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 먹구름’ 몰려온다
부동산 값 하락 → 이자 부담 눈덩이 → 소비심리 꽁꽁 → 실물경제 휘청
코스피 시가총액 석달새 128조원 증발
“부실여신 대책 없으면 ‘제2일본’ 우려”
소규모 기념품 납품업체를 경영하는 서모 씨(44)는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1년 전 9억5000만 원이던 아파트(115m²) 값은 8억 원까지 떨어졌고, 500만 원이 넘던 가게의 월 순이익도 200만 원으로 줄었다. 순이익 200만 원 중 100만 원은 아파트를 살 때 대출받은 2억2000만 원의 이자로 나가 남은 100만 원으로 생활해야 한다. 그는 "집을 팔아 대출부담을 줄이려 해도 집값이 너무 떨어진 데다 매매도 안 된다"며 답답해했다. 자산가치는 하락하고, 소득도 줄면서 부채 상환 부담만 커진 것이다.
서 씨 같은 사람들이 크게 늘면서 한국 경제가 '부채 디플레이션'의 초기 국면에 들어섰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경기 둔화, 900조 원을 넘는 가계부채, 최악의 부동산 불황 등이 중첩된 결과다.
부채 디플레이션은 집값 등 보유자산의 가치가 하락해 부채의 실질적 부담이 커지고, 이로 인해 약화된 소비심리가 실물경제에 타격을 주는 악순환 구조를 갖는다.
○ 자산가치 하락 추세 전방위 확산
최근 벌어지는 '자산 디플레이션'의 핵심은 부동산 값 하락이다. 한국의 가계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75%로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
18일 국민은행에 따르면 수도권의 6월 단독주택 매매가격은 한 달 전보다 0.1% 떨어졌다. 2010년 8월(―0.2%) 이후 약 2년 만의 하락세다. 수도권의 집값 하락세가 아파트를 넘어 단독주택으로까지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도 지난해 6월부터 지난달까지 1년간 2.4% 하락했다. 고점(高點) 대비 가격이 반 토막이 된 '반값 아파트'가 속출하고, 서울지역 재건축 대상 아파트 값도 심리적 저지선의 붕괴가 임박한 상황이다. 그나마 극심한 침체 속에서도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던 상업용 빌딩의 투자수익률도 요즘엔 하락세로 돌아섰다.
금융자산의 가치도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코스피시장 시가총액은 17일 1050조 원으로 연중 최고치였던 4월 3일(1178조 원)보다 128조 원이나 하락했다. 올 초에도 주식시장에선 어김없이 장밋빛 전망이 나왔지만 유로존 경제위기, 중국의 성장 둔화 등 해외 악재가 줄을 이으면서 코스피는 1,800 선 밑으로 떨어졌다. 주식, 펀드 등 서민들의 금융자산이 무더기로 손실을 봤다는 뜻이다. 다른 실물자산들도 일제히 하락세다. 리조트 회원권 가격은 전국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고 골프장 회원권 값은 고점 대비 3분의 1토막 난 곳이 속출하고 있다.
○ "유동성 함정 경계해야" 목소리도
적정한 양의 빚은 소비를 늘리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그러나 부채가 임계점을 넘어 너무 많아지면 상환부담 때문에 오히려 소비가 줄어든다. 특히 한국처럼 빚 자체가 많고 자산 가치마저 떨어지는 국면에서는 단순한 소비 감소를 넘어 경제 전체가 디플레이션에 따른 경기불황에 빠져들 위험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게다가 빚을 갚기 위해 갖고 있는 부동산을 투매하면 집값이 더 폭락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장기불황이 시작된 일본에서 나타난 현상이 지금 한국에서 그대로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20년 전 일본은 부동산 버블이 꺼지고 금융기관의 부실까지 겹쳐 전형적인 부채 디플레이션이 발생했다"며 "한국도 은행의 부실여신 비율이 늘고 있어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제2의 일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추가 금리 인하 및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한 강도 높은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2.2%(6월)에 불과한데도 소비나 투자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한 디플레이션의 징후라는 우려에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유동성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 부채 디플레이션 ::
채무 부담이 커진 경제주체가 부채 상환을 위해 자산을 매각하고 이것이 자산가치 하락을 유발해 경제 전체가 디플레이션에 빠져드는 현상.
:: 유동성 함정 ::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 인하, 유동성 공급 등 부양책을 써도 돈이 실물경제로 안 가고 금융시장 내에서만 도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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