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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2014년 8월 개봉한 "명량"은 3대 대첩 중 하나.

후암동남산 2014. 8. 15. 11:12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

영화 '명량' 개봉 기념으로 알아보는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이순신'

 

23전 23승이라는 세계 해군사에 유례없는

승전을 기록한 이순신 장군은..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끔으로써 일본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가장 존경하던

인물이었다는 사실로도 유명합니다.

 

당시 러일 전쟁의 승전 축하연이 있던 날, 어떤 신문 기자가

도고 제독에게 영국의 넬슨 제독, 조선의 이순신 장군에

비견할 만한 업적이라고 하자 도고 제독은 화를 내며

"나를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이신 이순신 제독에게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라고 했다 전해집니다.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의 영웅에게까지 신으로

추앙받던 이순신 장군. 이순신 장군의 숱한 수전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한산도 대첩', '명량 해전',

' 노량 해전' 입니다.

 

이 중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이 한산도 대첩으로써, 임진왜란이

발발한 해인 1592년 음력 7월, 그 유명한 '학익진' 전법으로

왜선 약 60여척에 피해를 입힘으로써 개전 초기 풍전등화

같았던 조선의 운명을 단숨에 바꾸어 놓은 전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중요성으로 인해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도 불립니다.

한산도 대첩으로 인한 조선과 왜군의 피해 규모

- 조선 : 전선 56척중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전투에는 지장 없음.

3명 전사, 부상 10여명.

- 왜군 : 전선 73척중 47척 침몰, 12척 나포,

전사자만 약 4000명.

 

두 번째로 일어난 것이 바로 명량 해전입니다. 명량 해전은

1597년 음력 9월에 불과 13척의 배로 왜군 전함 330여척을

무찌른, 조선 전쟁사에서 가장 빛나는 해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순신이 모함을 받고 백의 종군을 할 무렵,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여 전사하였고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가 되었으나 남아있는 전선이라고는 고작

12척이었습니다. 후에 건설중이던 판옥선 1척이 함류하여

조선 수군의 전함은 총 13척이었으나 여전히 왜군 전함

수에 비하면 크게 열세였습니다.

수군을 포기하고 육군으로 합류하라는 선조의 명에도 불구하고

수군폐지불가론을 주장한 이순신 장군은 "살려고 하는 자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하는 자 살 것이다" 라고 병사들을 독려하며

13척의 배를 이끌고 330여척의 왜군 수군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왜군의 가장 큰 배 보다도

더 큰 판옥선의 활용, 조선군의 주력 무기였던 각종 화포,

우리나라에서 가장 물살이 거센 울돌목의 지형과 시간에

따른 조류의 변화를 이용한 전술등을 앞세워 단 한척의

전함도 잃지 않은 채 일본 전함 30여척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명량 해전에 참여한 조선의 전함 수는 13척으로 일관되나,

왜군의 전함 수는 330척 vs 130척 등으로 나뉘는데 왜군의

총 전함 수는 330여척으로 실제 전투에 참여한 전함의 수가

130척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전투에 참여한 130척의

왜군 전함이 패전을 함으로써 결국 330여척의 왜군

총 함대도 후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한산도 대첩과 명량 해전의 결과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바다를 통해서만 보급품과 병사등을

충원해야 했던 왜군으로서는 남해에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던

이순신 장군 때문에 결국 육지에서도 힘을 잃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며, 이로 인해 왜군의 1차 침략인 임진왜란과 2차

침략인 정유재란의 종식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노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왜군의 총탄을 맞고 전사한 해전으로

사실상 임진왜란의 종식을 알리는 전쟁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급격히

사기가 저하된 왜군은 본국으로의 철수를 결정하고, 이순신

장군은 이러한 왜군을 노량에서 맞아 총 500여척의 왜군 전선 중

단 50여척만이 간신히 도주하는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왜군이 쏜 총탄에 맞아 전사하게

됩니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노량해전을 끝으로 7년간 조선을 초토화시킨 임진왜란

또한 함께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이 임진왜란의 여러 전투 중에서도

그 의의가 큰 데에는 바로 해상권 장악이라는 데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일본과 우리 나라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바다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병사나 보급품

충원은 반드시 바다를 통해서만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이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육지에서 승승장구하던 왜군의 기세를 꺾어놓을 수

있었으며 해상을 통한 보급이 막혀버린 왜군의 육지 병력은

연전연승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전진을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왜군의 1차 침략이었던 임진왜란에서의 한산도 대첩이 그

러했고, 2차 침략이었던 정유재란에서의 명량해전이

갖는 의의가 큰 이유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두 해전이 없었더라면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는 320여년 빨랐을지도 모릅니다.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이자 세계 해전사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을 올린 사령관으로 손꼽히는 성웅 이순신 장군은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귀감이 되는

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영화 '명량' 에서 그려지는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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