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남산이야기

동/서양 역사연대표

후암동남산 2021. 4. 27. 06:59

동/서양 역사연대표

우리의 상고사와 중국의 역대 왕조 및 서양의 역사연대를 비교 작성해 보았습니다.

A4 한 장에 우리의 상고사부터 조선까지의 왕조연대를 포함 동서양의 역사연대와 비교하려니 너무

적게 작성할 수 밖에 없네요....​

▣ 한민족의국통 맥​

① 환국 ⇒ ② 배달 ⇒ ③ 고조선 ⇒ ④ 북부여(열국시대) ⇒ ⑤ 고구려·백제·신라·가야 (사국

시대) ⇒ ⑥ 대진(발해)·신라(남북국시대) ⇒ ⑦ 고려 ⇒ ⑧ 조선 ⇒ ⑨ 대한민국으로 이어짐.

우리의 상고사(上古史) 중 가장 왜곡된 부분은 아마 단군조선대진국(발해)의 역사일 것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방 대제국이었던 단군조선을 단군신화라는 말도 안되는

이론으로 국가라는 개념조차 없애버렸으며, 통일신라라는 용어를 만들어 고구려 버금가는 엄청난

9,000리 영토를 가졌던 위대한 해동성국(海東盛國) 대진국(발해)를 우리 역사의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

버렸습니다.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하려 했던 일제는 식민지 강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916년 우리의 역사를

그들의 통치목적에 부합되도록 편찬하기 위해 조선사 편수회라는 한국사 연구기관을 설치하여

1932~1938년 식민사관에 바탕한 <조선사> 35권, <조선사료총간>, <조선사료집전> 등을 간행

하며 단군조선을 신화로 왜곡하고 한국사를 왜곡 말살하였습니다.

그 당시 조선사편수회수서관보로 들어가 우리민족의 역사를 왜곡하는데 일등 공로자가

사람이 바로 전 서울대학교 교수 및 교육부 장관과 한림원장을 역임한 이병도(1896~1989)였습니다.

이병도는 와세다대학 '사학 및 ​사회학과'를 졸업한 국내 최초의 대학출신 역사학자입니다.

이 시절 그는 조선사 편수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등에 4(漢四郡)의 강역을 한반도 내의

존재설을 강력히 주장하고 '우리 사회는 한사군이 철기문화를 전해준 덕분에 미개사회를 벗어나 국가

단계로 진입하였다'고 주장하며 고려시대 풍수도참(風水圖讖) 사상, 그리고 조선시대 유학사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당연히 일어(日語)로 쓴 것들입니다. 이때 쓴 논문들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단재 신채호의 민족주의 사학과는 서로 배치되는 논리들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해방 후 국사학계를

주도하였으며, 민족사학의 거목들이 납북된 후 식민사학을 실증사학으로 위장시켜 한국 역사학계

를 좌지우지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면서 제2, 제3의 식민사학자

양성하였다.

 

(漢四郡 중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중국의 주장을 살펴보면 『사기색은』

「하본기」에서 "낙랑 수성현(遂城縣)에는 갈석산(碣石山)이 있는데 만리장성의 기점"이라고

말한다. 갈석산은 만리장성의 끝인 현재 하북성 창려현에 있다. 따라서 한나라의 식민지인 낙랑군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위치는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대릉하 이남 지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갈석산을 낙랑의 위치를 찾는 이정표로 언급한 기록은 『한서』「가연지전賈捐之傳」에도

보인다. 한무제의 업적을 들면서 언급한 "동쪽으로 갈석을 지나 현도와 낙랑으로써 군을 삼았다.

[​東過碣石以玄菟樂浪爲郡] 라는 기록이 있다.-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에서 인용)

 

단군조선의 건국시기는 기원전 2333년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단군조선이 처음 역사서에

등장한 시기는 기원전 7세기 초입니다. 더욱이 단군조선의 정신을 이어받은 조선 또한 이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 들였고 매년 전국에서 단군에 대한 제사를 지냈습니다. 1907년 순종 1

발행된 역사교과서인 ​‘동국사략’에서도 단군조선을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로, 단군을 우리나라

의 국조로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일제에 의해 이렇게 축소 조작된 역사가 해방 후에도 일제 강점기 교육을 통해 왜곡, 축소된 우리

나라의 상고사를 배웠던 사학계가 해방이후에도 식민주의 사관을 고집하고 수정 없이 국사교과서에

그대로 실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교육되고 있는 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