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수학사전

피라미드...

후암동남산 2012. 11. 30. 21:44

 

피라미드 [ pyramid ]

  • 원어

    pyramis(그리스어, 라틴어)

1. 고대 이집트 묘의 한 형식으로 사각추형의 구축물을 말한다. 고왕국시대에서 신왕국시대에 걸쳐서(B.C. 2826년경~B.C. 1085년경) 건조되었고, 주로 왕묘로 채용됐다. 피라미드의 본체(本體)는 각면이 동서남북으로 향한 각추형(角錐形)의 돌이나 일건벽돌 즉 흙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묘실은 거의 중앙에 있으나 그 높이는 지하, 저면(底面)의 위, 본체 내부 등 각각 다르다. 묘실 입구는 북쪽면의 어느 정도의 높이에 혹은 북쪽 지표면에 있다. 매장 후 통로는 돌로 채워지거나 돌문으로 엄중히 봉쇄되어 입구까지도 완전히 막아버리고 있다. 피라미드의 형식은, 제3왕조 제세르 왕(B.C. 2660년경)의 사카라의 계단형 피라미드, 제3왕조 말 내지 제4왕조 초 스네프루(B.C. 2650년경)의 다하슈르의 피라미드 2기(굴절피라미드 및 북피라미드) 등을 거쳐, 제4왕조시대 기자의 피라미드에서 완성되었다. 그중에서도 쿠프 왕(B.C. 2580년경)의 제1피라미드는 저변이 사방 230.4m, 당초의 높이 약 146.6m(현재의 높이 137.8m)라는 최대의 규모에 달하며 극히 정확한 시공으로 알려져 있다. 피라미드 주위에는 벽을 두르고 그 동쪽면에 장제전(葬祭殿)이 접해 있으며 또 거기에서 나일의 골짜기를 바라보는 유역전(流域殿)까지는 수백미터의 참배를 위해서 만든 길이 있다. 그의 원형은 기자의 카프라 왕(B.C. 2560년경) 제2피라미드에서 잘 볼 수 있다. 이 피라미드 복합체(컴플렉스)의 주위에는 왕족이나 귀족의 마스타바가 정연히 늘어서 있다. 제5~7왕조의 피라미드는 평균적으로 저변의 길이가 80m 정도로 축소되고, 장제전(葬祭殿)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제12왕조(B.C. 1991년경~B.C. 1786년경) 때에는 평균적 저변의 길이가 약 100m로 벽돌 혹은 절석조(切石造)의 뼈대 사이에 깬돌을 채워 넣어 건조되었다. 그러나 묘실에 이르는 회랑(回廊)은 복잡해지고 이것을 폐쇄하는 방법 역시 대단히 교묘해졌다. 왕묘로서의 피라미드는 제17왕조(B.C. 1650년경~B.C. 1567년경)까지 만들어졌다. 신왕국시대에는 사인묘(私人墓)에 소규모의 피라미드가 부설된 예가 있다(디르 엘 마디나). 그후에도 나파타 및 메로에 왕족이 많은 석조 피라미드를 세웠으나 규모는 작다(쿠르루, 누리).

2. 로마 제국에서 묘 또는 장제(葬祭)건축으로서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모방한 유구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로마에 있는 B.C. 1세기 후반의 고관 케스티우스(Cestius)의 묘로, 사방 22m 사방의 저면의 높이 27m의 사각추가 콘크리트로 만들어지고 표면은 대리석으로 덮여 있다.

3. 아메리카 대륙의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는 달리 신전의 기단으로 만들어진 건물을 말한다. 그러나 예외로 멕시코의 팔렌케에 있는 <비문의 신전>처럼 내부에서 묘가 발견된 것도 있다. 메소아메리카에서는 몇 개의 기단이 겹겹으로 된 계단식의 모양인 것이 많고, 정상은 평평하며 신전이 거기 세워지며 적어도 한쪽에는 계단이 나 있다. 최고(古)의 것으로는 라벤타의 봉토(封土) 원추형의 피라미드가 있으나, 후에는 바깥쪽을 돌로 덮은 방형(方形) 혹은 구형(矩形)의 것이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중앙 안데스 지대에서는 B.C. 2천년대에서부터 페루 해안지방에 나타나며 コ형의 것이 많고 아도베(일건벽돌, 흙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벽면에 채색회화를 그려놓은 예가 있다. 모치카, 치무 문화기에는 아도베에 의한 거대한 피라미드가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