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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종영되는 SBS <옥탑방 왕세자>는 조선 왕세자 이각(박유천 분)이 300년 뒤 대한민국에 환생하여 세자빈 의문사의 진상을 파헤치는 드라마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각은 세자빈 화용(정유미 분)에 관한 뜻밖의 진실에 접했다. 청순한 요조숙녀로만 알았던 세자빈이 실상은 '화려한 사생활'을 가진 여인이었다는 점이다. 은밀히 사귀는 남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세자는 전생에 화용이었던 세나(정유미 분)가 이 남자 저 남자를 가까이하는 것을 보고 그런 힌트를 얻었다. 그런 사생활이 세자빈 의문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그는 추리했다.
드라마 속의 화용보다 훨씬 더 '화려한 사생활'을 남긴 세자빈이 실제로 있었다. 이 세자빈에 관해 듣다 보면, 화용은 그나마 준수한 편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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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주인공은 세종대왕의 며느리였던 봉순빈(순빈 봉씨)이었다. '세종의 며느리인 봉순빈'이라 하지 않고 '세종의 며느리였던 봉순빈'이라고 표현한 것을 기억해두자.
조선시대의 대표적 성군이었던 세종은 며느리의 애정행각 때문에 무척이나 속을 태웠다. 그 정도로 봉순빈의 애정행각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세종의 아들인 세자 이향(훗날의 문종)은 열네 살 때 첫번째 부인인 김휘빈(휘빈 김씨)과 결혼했다. 김휘빈은 부적절한 처신 때문에 2년 만에 친정으로 쫓겨났다.
김휘빈의 부적절한 처신 중 하나는, 남편의 사랑을 얻고자 주술적 방법을 동원한 사실이다. 성적 접촉을 가진 뱀의 몸에서 생긴 액체를 수건에 묻혀 자기 몸에 착용하면 남편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했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김휘빈이 문제를 일으킨 데는 세자 이향의 책임도 있었다. 세자가 여성보다는 책을 더 좋아하는 데다가, 책을 안 읽는 시간에는 세자빈보다 궁녀들에게 관심을 더 쏟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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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외면 받은 봉순빈, 다른 방법으로 탈출구 모색
김휘빈이 나가고 3개월 뒤에 들어온 두번째 세자빈이 문제의 봉순빈(순빈 봉씨)이다. 봉순빈 역시 세자의 관심을 끄는 데는 실패했다.
봉순빈이 세자빈이 되고 나서 세자의 첩으로 들어온 여성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권씨였다. 훗날 경혜공주와 단종을 낳게 될 권씨는 문종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이랬으니, 봉순빈은 속이 탈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외면을 받은 봉순빈은 여러 가지로 탈출구를 모색해 보았다. 권씨를 원망하며 통곡을 하기도 했고, 거짓으로 임신을 한 척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오히려 왕실의 불신만 얻었을 뿐이다.
결국, 봉순빈은 의외의 방식으로 탈출구를 찾아 나섰다. 세종 18년 10월 26일자(1436년 12월 4일) <세종실록>에 따르면, 봉순빈은 남편이 있어야 할 자리에 궁녀 소쌍이 있도록 했다. 소쌍을 잠자리에 불러들인 것이다.
소쌍에 대한 봉순빈의 집착은 대단했다. 그는 소쌍이 단지라는 궁녀와도 동성애를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최측근을 시켜 두 사람을 감시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두 궁녀의 접촉을 방해하곤 했다.
세자빈의 잠자리는 궁녀들이 정리해야 했다. 그런데 소쌍과 잠자리를 가진 뒤로, 봉순빈은 자기가 직접 이불을 정리했다. 그 이불을 세탁하는 일도 최측근한테만 은밀히 지시했다.
봉순빈과 소쌍의 동성애는 수년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궁궐 안에 소문이 안 퍼질 수가 없었다. 소문은 시아버지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추문을 들은 세종은 진상을 확인하고자 며느리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
세종 앞에 불려 간 봉순빈은 그만 실언을 하고 말았다. 소쌍과 동침했느냐는 시아버지의 질문에 대해, 엉뚱하고도 치명적인 대답을 한 것이다.
봉순빈은 자기는 동성애를 한 적이 없다면서, 그런 일은 소쌍과 단지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소쌍과 단지는 서로 껴안고 키스까지 한다고 말하면서, 그는 시아버지 앞에서 동성애 방식을 매우 노골적으로 설명했다.
소쌍과 단지에 대한 평소의 질투심이 너무 지나쳤던 탓에, 시아버지 앞에서마저 그런 감정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혹시, 학문에만 몰두하느라 세상 재미를 모르는 시아버지가 안쓰러워,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고 긴장을 풀어주려 함은 아니었을까.
동성애 빠진 며느리를 용서할 수 없었던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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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기가 막혔다. "네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다 아느냐?"며 며느리를 나무랐다. 봉순빈의 답변은 도리어 세종의 의심을 굳히고 말았다.
세종은 동성애에 빠진 며느리를 용서할 수 없었다. 봉순빈은 결혼 7년 만에 친정으로 쫓겨 가고 말았다. 그래서 봉순빈은 세종의 며느리'였던' 여성이 되고 말았다. 새로운 세자빈의 자리는 첩인 권씨에 의해 채워졌다.
실록에 명시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봉순빈은 동성애 이외의 방법으로도 탈출구를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위 날짜 <세종실록>에서는 봉순빈의 비행을 열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관(내시)들의 호슬·주머니·자루 등을 손수 만들어 주었다. 이 때문에 세자의 생신에 바쳐야 할 물건들을 만들 여가마저 없었다. 지난해 생신에는, 예전에 바쳤던 물건을 새로 만든 물건인 것처럼 속여서 바치기도 했다."
호슬(護膝)은 무릎 보호대다. 내시들이 사용할 호슬·주머니·자루 등을 세자빈이 직접 만든 것 자체는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자애로움의 증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남편의 생일 선물을 만들 여유도 없을 정도로, 예전에 준 선물을 새로운 선물인 양 속여서 바쳐야 할 정도로 내시들에게 마음을 쏟았다는 것은 충분히 의심을 사고도 남을 만한 일이다.
사관이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아서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봉순빈은 궁녀한테만 정신을 쏟은 게 아니라 내시들과도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 남편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불만이 봉순빈을 그처럼 '화려한 사생활'로 몰아넣은 것이다.
<옥탑방 왕세자>의 세자빈도 사생활이 투명하지 못했지만, 봉순빈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실록에 소개될 정도로 화려한 애정행각을 벌이고, 시아버지에게 동성애 강의까지 하고 '당당히' 궁을 나온 봉순빈에 비하면, 그것은 새 발의 피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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