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이천서씨(절효공파)

선천정 심장병 환자의 아버지 "서동만 교수"

후암동남산 2012. 2. 26. 17:56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심장의 한쪽이 쪼그라든 상태로 태어났다. 다섯 번의 크고 작은 수술을 받고, 다른 한쪽 심장으로 다른 아이처럼 씩씩하게 지내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에게 지난 여름 보완수술이 필요하자, 그곳 주치의인 유명 흉부외과 교수에게 한국에서 수술을 받겠다고 말했다. 그는 "왜 세계 최고 의술을 자랑하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으로 가려고 하느냐?"고 물었다가 한국의 의사 이름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사는 울산대 서울 아산병원 소아흉부과 서동만 교수다.

 

 

 

5,000명에게 새 심장 선사한 소아흉부외과 대가

서 교수는 5,000명의 아이에게 건강한 심장을 선물한 선천성 심장병 수술 분야의 세계적 고수다. 그는 1995년 이후 지금까지 체중이 2.5㎏ 이하인 저체중아 100명을 수술했다. 2002년에는 몸무게 1.3㎏의 젖먹이의 메추리알만한 심장을 수술해 생명의 숨을 불어넣기도 했다. 수술성공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 병원에 버금가고 ,호주 멜버른 대학병원보다 뛰어나다. 그는 심장이 한쪽만 발달한 아이에게 시행하는 ‘폰탄 수술’, 심장의 심방심실의 좌우 위치가 바뀐 상태에다 대동맥과 폐동맥의 위치가 바뀐 수정대혈관전위 환자의 이중치환술 등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심장이식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다. 지금까지 37명의 아기에게 심장을 이식해, 단 한 명도 초기에 사망한 적이 없다는 기록을 갖고 있다. 서 교수는 이런 아이들이 무럭무럭 크는 것을 보면서 의사로서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이 늘 밝은 것만은 아니다. 2008년 가을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여덟 달 전, 극적으로 수술에 성공한 아이를 잃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백일 때 3.6㎏의 몸무게로 4 살배기 소아 뇌사자의 심장을 이식 받았다. 수술 전 한 달 동안 인공심폐기의 도움을 받았고, 수술 뒤에도 작은 몸에 큰 심장이 들어가 있어 한 달 동안 심장을 연 상태로 있다가 봉합해서 새록새록 정상적으로 숨을 되찾았다. 자신의 아들이 생명을 찾은 것처럼 기뻤지만 8개월 뒤 복막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서 교수는 한동안 아이의 얼굴이 눈에 밟혀 한숨을 쉬어야만 했다. 그 무렵 그는 또 다른 비보를 들어야만 했다. 환자는 1990년대 후반 4가지 기형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팔로4징’으로 호주와 미국 등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우심실에서 폐로 가는 길이 막혀있었다. 서 교수는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고 환자는 대학을 졸업해 취직해서 가장 먼저 서 교수를 찾았다. 환자는 매년 초에 인사를 하러 왔고 봄에는 단축마라톤을 완주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줬다. 그러나 환자는 당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던, 다른 병원의 의사를 찾아갔다가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급히 수술대에 오른 뒤 영원히 올 수 없는 길로 떠났다. “내게 전화 한 통이라도 했다면, 내게 전화 한 통이라도 했더라면….” 

 

서 교수의 주위에서는 그를 환자와 기쁨과 즐거움,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의사라고 평한다. 2002년 폰탄 수술을 받은 환자와 가족의 모임이 결성되는 것을 도왔고 ‘단심회’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지난해 겨울 단심회의 환자가 결혼할 때에는 ‘혼주’인양 기뻐했고, 올 봄 35명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학부모’인 양 즐거워했다.

 

 

고교시절 철학도를 꿈꿨으나, 흉부외과를 천직으로 선택하였다

그러나 그는 고교 때까지 의사가 된다는 것을 생각지도 않았고 의대에 가서도 흉부외과 의사는 남의 일로 여겼다. 고교 때에는 철학도가 되고 싶어 서울대 인문계열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재수 때 아버지가 “문과보다 이과에 가면 길이 많다”며 권해 이과로 방향을 틀었다. 마침 모교인 경복고 교사들이 삼영학원을 설립하고 재수생들을 모집하자, 그곳에서 공부해 서울대 의대에 들어갔다. 의대에서도 문과적 기질 때문에 정신과를 전공으로 삼으려고 했다. 인턴을 시작할 무렵만 해도 아줌마나 아기를 치료하는 것은 왠지 싫었다. 그런데 인턴을 시작하자마자 심장병 때문에 입술이 새파란 아이가 수술을 받고 나서 볼그스레한 얼굴로 퇴원하는 것을 보고 흉부외과에 홀딱 반해버렸다. 전공의 선배들이 1주일에 한번 옷 가지러 귀가하고 다시 병원에서 밤을 새우는 것을 보고도 ‘이 길이 곧 내 길’이라고 정했다.

 


서 교수는 “운이 좋아 전공의 시절부터 좋은 선후배들 덕분에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공의 때에는 박표원(현 삼성서울병원 교수), 성숙환(분당서울대병원 교수), 진성훈(한라병원 과장), 조재일(국립암센터 병원장) 등의 선배와 김기봉(서울대병원 교수), 김원곤(서울대병원 교수) 등의 동기, 이재원(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응준(동국대병원 교수) 등 후배들과 함께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면학 분위기를 연출했다.

 

당시 전공의들이 외국 학술지를 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분위기였지만 이들은 어떻게든 책을 구입, 복사해서 열띤 토론을 벌이며 대한민국 흉부외과 수준을 높였다.서 교수는 부천 세종병원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는 행운도 안았다. 세종병원은 백병원과 한양대에서 명의로 이름을 떨쳤던 박영관 박사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당시 의료 취약지역이었던 부천에 세운 심장병 전문병원. 박 원장이 이흥재·유시준·송명근·박표원 등 ‘천하의 인재들’을 모아, 대학병원 이상의 학구열로 뜨거웠던 곳이었다. 서 교수는 공중보건의사 근무를 마치고 1년을 더 있다가 대전 을지병원을 거쳐 서울아산병원에 자리를 잡았다.

 

그 무렵 그는 호주 멜버른에서 이 분야 대가 로저 미 교수의 문하로 한 달 동안 밤낮없이 공부해 선진기술을 습득했다. 미 교수는 이에 앞서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국제학회에 참석했다가 서 교수가 세종병원 시절의 성적을 발표하는 것을 보고 반해 초청했다. 미 교수는 서 교수를 외국 의사들에게 “선천성 심장병 분야의 떠오르는 스타”라고 소개하곤 했다. 로저 미 교수는 ‘심장병 수술의 메카’인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으로 스카우트돼 자리를 옮긴 뒤 서 교수를 다시 한 번 초청했다. 서 교수는 미국 연수를 마치고 귀국해서 어린이 심장 수술에 몰두했다. 그리고 한국 흉부외과 역사의 각종 기록을 이어나갔다. 그는 “소아심장 진료의 대가인 박인숙 교수, 신생아 진료의 새 영역을 개척한 피수영∙김기수∙김애란 교수와의 팀워크 덕분에 많은 아기가 심장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서 교수는 요즘 두 가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나는 의술의 발달로 옛날에는 살기 어려웠던 아기라도 건강하게 살 수 있으므로, 뱃속의 생명을 지우지 말라고 호소하고 계몽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동남아 등의 심장병 아기들을 살리는 일이다.그는 2001년 7월부터 매년 외국에서 무료수술을 해오고 있다. 세계의 빈곤아동을 돕는 국제기구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 한국지부의 이사를 맡고 있으며, 지난 11월에는 중국과 동남아 등에서 인술(仁術)을 베푼 공적으로 대한적십자사 적십자박애장 은장을 받기도 했다. “인턴 초기에만 해도 임신부와 아기는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임신부를 만나서 상담하고 아기와 부대끼며 사니까 운명이란 것이 묘하군요.” 요즘 그는 심장병으로 신음하는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해외로까지 인연의 끈을 잇고 있다. 그것 또한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때로 가슴 아플 때도 있지만 삶 전체가 풍요한, 보람 넘치는 운명이라고.

 

서동만 교수가 말하는 선천성 심장병

선천성 심장병은 전체 신생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드물지 않은 병이다. 혈액은 온몸을 돌면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정맥을 통해 우심방으로 들어온다. 이 피는 우심실, 폐동맥을 거쳐 폐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이산화탄소를 버리고 산소를 담는 과정을 통해 깨끗해진 피는 폐정맥, 좌심방, 좌심실을 거쳐 대동맥을 통해 다시 온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심장에 구멍이 있거나 심장의 위치 및 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혈액이 흐르는 데 지장이 생겨 피로감을 느끼거나 병에 잘 걸리고 성장에 지장이 온다. 증세가 심하면 목숨을 잃는다. 선천성 심장병의 25%정도는 심실 사이의 막에 구멍이 있는 심실 중격 결손이다. 또 심방 사이에 구멍이 있는 심방 중격 결손동맥관 개존증이란 병이 각각 15%를 차지한다. 태아는 폐로 숨을 쉬지 않기 때문에 정맥의 피가 폐를 거치지 않고 심장을 돈 다음 대동맥을 통해 곧바로 온몸으로 나간다. 따라서 정맥과 동맥을 연결하는 동맥관이 열려 있다가 출생과 동시에 닫히는데 이것이 닫히지 않는 것이 바로 동맥관 개존증이다. 이 밖에 우심실에서 혈액이 나가는 곳이 좁아져 있고 심실 중격에 구멍이 있는 등의 4가지 증세가 나타나는 ‘팔로4징’, 폐동맥판 협착, 대동맥판 협착, 대혈관전이 등의 기형이 있다.

 

1953년 미국의 기븐 박사 등이 인공심폐기 보조 하에서 심방 중격 결손으로 태어난 어린이의 수술에 성공한 뒤 선천성 심장병에 대한 수술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다. 의학계 전반에서도 개심술은 50년에 불과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획기적으로 발전해, 항생제의 발견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도 1959년 개심술이 도입된 이래 1970년대 건강보험 적용에 힘입어 선천성 심장기형 수술은 양적, 질적으로 발전해 왔다. 1983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부부가 방한해 심장병 어린이 두 명을 미국에 데려가 수술하고 돌려보내자 “우리 손으로 우리 아이들의 심장병을 치료하자”는 바람이 불었다. 이에 따라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영부인 이순자씨가 앞장서 기업들의 성금을 모으면서 한국심장재단이 출범, 국내 심장병 치료 분야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현재 우리나라 흉부외과 의사들은 선진국에 버금가는 수술 성적을 보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소아 심장외과에서도 일부 복잡 심장기형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선천성 심기형의 수술 사망률은 0%에 근접하고 있다. 이제는 수술 사망률을 낮추려고 노력하는 단계에서 장기적인 성적을 보다 좋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측면으로 초점을 모으고 있다. 누군가 “선천성 심장기형이 치료 가능한 병인가?”라고 질문한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듯하다.


 

선천성 심장병의 80%는 외과적 수술로 치료하고, 심장의 한 군데에만 이상이 있어 입술이 파랗게 변하지 않는 ‘비청색증’ 환자는 내과적 시술로도 치유한다. 사타구니를 약간 절개해 혈관을 통해 작은 도관을 심장까지 밀어 넣어 심장의 뚫린 곳을 막거나 막힌 곳을 넓혀주는 것이다. 요즘은 아주 심각하지 않은 환자의 외과 수술도 가슴을 조금만 절개하고 흉터를 최소화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최근 선천성 심장기형 치료에 있어 주목할 만한 변화중의 하나는 흉부외과 의사와 심장내과 의사가 협력하는 ‘복합 치료’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부 선천성 심장기형을 치료하기 위해 흉부외과와 심장내과 의사가 경쟁자의 관계가 아닌 협력자의 관계로 힘을 합친 것이다. 서울아산병원에서도 이미 수년 전부터 도입되어 점차 그 적용 범위를 확대해 나아가고 있다.

 

최근 경향으로 아기 때 선천성 심장기형 수술을 받고 성인 연령이 돼 다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소위 GUCH(Grown up congenital heart) 환자들이 점차 늘어 간다는 점을 꼽을 수가 있다. 또 출산율이 급격히 줄면서 복잡 심장기형 환자 수 역시 격감하고 있으며 환자들이 전국 몇 개의 병원으로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다 산전 진단의 발달로 중절 시술이 급격히 늘고 있다. 임신부는 초음파에서 아기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아기를 지울 것을 요구하고 일부 의사는 응하고 있다. 요즘 낙태 반대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의사들도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좀 더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심실중격결손의 절반 이상은 그냥 놔둬도 한 살 이전에 나으며 나머지 환자도 대부분 고칠 수 있다. 부모는 태아도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하고 의사는 자신이 생명을 존중하지 않으면 의료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조금만 장애가 있어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회적 분위기도 함께 없애야 하겠지만.

 

 

Q&A 서동만 교수에게 물어보다

  • 1
    인생에 자양분이 된 숨겨진 습관은?
    누구나 흔히 하는 예습과 복습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예습이란 주말 저녁 무렵, 다음 한 주일 동안의 일들에 대해 정리, 준비하는 것이고 복습이란 수시로 처리한 일들에 대하여 다시 돌이켜 보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사항은 골몰히 생각하며 결정을 다음날로 미룬다.
  • 2
    힘을 주는 경구 혹은 명언은?
    첫째 ‘머리는 높게 몸은 낮게’다. 불필요한 오해를 없앨 수 있다. 둘째 ‘일일개선’이다. 일본 광고에서 보고 좌우명으로 삼았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잘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 3
    슬럼프의 극복 방법은?
    기본에 충실하는 것(Back to the Basic).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다독∙다작∙다상량 밖에 없다는 것을 늘 가슴에 새겨두고 있다.
  • 4
    스무 살 즈음과 지금 달라진 것은?
    역사를 보는 시선이 조금 부드러워졌다는 점이다. 젊었을 때에는 역사가 나선구조 속에서도 나아진다는 강의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 5
    가장 아픈 실수와 그로부터 얻은 교훈은?
    인턴 때 눈 주위에 육종으로 항암제를 투여받기 위해 자주 입원하는 환자가 있었다. 상처는 눈을 거의 덮고 있었다. ‘노트르담의 곱추’ 이상으로 눈 부위가 헐어있었고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하루 두 번씩 상처 드레싱을 해야 했다. 그간의 경과 기록에는 상처 쪽 눈이 안 보인다고 기록이 돼 있어서 눈에 대한 배려 없이 소독을 했다. 어느 날 환자가 내게 자신은 사물을 볼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매번 소독할 때 소독약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의사는 환자를 병명이나 기록으로써가 아닌 온전한 인간으로 대하여야 된다는 점을 온몸으로 느꼈다.
  • 6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한 영역에서 모든 역경을 헤치고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우리 영역에서 보면 돌아가신 흉부외과 이영균 교수님과 소아심장을 개척하신 홍창의 교수가 대표적이다. 홍교수는 세 가지를 말했다. 일찍 연구실에 불을 끄지 말고, 일찍 유명해지려고 하지 말고, 우리나라에 많은 질병에 몰두하라고. 이 가르침을 후학에게도 전하고 싶다.
  • 7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한 환자가 아니라 항상 마음속에 담고 다니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선천적으로 하나의 심실을 가지고 태어나 수술을 받고 살아가는 단심회 환자들은 한 명 한 명 소홀히 할 수 없다. 평생 의학적인 새로운 지식과 정서적인 돌봄이 필요하므로.
  • 8
    라이벌은?
    선의의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세상 도처에서 노력하고 있을 동료와 후배들 모두다.
  • 9
    의사를 선택하게 된 동기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다. 사변적인 삶보다 체용(體用)을 중시하는 삶이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 간곡히 말씀했다.
  • 10
    소아 심장외과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만 꼽으라면 정확한 판단력을 들겠다. 숲과 나무를 아울러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어야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환자를 살려낼 수 있다.
  • 11
    이 길을 잘 선택했다라고 느낄 때는?
    수술 후 퇴원하여 첫 외래 방문 시 환하게 웃으며 아기를 안고 들어오는 아기 엄마 아빠를 볼 때다.
  • 12
    같이 일하며 믿음을 주는 사람은?
    우리 선천성 심장병 센터 팀 식구 전원이다. 어려운 산모와 아기를 돌보아 주는 원혜성 교수, 정확한 진단을 내려주시는 소아심장과의 박인숙 교수를 비롯한 여러 교수님들, 영상의학과의 구현우 교수, 마취통증의학과의 곽미정 교수, 수술실과 중환자실의 간호팀 - 김상화, 엄주연, 임유미, 이영화, 정은주 간호사 등, 전공의와 전임의 선생들 특히 이들을 진두 지휘하는 장원경, 박정준, 윤태진 교수 등이다.
  • 13
    다시 스무살이 된다면?
    부질없는 생각이다. 어찌 세월을 되돌릴 수가 있겠는가?
  • 14
    앞으로 꼭 해내고 싶은 희망은?
    어느 보호자가 남겨주고 간 글, ‘박시제중’(博施濟衆)의 뜻에 따라 살고 싶다. 특히 우리나라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국외의 어린이들에게 공을 들이고 싶다. 소아 심장 분야는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의 질이나 접근성이라는 면에서 이미 잘 갖추어졌다고 보이며 전 세계적으로, 특히 가까운 이웃 나라들에서는 우리의 손길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