포수 오두철(28) 선수가 기아(KIA)에 입단했고, 좌완투수 여정호(29) 선수는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김성근의 돌직구 "'야신'은 없다" [한겨레談 4]

새달 5일 취임 2돌을 맞는 김 감독은 "처음에 들어올 때는 '과연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다가 프로팀에 떠나보낼 때는 '어느새 이렇게 컸구나' 하는 흐뭇한 마음이 든다. 딸 시집보내는 기분"이라며 웃었다.

가능성이 의심스러운 선수들에게 김 감독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노력 여하, 생각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열정을 가지고 파고들면 얼마든지 길은 있다"고도 했다.

김 감독은 사회구조적 모순 때문에 패자가 되는 젊은이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사회의 모순을 의식하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 핑계 대고 의존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든다. 사회가 어떻게 되든 흔들리지 않는 개인의 의지가 관건"이라고 충고했다. 27살 때인 1969년 마산상고 감독을 시작으로 44년째 야구감독을 하고 있는 그는 "감독 하면서 12번 잘렸지만 한번도 남에게 기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김 감독은 44년 감독생활 중 세번 눈물을 흘렸다. 충암고 감독이던 1977년 신일고와의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8강전, 엘지(LG) 감독이던 2002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6차전, 그리고 에스케이(SK) 감독이던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이다. 세 경기 모두 상대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졌다.

김 감독은 이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경기로 1977년 황금사자기 8강전을 꼽았다. 당시 신생팀 충암고는 지방에서 선수를 끌어모았는데, 전국대회 4강에 들어야 대학 진학 자격이 주어졌다. 충암고는 9회초까지 투수 기세봉의 노히트노런을 앞세워 2-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9회말 신일고 김남수에게 역전 3점 홈런을 맞고 2-3으로 졌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모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응암동 학교까지 오는 버스는 마치 영구차 같았다. 나도 그때 버스 안에서 많이 울었다. 나를 많이 성장시켜준 경기였다"고 회고했다. 충암고는 한달 뒤 열린 봉황대기 고교야구 8강전에서 신일고를 다시 만나 '복수'에 성공했고 팀 창단 후 첫 우승까지 차지했다. "선수들이 실의에 빠지기보다는 이를 악물고 더욱 열심히 훈련한 결과였다."

김 감독의 별명은 잘 알려진 대로 '야신'이다. 하지만 그는 "야신은 없다. 언론에서 '야신'이니 '야통'이니 하면서 너무 남발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태평양 감독 시절 붙은 '잠자리 눈깔'이라는 별명이 좋다고 했다. "리더는 세심한 부분까지 어마어마한 주의력을 가지고 포착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야구는 종종 인생에 비유된다. 김 감독은 지난달 열린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이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했다.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해줬다. 모든 팀이 상대팀 분석이나 순간적인 판단 등 준비가 부실했다. 그런데도 조금 유리할 때 승리에 도취해 승자가 패자가 되고 패자가 승자가 됐다"고 지적했다.

김 감독이 꼽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일까. 그는 "사명감"이라고 말했다. "리더는 사리사욕에서 벗어나 사명감을 가지고 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해명과 변명, 책임 전가가 많은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다."

기자와의 대화를 마친 뒤 그는 다시 운동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자리 눈'으로 선수들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