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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지렛대로 꿈도 들 수 있을 까?"

후암동남산 2010. 2. 15. 09:17

 

 

카푸친 씨의 좌우명은 빚지지 말고 살자는 것이다. 스스로 모은 돈이 아니면 결코 위험한 투자에 쏟아 붓지 않는다. 재규어 씨는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만용을 부릴 때도 많다. 끌어올 수 있는 돈은 모조리 끌어와 투자 밑천을 최대한 불려 놓고 보는 것이다. 카푸친 씨 같은 이들보다 재규어 씨 같은 이들이 정글경제를 압도할 때 금융시장은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자산 거품이 지나치게 끓어올랐다 급격히 꺼지며 위기를 맞기 쉽다.

 

 

세상을 들어올릴 수 있는 지렛대는 있나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of Syracuse). 고대 그리스 수학자, 물리학자, 공학자, 발명가, 천문학자. 하지만 그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면 금융공학자라는 타이틀까지 붙여줘도 좋을 것이다.

 

“충분히 긴 지렛대와 설 자리를 달라. 지구라도 들어올릴 것이다. (Give me a lever long enough and a place to stand, I will move the world.)”

 

물론 2200여 년 전 그리스인들이 오늘날의 금융공학을 활용하고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지레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바로 그 점이다. 지레의 원리를 모르고서는 오늘날 정글경제의 기업 자본구조(capital structure)와 투자전략을 이해할 수 없다. 이제 첨단 금융공학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재규어 씨나 카푸친 씨 같은 보통사람들도 온갖 금융 레버리지(financial leverage)를 활용하고 있다. 타인자본을 끌어들여 투자밑천을 늘림으로써 자기자본의 수익률을 한껏 끌어올리려는 레버리지전략은 말 그대로 지렛대(lever)의 힘을 이용하려는 전략이다. 참으로 간명한 문장으로 지레의 힘을 설파했던 아르키메데스야 말로 후세 사람들에게 레버리지효과(leverage effect)를 깨우치게 해준 금융공학의 원조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하지만 후세의 금융인들이 그에게서 받은 영감이 너무나 강렬해서였을까? 너무도 많은 이들이 레버리지에 탐닉하는 바람에 거대한 빚더미가 오늘날 정글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경제가 거대한 빚더미에 짓눌려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가운데 있는 미국 투자은행(investment bank)들을 보자. 그들은 보기에도 아찔한 레버리지전략을 썼다. 2007년 말 미국 5대 투자은행(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의 자기자본(equity)은 모두 1,402억달러였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자본의 30배가 넘는 총4조2,717억달러나 되는 자산(asset)을 갖고 있었다. 총자산에서 자기자본을 뺀 나머지는 모두 빚(debt)이었다. 자산가치가 3.3%만 떨어지면 자기자본은 한 푼도 남지 않게 되는 위험한 구조였다. (시간이 흘러 이자가 나가면 자산가치가 떨어지지 않아도 이자비용만큼 자본이 잠식된다.)

 


레버리지 비율만 보면 이들은 웬만한 헤지펀드(hedge fund)보다 무모했다고 할 수 있다. 극단적인 레버리지전략의 리스크를 웅변해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ong-term Capital Management, LTCM)는 1998년 9월에 무너졌는데, 그 해 초까지만 해도 LTCM의 자산은 자기자본의 25배였다. 2007년 투자은행들의 자본구조는 몰락하기 직전의 LTCM보다 위험했다고 할 수 있다. (1998년 9월 LTCM이 바닥까지 추락했을 때에는 그 해 초에 비해 10배나 높은 레버리지를 기록했다. 당시 이 회사는 1,000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자기자본은 그 250분의 1인 4억달러에 그쳤다.)


미국 투자은행들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5대 투자은행 중 3곳이 경쟁자에게 흡수되거나(베어스턴스와 메릴린치) 파산했다(리먼브러더스). 금융계의 아르키메데스들은 결국 세상을 들어올릴 지렛대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레버리지전략에서 뛰어넘어야 할 허들  

기업이든 개인이든 남의 돈으로 만든 지렛대를 잘만 쓰면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잘못 쓰면 거대한 빚의 무게에 짓눌리게 된다. 시가 5억원의 정글아파트를 사면서 3억원의 빚을 낸 재규어 씨와 같은 아파트를 자기 돈만으로 산 카푸친 씨의 경우를 보자. 재규어 씨는 연 7%의 이자를 내야 한다. (여기서는 복잡한 세금 문제나 집을 사는 대신 은행에 예금하면 얻게 될 이자는 생각하지 말자.) 1년 후 정글아파트 값에 따라 달라지는 두 사람의 투자수익률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정글아파트가 6억원이 될 때 카푸친 씨의 투자수익률은 20%지만 재규어 씨의 수익률은 그 두 배인 39.5%가 된다. [1억원/5억원=0.2, (1억원-2,100만원)/2억원=0.395] 아파트 값이 5억원 그대로라면 카푸친 씨는 원금을 건지지만 재규어 씨는 이자비용(2,100만원)만큼 손실을 본다. 아파트 값이 4억원으로 떨어지면 카푸친 씨 손실은 20%에 그치지만 재규어 씨의 손실률은 그 세 배인 60.5%까지 커진다. [-(1억원+2,100만원)/2억원=-0.605] 재규어 씨의 수익률(빨간색)이 카푸친 씨의 수익률(파란색)보다 훨씬 크게 변동한다. 그만큼 리스크가 크다는 뜻이다. (재규어 씨의 수익률 분포를 나타내는 벨 커브는 훨씬 펑퍼짐한 모양이 될 것이다.) 파란 선과 빨간 선이 엇갈리는 점은 아파트 값이 5억3,500만원일 때다. 이때 재규어 씨와 카푸친 씨의 수익률(7%)은 같다.
 

 

 

지렛대효과는 자기 돈만으로 투자했을 때보다 빚을 내 투자밑천을 불렸을 때 더 높은 수익률을 챙길 수 있게 해준다. 지렛대효과가 플러스가 되자면 투자자산의 수익률이 차입금 이자율보다 높아야 한다. 차입 이자율은 레버리지효과를 얻기 위해 뛰어넘어야 하는 허들수익률(hurdle rate of return)이다. 시장 실세금리가 높아지면 당연히 허들도 높아진다.

 

투자대상이 아파트가 아니라 기업이라고 해도 원리는 마찬가지다. 이자비용을 뛰어넘는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은 엄청난 레버리지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이자율에도 못 미치는 수익률을 낸 기업은 빚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기 쉽다. 6.67배의 레버리지효과를 노릴 수 있는 주가지수선물거래나 증거금의 20배나 되는 외환을 살 수 있는 FX마진거래도 그만큼 높은 리스크를 안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신용도가 낮은 이들을 위한 주택담보대출)로 집을 산 미국인들은 대부분 과도한 레버리지를 안고 있다 낭패를 봤다.

 

 

피자를 몇 쪽으로 자르면 가장 좋을까요? 

물론 요즘 사람들이 지나치게 레버리지에 탐닉한 잘못을 2200년 전에 지레의 원리를 설명했던 한 물리학자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50여년 전에 기업가치는 자본구조(부채와 자기자본의 조합)와 무관하다는 이론을 내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금융경제학자들 탓으로 돌린다면 어떨까? 198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프랑코 모딜리아니(Franco Modigliani)와 그보다 다섯 살 아래인 동료로서 5년 후 같은 상을 받은 머튼 밀러(Merton Miller) 이야기다.

 

모딜리아니와 밀러는 기업의 가치는 빚을 많이 쓰느냐 적게 쓰느냐와는 상관이 없고 오직 그 기업의 수익창출 능력과 리스크에 달려 있다는 이른바 MM정리(MM theorem)로 학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The Cost of Capital, Corporation Finance, and the Theory of Investment, American Economic Review, 1958년 6월) 그들은 MM이론을 어떻게 보통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피자와 밀크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을 들려주었다.


모딜리아니가 노벨상을 탔을 때 그의 동료 밀러를 찾아온 방송기자는 MM정리를 시청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간략히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밀러가 얼마나 짧게 설명하면 되냐고 묻자 “10초 동안”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필생의 연구 성과이자 각주(footnotes)만 60개에 이르는 복잡한 논문들을 단 10초 만에 설명하라니! 난감해하던 밀러는 이렇게 풀었다. “기업을 거대한 밀크 통이라고 생각해봅시다. 농부는 밀크를 그대로 팔 수도 있고 크림을 걷어내 따로 비싸게 팔 수도 있지요. 물론 나머지 탈지유(skim milk)는 원래 우유보다 싸게 팔아야겠지요. MM정리는, 유지방 분리에 돈이 안 든다면, 크림과 탈지유 값을 합치면 원래 우유 값과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너무 복잡하니 좀 더 간단하게 설명해줄 수 없느냐는 부탁에 밀러는 다시 이렇게 설명했다. “기업을 거대한 피자라고 생각해봅시다. MM정리는, 네 쪽으로 자른 피자를 한 번씩 더 잘라 여덟 쪽이 됐다고 해도, 피자 조각의 수는 늘었지만 피자가 더 많아진 건 아니라는 걸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MM이론이 기업들의 무모한 레버리지전략을 정당화했다거나 광란의 기업 인수합병(M&A) 바람을 부추겼다고 비난한다면 MM은 당연히 억울해 할 것이다. MM이론을 공격하는 많은 이들이 순수한 MM이론의 여러 가정(거래비용과 세금, 파산비용, 정보비대칭, 기업과 투자자의 차입금리 차이가 없다는 가정)을 충분히 새겨듣지 않은 채 비난부터 퍼붓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MM이론이 기업의 빚더미가 커질수록 파산비용(bankruptcy cost)도 커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무시한 채 논리를 전개한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다. 자본구조에 관한 보다 현실적인 이론을 모색하게 한 이런 비판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더욱 힘을 얻을 것이다.

 

 

레버리지의 환상과 디레버리징의 고통

저금리가 부추긴 레버리지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 빚의 무게를 줄여가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의 시기가 온다. 재규어 씨의 빚이 지나치게 무겁다면 그는 파산하거나, 허리띠를 힘껏 졸라매거나, 인플레이션(inflation)이 실질적인 빚의 무게를 줄여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디플레이션 deflation으로 실질적인 빚이 무거워지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다.) 하지만 파산과 구조조정은 늘 고통스럽고 인플레이션에 따른 부채경감 효과는 아무나 기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플레이션을 기대하며 마냥 버티려 하다 원리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막막해진 재규어 씨는 지레의 원리를 깨우쳤던 지성들을 원망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