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구조 모형

각 원소의 각기의 특징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소의 미립자.

개요

톰슨에 의한 전자의 발견은 이미 1897년에 물리학자들에게 이론적인 문제를 던져주었다. 왜냐하면 원자는 전체적으로 볼 때 전기적으로 중성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자를 중성화하는 양전하는 어디에 있고 무엇이 그것을 그 자리에 붙잡아 두는가 하는 것이었다. 1903~07년에 톰슨은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 1902년에 켈빈이 처음으로 제안한 원자모형을 이용했다. 이 모형에 의하면 원자는 전하가 균일하게 퍼져 있는 공이고, 전자는 그 속에 규칙적으로 박혀서 양전하를 중성으로 만든다.

러더퍼드의 핵 모형

1911년에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그의 금박지 실험에서 톰슨의 모형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실험에서 그는 원자는 작은 핵을 가지고 있으며, 원자의 질량은 그 핵에 집중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많은 물리학자들은 러더퍼드의 핵 모형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원자의 화학적 행동과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모즐리의 X선 실험과 원자번호

1913년 모즐리는 다른 원소에 전자를 쏘았을 때 만들어지는 X선을 연구했는데, 그결과 가장 가벼운 원소에서 가장 무거운 원소까지 다양한 형태의 선명한 스펙트럼선이 아주 규칙적으로 추적될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특정한 X선의 진동수의 제곱근을 원소의 원자량에 대해 도시하면 점들은 거의 직선의 형태로 배열된다. 그러나 원자량 대신에 원자번호를 사용하면 더욱 완전하게 직선과 일치한다. 원자번호는 주기율표에서 원자의 순위를 나타내는 번호이다. 모즐리 자신이 지적한 대로 특별한 원자구조의 이론에 의하지 않더라도 이 정수(원자번호)가 원자의 참된 지표라는 것은 이 X선 스펙트럼으로 아주 명백해졌다. 더욱이 그는 이 측정결과를 보어의 이론과 결합하여 원자번호는 원자핵이 지닌 단위 정전기량의 수와 일치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했다.

보어 모형

1913년에 보어는 전자가 어떻게 핵 주위의 안정한 궤도를 가질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양자화된 전자껍질 모형을 제안하고 2가지 가설을 세웠다. ①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원 궤도에 따라 움직이며, 전자가 취할 수 있는 궤도는 그 궤도의 각 운동량이 h/2π의 정수배인 궤도뿐이다. 이 궤도들은 전자가 그 어떤 궤도에 머물러 있는 한은 에너지를 방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정상'이다. ② 전자는 하나의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두 궤도의 에너지 차이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방출하거나 흡수함으로써 전이할 수있다. 보어의 모형은 원자의 안정성을 설명할 수 있었으며, 수소원자의 스펙트럼선에 대한 발머 공식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어의 이론은 중대한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K와 L 계열의 X선 스펙트럼을 제외하면 2개 이상의 전자를 가진 원자의 성질은 설명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후 많은 물리학자들은 보어 이론을 수정했지만 1920년대초에 보어 모형은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대부분의 미세 스펙트럼선이나 비정상 제만효과를 설명하지 못했으며, 결국 이 모형으로 다전자 원자에 대해서 일반화하려는 노력은 헛되다는 것이 드러났다.

양자역학의 법칙

그후 몇 안에 과학자들은 일관된 원자이론을 발전시켰는데, 이 것은 원자의 기본 구조와 그 상호작용을 설명할 수 있었다. 이 발전에 결정적이었던 것은 빛과 물질은 원자나 원자구성입자의 수준에서는 파동과 입자 2가지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색인 : 파동입자이중성). 1923년에 드 브로이는 모든 물질과 빛은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드 브로이의 제안은 영감에 의한 것이었고, 실험적·이론적 기초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한 이론은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제공했다. 그래서 1926년까지 물리학자들은 파동역학이라고도 하는 양자역학의 법칙을 발전시켜 원자나 원자구성입자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슈뢰딩거파동 방정식

1926년에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을 넓게 적용할 수 있는 형태의 수학적인 파동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색인 : 슈뢰딩거 방정식). 슈뢰딩거는 원자 내의 전자는 파동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가정했다. 원자의 서로 다른 에너지 준위는 파동 방정식의 간단한 진동 양식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양식을 발견하기 위해서 방정식을 푸는 것이다. 그후에 진동 양식의 진동수와 아인슈타인 공식으로부터 전자의 에너지가 얻어진다. 1929년에 노르웨이의 물리학자 E. 힐레라스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2개의 전자를 가진 헬륨 원자에 적용했다. 그는 단지 근사값을 얻었을 뿐이지만 그의 에너지 계산은 매우 정확한 것이었다. 2전자 원자에 대한 힐레라스의 설명으로 물리학자들은 슈뢰딩거 방정식이 정확한 해답을 제공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원자수준의 자연을 기술하기 위한 강력한 수학적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반입자의 존재

영국의 물리학자 P. A. M. 디랙은 1928년 전자에 대한 새로운 방정식을 도입했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상대성 원리를 만족시키지 못하며, 따라서 그것은 빛의 속도보다 훨씬 천천히 움직이는 입자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기술하는 데만 사용될 수 있다. 상대성 이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디랙은 전자에 대해서 하나가 아니라 4개의 서로 다른 파동함수를 가정해야 했다. 이들 중 둘은 2개의 스핀 방향에 대응하는 것이고, 나머지 둘은 그때까지 관측되지 않은 전자의 상태와 관련된 것이었다. 디랙은 이것을 전자와 반대되는 전하를 가진 반입자라고 해석했다. 1932년에 미국의 물리학자 C. D. 앤더슨양전자를 발견함으로써 반입자의 존재를 증명했는데, 이로 인해 디랙 이론이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 발견 후에 원자구성입자들이 더이상 변환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