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천서씨(절효공파)

동인인 이황선생의 학문이 남인으로 이어지게 된 학문의 계승...

후암동남산 2011. 7. 24. 08:14

 

이황 학문의 계승과 역사적 위치
 

이황의 학문·사상은 이후 영남·근기 지방을 중심으로 계승되어 학계의 한 축을 이루었다.

 

영남지방에서 형성된 학통은 유성룡(柳成龍)·조목(趙穆)·김성일(金誠一)·황준량(黃俊良) 등의 제자와 17세기의 장현광(張顯光)·정경세(鄭經世)·이현일(李玄逸)·정시한(丁時翰)을 이어 이재(李栽)·이상정(李象靖)·이진상(李震相)·곽종석(郭鍾錫)·허훈(許薰)·이항로(李恒老)·유중교(柳重敎) 등 한말까지 내려왔다.

 

근기 지방에서는 정구(鄭逑)·허목(許穆) 등을 매개로 유형원(柳馨遠)·이익(李瀷)·정약용(丁若鏞) 등 남인 실학자에게 연결되어 이들 학문의 이론적 기초로서 기능했다. 한편 이들의 학통계승은 17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각 학파·당파의 정치투쟁과 궤를 같이 하면서 전개되는데 이들은 남인 당색하에, 이이의 학문을 사상적 기반으로 기호지방에서 성장한 서인과 치열한 사상투쟁·정치투쟁을 벌이며 조선 후기 사상계·정치계의 한 축을 이루었다
(→ 붕당정치).

 

이황의 학문은 일본 주자학 성립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임진왜란 후 일본으로 반출된 이황의 저술은 도쿠가와[德川]가 집정(執政)한 에도 시대[江戶時代]에 11종 46권 45책의 일본각판으로 복간되어 소개되었다. 일본 근세유학의 개조(開祖) 후지와라[藤原惺窩] 이래로 주류인
기몬 학파[崎門學派] 및 구마모토 학파[熊本學派]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두 학파로부터 대대세세(代代世世)로 존숭을 받아왔다.

 

이황의 학문과 사상에 대한 연구와 재평가는 오늘날에도 '
퇴계학'(退溪學)이라는 용어를 낳을 만큼 국내외적으로 매우 활발하다. 1970년 서울에 퇴계학연구원이 창립되었고, 1973년 경북대학교에 퇴계연구소가 부설되었다. 이황의 학문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논문집으로 현재 〈퇴계학보〉가 있다. 외국에는 일본·타이완·미국·독일 등지에 연구회가 조직되어 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1609년 문묘(文廟)에 종사(從祀)되었으며,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 나주 경현서원(景賢書院), 괴산 화암서원(花巖書院) 등 전국 40여 개의 서원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퇴계전서 退溪全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