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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삼성증권 사장은 "우리의 삶은 금융시장과 비슷하다. 예측할 순 없지만 바닥을 치면 반등하기 마련이다"라며 '금융멘토'다운 조언을 이어나갔다. |
"사장님은 강남스타일" 지난 13일 저녁 전북대에서 열린 삼성그룹 토크콘서트 '열정락서'에는 김 석 삼성증권 사장이 강연자로 나서 자신의 인생을 강남스타일에 빗대 설명했다.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그 아래 '쏘는 놈'김 사장은 지난 84년 체이스맨하탄뱅크에 입사한 후 94년 삼성에 들어온 금융전문가다. 20년 가까이 삼성 구조조정본부와 카드, 증권·금융 계열사를 종횡무진하다 올 초 삼성증권 사장으로 선임됐다.
경력으로만 따지면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유학파일듯 하지만 실제로는 '토종'인 데다, '엄친아'도 전혀 아니다. "고등학생 때 집이 사업에 실패해서 달동네로 이사를 갔어요. 방황과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고3 올라갈 때 도저히 대학에 가기 힘든 성적을 받았죠. 60명 중 56등이었습니다."
김 사장은 '잘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골라 끝까지 밀어붙이는 방법을 택했다고 했다. "나는 놈 밑에 쏘는 놈도 있어요. 경쟁에서 이기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고, 날아가는 놈을 쏴서 떨어뜨리겠다는 각오도 해야 합니다" 대입 과목을 일부만 선택해서 집중한 결과 사회, 과학에서 각각 네 과목 가운데 두 과목은 100점, 두 과목은 0점을 받았다.
직업 선택도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전략적으로 했다. 그는 법대를 나왔지만 경영대학원(MBA)에 생각이 미쳐, 재무제표도 모르는 상태에서 외국계은행에 취직했다.
"영어회화도 안 돼 어려움을 겪었죠. 한 번은 건설에 대해 분석하는 게 있었는데, 건설장비 용어들을 외우기 힘들어서 백화점엘 갔습니다. 미니어처 장난감을 모조리 사서 프레젠테이션 할 때 올려놓고 설득을 했지요."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 긍정의 힘김 사장은 삼성에 입사한 후 그룹 상황이 어려울 때마다 강한 면모를 보여 왔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삼성 구조조정본부에서 자금을 총괄했고, 2003년 카드사태 때는 삼성카드에 파견 나가 일을 맡았다.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일면에는 '노는힘'이 있었다. 김 사장은 스스로를 "1970년대부터 좀 노는 남자였다"고 소개한 뒤 "즐길 줄 아는 게 유연한 사고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싸움을 해 제지도 받고, 당구는 1년 만에 300을 치고, 연극, 태권도, 클래식 기타까지 섭렵했죠. 그러다보니 학점이 1.9가 나왔어요." 그는 다양한 경험이 유연한 사고방식을 길러줬다고 설명했다. "놀 줄 알았던 것은 여러 사람을 이해하고 허용할 수 있는 바탕이 됐습니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위기 상황을 극복하게 했죠"
◇'때가 되면 미쳐버리는 사나이' - 타이밍의 중요성김 사장은 삼성에 온 것을 '타이밍'으로 설명했다. 93년 말, 삼성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그 당시 받던 월급의 5분의 1이었다. 그는 휴가도 집도 5분의 1로 줄어드는 선택을 했다.
"여러분 보시기에는 '미친놈'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두 가지가 있었어요. 하나는 익숙함에 안주하는 게 나한테 나쁘다고 생각했고, 다른 하나는 기업사이드에 가서 일해 보는 게 꿈이었죠. 가도 안 가도 후회할 거면, 가서 후회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강연장에 모인 2400명의 청년들에게 '일단 질러보라'고 조언했다. "여러분이 항상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가본 길 안 가본 길에 고민을 많이 하는데, 아니더라도 한 번 해보고 후회하는 게 젊음이라고 생각해요" 그에게 열정은 좋아하는 걸 하는 것, 악착같이 하는 것, 그 두 가지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나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