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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당 월하대종사

후암동남산 2018. 12. 9. 00:05

노천당 월하대종사

노천당 월하대종사 (1915~2003)

탄생에서 출가까지
큰 스님은 1915년 음력 2월 25일 충남 부여군 군수리에서 파평 윤씨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찍히 한학을 배워 12세가 되기 전에 "사서삼경"을 이미 마쳐 학숙의 스승들은 이미 큰 인물이 될 아이라고 부모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8세가 될 무렵에 혼인을 하라는 부모의 청을 뒤로하고 평소 가보고 싶었던 금강산 유람에 들어간다. 유점사에 도착, 저녁의 장엄한 법고소리와 은은한 목탁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어가고 며칠 뒤 출가를 결심한다.
구하대종사와의 만남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세의 나이에 유점사 차성환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비로소 불가에 입문하게 된다. 당대 최고의 사찰이었단 금강산 유점사에서 도서, 절요, 선요, 서장 등 사집과를 모두 마치자 은사스님은 스물 여섯의 제자에게 서찰 한 통을 주며 남쪽의 통도사에 주석하고 있는 구하스님에게서 본격적인 공부를 하도록 한다. 스님은 구하스님 문하에 들어 1940년 4월 초하루 비구계를 받고 오대산 해인사 등지에서 본격적인 수행정진에 들어간다.
한국전쟁 이후
해인사에서 수행 중이었던 스님은 당시 시작된 불교정화운동의 중심에서 수많은 고비를 격으면서도 원융무애한 처리로 대처승과의 문제를 원만히 처리하고 통도사로 돌아와서는 대처승들에게 빼앗겼던 농지환수는 물론 평등과 자비의 참된 삶을 사시면서 수행가풍을 몸소 보여준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으로써 사부대중의 추앙을 받아왔다.
열반
스님은 계미년 음력 11월 11일 통도사 정변전에서 법랍 71세, 세수 89세로 열반에 드셨다.

유훈

구하대종사께서 월하스님에게 내린 유훈
안광수색무여진
이식출성대흘소
환원자차비범사
고왕금래우일조

환원 후 소족고읍을 하지 말 것
표환을 착하지 말 것
외처부고를 발하지 말 것
다소부의를 수입치 말 것
영을 별당에 두고 49일 엄숙히 경할 것
49일 후 범사을 영단할 것

법게

구하대종사께서 월하스님에게 내린 법게
영축산중일경수(靈鷲山中一莖樹)
화개천지미분전(花開天地未分前)
차화불관청황백(此花不管靑黃白)
겁외춘광불변연(劫外春光不變緣)

영축산 가운데 한줄기 매화가 있어
천지가 나뉘기도 전에 꽃이 피었구나
이 꽃은 청·황·백·색도 아니니
겁밖에 봄빛은 변하지 않는 인연이라네

연보

1915~2000
1915.2충남부여군 출생(파평 윤씨)
1933.7금강산 유점사 차성환 스님을 계시로 사미계 수지(득도)
1940.4통도사에서 구하스님을 은사로 비구계 수지
1944.4철원 오대산 심원사 대교과 졸업
1954.9전국비구승대회 종회의원 및 총무부장
1955.5사찰정화대책위원회 결성 (불교정화운동 비구측 대표 5인에 속함)
1955.8전국승려대회 개회(종회의원)
1975.10재단법인 동국학원 이사장 취임
1978.5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취임
1984.6영축총림통도사 초대방장 취임
1994.4대한불교조계종 개혁회의 의장 역임
1994.5대한불교조계종 제9대 종정 취임
2000~2003
2001.8영축총림통도사 방장 재추대
2003.11법랍 71세, 세수 89세로 열반에 듬(통도사 정변전)
노천당 월하 대종사 임종게

일물탈근진(一物脫根塵)
두두현법신(頭頭顯法身)
막론거여주(莫論去與住)
처처진오가(處處盡吾家)
한 물건이 이 육신을 벗어나니
두두물물이 법신을 나투네
가고 머뭄을 논하지 말라
곳곳이 나의 집이니라.

[출처] 월하스님|작성자 불교인물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