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함께하는 이야기

팔찌로 구분하는 고객의 마음

후암동남산 2012. 2. 26. 16:22

 "흰 팔찌 찬 고객엔 말 걸지말라"

[화장품 매장, 팔찌 색깔로 손님 구분해 쇼핑 방해 않기]
연두색은 "도움이 필요해요" 美서 시작된 마케팅 인기… 우리나라도 올봄부터 도입

요즘 화장품 업계에선 소위 '말 걸지 마세요' 마케팅이 화두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몇몇 외국계 화장품 회사는 올봄부터 쇼핑도 시간을 쪼개서 겨우 할 정도로 바쁜 고객의 경우 말을 거는 점원의 '방해'를 받지 않고 혼자 물건을 살 수 있도록 매장 운영 시스템과 디자인을 바꿀 계획이다. 이에 맞춰 직원 교육도 다시 시키고 있다. '말 걸지 마세요' 마케팅은 지난해부터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시작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지난 10일 미국 뉴욕 블루밍데일 백화점. 이곳 1층에 있는 C 화장품 매장에서 점원이 한 여자 손님에게 말을 걸었다. "손님 어떤 걸 찾으세요?" 여자 손님은 조용히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빼더니 하얀 팔찌를 차고 있는 걸 보여줬다. "아, 죄송합니다." 점원은 황급히 사과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 팔찌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저 지금 바빠요!(Time is of the Essence).'

이 매장에선 손님에게 세 가지 색깔의 팔찌를 나눠준다. 흰색을 차면 '바쁘니까 말 걸지 마라'는 뜻이고, 분홍색은 '둘러보다 궁금한게 생기면 물어보겠다(Browsing and happy)'란 뜻이다. 반면 연두색 팔찌를 차면 '도움이 필요하다(I have time. Let's talk)'라는 얘기. 연두색 팔찌를 차고 있으면 상담사가 다가와 제품 상담을 해준다. 이 회사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진저 티옹(Tiong)은 "고객 조사를 해보니 바쁠 때 점원이 자꾸 말을 걸어서 쇼핑을 포기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정작 필요할 때 상담을 해주지 않아 답답했다는 고객도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효과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팔찌를 마련했다"고 했다.

흰색 팔찌를 찬 고객이 알아서 쇼핑할 수 있도록 매장 디자인도 바꿨다.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 가장 궁금해하는 게 보통 가격이다. 벽마다 들어찬 '메이크업 바'엔 가격을 붙여놓은 제품이 채워져 있다. 직접 발라보고 칠해보고 맘에 들면 그 중 하나를 들고 계산대로 가면 그만이다. C사 측은 "매장 리노베이션 이후 매출이 곱절 이상으로 뛰었다"고 했다.

역시 화장품업체 K사의 경우는 바구니가 팔찌 역할을 한다. 매장에 비치된 바구니를 들고 서 있는 고객에겐 점원이 굳이 말을 걸지 않는다. '알아서 혼자 좀 둘러보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록펠러 센터 옆에 있는 한 패션 매장에선 점원에게 부탁하니 '위시리스트(Wish list)'를 가져다줬다. 매장에 있는 상품 목록과 가격이 죽 적혀 있다. 이걸 들고 혼자 쇼핑하다 맘에 드는 물건을 위에 표시해서 주면 바로 계산대로 제품을 포장해 갖다준다. 매장에서 만난 손님 알리시아 게일(Gale)씨는 "시간낭비 없이 필요한 물건만 빨리 사고 나갈 수 있어서 편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