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수학사전

경문수학산책 1 수학의 위대한 순간들 (2)|

후암동남산 2012. 11. 30. 21:50

11. 최초의 위대한 수론학자 : 디오판토스와 산학(250년경)
수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이론적 측면을 ‘수론(number theory)’이라고 한다. 수학사의 수론 분야에서 진정한 천재로 두드러진 사람은 디오판토스(Diophantus)이다. 디오판토스는 원래 열세 권이었으나 여섯 권만이 현존하고 있는 ‘산학’, 단지 일부만이 현존하고 있는 ‘다각수에 대하여(On Polygonal Number)’그리고 분실된 ‘부정명제론(Porisms)’등 세 가지의 수학적 작품을 남겼다. 그 가운데에서 ‘산학’은 대수적 수론을 해석적으로 다룬 것으로서, 그 현존하는 부분은 상당히 다양한 일차방정식과 이차방정식을 유도하는 약 130개의 문제에 대한 풀이에 충당되고 있다. 그 풀이에서 디오판토스는 단지 양의 유리수인 解(해)만을 인식하였으며, 다른 많은 해가 존재할 수 있더라도 하나의 해를 찾으면 만족하였다.‘산학 제2권’에는 “주어진 제곱수를 두 제곱수로 나누기”라는 문제가 있는데, 이에 대한 바셰(Bachet)의 번역서의 여백에 페르마(Fermat)가 “세제곱수를 두 개의 세제곱수로 나누거나, 네제곱수를 두 개의 네제곱수로 나누기, 또는 일반적으로 임의의 거듭제곱수를 같은 차수의 두 개의 거듭제곱수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확실히 이 사실에 대한 놀라운 증명을 발견하였지만, 여백이 너무 좁아서 그것을 포함할 수 없다.”라고 썼으며, 이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12. 대수학의 축약 : 대수적 기호화의 첫 단계(250년경)
디오판토스의 ‘산학’의 출현은 대수적 표기를 향한 최초의 시도이었다. 디오판토스 이전의 대수학은 모두 수사적 대수학(rhetorical algebra)의 단계이었으며 분배 문제, 나이 문제, 일 문제, 물통 문제, 합금 문제과 같이 생략이나 기호가 없이 산문체로 표현되었다. 디오판토스는 미지수의 거듭제곱, 덧셈, 뺄셈 등에 대하여 특정한 기호를 사용하였으며, 그리스 알파벳에 의하여 수를 표현함으로써 축약된 대수학(syncopated algebra)의 단계를 열었다. 이후에 대수학은 계속 발전하여 등호 =, 근호 √, 부등호 〈, 기타의 기호들이 차츰 나타남으로써 상징적 대수학(symbolic algebra)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13. 초기의 두 가지 계산도구 : 주판(불확실)과 인도-아라비아 수체계(800년 이전)
사람의 손가락 다음으로 오래 된 계산도구로서의 주판이 얼마나 언제 등장하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고대와 중세에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존재하였다.
오늘날 세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같은 수기호를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0, 1, 2, 3, 4, 5, 6, 7, 8, 9 등을 자리가 있는 수열로 표현하는 것이다.(*주 1) 이러한 수체계에 대한 가장 오래된 표기는 인도의 기원 전 250년경에 세워진 몇 개의 돌기둥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수학자 알콰리즈미(Al-Khowarizmi)에 의하여 825년에 출판된 책에서 비로소 그 수체계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이것을 ‘인도-아라비아 수체계(Hindu-Arabic numeral system)’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알콰리즈미로부터 오늘날의 용어‘알고리즘(algorithm)’이 유래되었다.

(*주 1) 5세기 경에 있었던 ‘숫자 0’의 발명은,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선정한, 인류의 역사를 바꾼 100대 과학사건의 하나에 속한다.
       
14. 호라산의 시인 - 수학자 : 삼차방정식의 기하적 해법(1090년경)
삼차방정식의 기하적 해법은 11세기에 페르시아의 시인이자 천문학자이며 수학자인 카얌(Khayyam)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그는 모든 형태의 삼차방정식을 양의 실수근을 갖는 한에 있어서 기하적으로 풀어서 아라비아의 대수학에 독창적인 공헌을 하였다.
 
15. 얼간이 : 피보나치와 산반서(1202년)
인도-아라비아 수체계의 지식과 보급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피보나치(Fibonacci)의 ‘산반서(Liber abaci)’이다. ‘산반서’는 1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새로운 숫자들을 읽고 쓰는 방법, 정수와 분수의 계산 방법, 제곱근과 세제곱근의 계산 방법, 임시 위치법과 대수적 방법에 의한 일차방정식과 이차방정식의 해법 등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책에서 두 가지의 재미 있는 문제를 찾을 수 있다.
그 하나는 기원 전 1650년 고대 이집트의 린드 파피루스에 나오는 “어떤 재산이 일곱 채의 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집에는 일곱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각 고양이는 일곱 마리의 쥐를 잡아 먹었다. 각 쥐는 밀 일곱 포기씩을 먹었다. 말의 각 포기로는 일곱 헤카트의 곡물을 생산할 수 있다. 집, 고양이, 쥐, 밀, 곡물의 헤카트 수 등 이 재산에 포함되어 있는 이와 같은 모든 것을 합하면 얼마가 되느냐?”라는 문제를 옮긴 것으로 보이는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한 쌍의 토끼가 매달 한 쌍의 토끼를 낳고, 새로운 토끼쌍은 두 달 뒤부터 그와 같은 방법으로 새끼를 낳는다면, 한 쌍의 토끼는 일 년 동안 얼마나 많은 토끼를 생산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흥미로운 수열을 보여준다.
1, 1, 2, 3, 5,……, x, y, x+y, ……
처음 두 항은 1이고, 그 이후는 바로 직전 두 항의 합과 같은 이 수열은 ‘피보나치 수열’로 불리게 되었다. 이 수열은 하나의 정사각형을 서로 다른 정사각형으로 분할하는 것과 같은 수수께끼, 벌의 번식, 잎의 차례, 해바라기나 데이지와 같은 복합 꽃의 씨 등에서 놀랄 만큼 많이 나타난다. 피보나치 수열에서 연속된 항의 비를 택하면
1/1, 1/2, 2/3, 3/5, 5/8, 8/13, …… 과 같은 수열을 얻다. 이 수열은 수학적으로 (수식 1) 곧 황금비에 수렴하는 것으로써, 자연은 황금비에 접근하려고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피보나치는 ‘산반서’이외에도 ‘실용기하학(Practica geometriae)’과 ‘제곱근서(Liber quadratorum)’를 썼다.
피보나치는 때때로 그의 작품에 Bigollo라고 서명하였는데, 여기에는 ‘여행자’와 ‘얼간이’라는 두 가지의 뜻이 있다. 

 

16. 놀랍고 기괴한 이야기 : 삼·사차방정식의 대수적 해법(1554년)
볼로냐 대학교의 수학교수이었던 페로(Ferro)는 이차항이 없는 (수식 2) 형태의 삼차방정식을 대수적으로 풀었으며, 말더듬이라는 뜻의 타르탈리아(Tartaglia)로 불렸던 폰타나(Fontana)는 일차항이 없는 (수식 3) 형태의 삼차방정식에 대한 대수적 해법을 발견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 두 사람의 공개시합에서 이차항이 없는 삼차방정식의 대수적 해법까지를 발견한 타르탈리아가 승리하였다. 밀라노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의사로 개업하고 있던 카르다노(Cardano)는 타르탈리아로부터 그 해법을 얻어 내어‘위대한 계산법(Ars magna)’을 출판하면서 그 해법을 실었다. 타르탈리아는 카르다노에게 항의하였으나, 그 항의는 오히려 카르다노의 제자인 페라리(Ferrai)로부터 표절이라는 고발을 받게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이탈리아이 수학자 다코이(da Coi)는 카르다노에게 “10을 세수로 나누어 그 세수가 연비례하고, 첫 두수의 곱은 6이 되도록 하라”라는 문제를 제시하였다. 이 문제는 풀이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식 4) 형태의 사차방정식의 대수적 해법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 문제의 풀이에 카르다노는 실패하였으나, 페라리는 성공하였다. 카르다노는 즉각 페라리의 해법을 그의 저서‘위대한 계산법’에 포함시켰다. 그 뒤에 곧 삼차방정식과 사차방정식에 대한 또 다른 대수적 해법이 나타났다.
 

17. 천문학자의 수명을 두 배로 : 네이피어에 의한 로그의 발견(1614년)
스코틀랜드의 귀족인 네이피어(Napier)는 곱셈과 나눗셈을 보다 간단한 덧셈과 뺄셈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로가리듬을 발견하였다. 네이피어는 로그에 대한 논의를 1614년의 ‘로그의 놀라운 법칙에 대한 설명(Mirifici logarithmorum canonis descripto)’을 통하여 출판하였는데, 이 책에는 연속적인 각을 분까지의 사인값에 대한 네이피어 로그값을 알려주는 수표가 기록되어 있다. 네이피어와 만난 런던 그레셤 대학의 기하학교수인 브리그스(Briggs)는 상용(common) 로그를 탄생시켰으며, 브리그스의 동료 천문학 교수인 컨터(Gunter)는 분까지의 각에 대한 사인과 탄젠트의 상용로그를 일곱 자리까지 계산한 수표를 출판하였으며, 코사인과 코탄젠트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로그의 발견은 천문학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어서, 작업량을 줄임으로써 천문학자의 수명을 두 배로 만들었다. 이후에 수표를 대체하는 로그자가 발명되었으며, 다시 로그자는 휴대용 계산기로 대체되었다. 오늘날 로그는 (수식 5)와 같이 지수로 간주되고 로그법칙은 지수법칙을 다시 서술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기는 하지만, 로그함수는 그 역의 관계에 있는 지수함수와 함께 수학교육의 중요한 부분으로 되어 있다. 
 

18. 자연과학의 자극 ; 갈릴레오의 역학(1589년 이후)과 케플러의 행성운동의 법칙(1619년)
갈릴레오(Galileo)는 일련의 실험을 통하여 지구 중력장 내의 물체 운동에 관한 상당한 양의 기초적 사실을 발견하였으며, 물체가 떨어지는 거리는 낙하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에 따른 (수식 6)을 얻었다. 케플러(Kepler)는 행성의 운동에 대하여 세 가지의 법칙을 유도하였다.
  (1) 행성은 태양의 주위를 태양이 하나의 초점이 되는 타원을 궤도로 회전한다,
  (2) 같은 시간 동안에 행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선분이 만드는 부분의 넓이는 서로 같다.
  (3) 행성의 1주기의 제곱은 궤도의 장축 반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갈릴레오는 현대적 역학을 창시한 것이며, 케플러는 현대 천체 역학을 창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연구는 그 전개를 위해서 변화, 유동, 운동 등을 다룰 수 있는 새로운 수학적 도구인 미적분학의 발견을 요구하였다. 

 

19. 얇게 가르자 : 카발리에리의 불가분량의 방법(1635년)
카발리에리(Cavalieri)는 갈릴레오 밑에서 공부하였고, 볼로냐 대학교의 수학교수로 있었으며, 삼각법, 기하학, 광학, 천문학, 점성술 등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하였다. 1635년에 출판된 ‘불가분량의 기하학(Geometria indivisi-bilibus)’에서 미적분학의 전단계인 ‘불가분량의 방법’을 다루고 있다. 주어진 평면도형의 불가분량은 그 도형의 현이고, 그 평면도형은 그와 같이 평행하게 무한히 많은 불가분량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주어진 공간도형의 불가분량은 그 도형의 단면이고, 그 공간도형은 그와 같이 평행하게 무한히 많은 불가분량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래서 만약에 그 평행한 불가분량들 각각을 자체의 축을 따라서 불가분량의 끝점들이 연속적인 경계를 유지하도록 하면서 밀어 움직이면, 그리고 원래의 도형과 새로 생긴 도형이 같은 불가분량으로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새로 생긴 도형과 원래의 도형의 넓이 또는 부피는 서로 같다. 여기에서 ‘카발리에리의 원리’가 얻어진다.
  (1) 두 개의 평면도형이 한 쌍의 평행선 사이에 끼어 있고 그 평행선들과 평행인 임의의 선으로 그 두 평면도형을 잘랐을 때 생기는 두 선분의 길이가 항상 일정한 비를 가지면, 두 평면도형의 넓이 또한 그 비를 갖는다.
  (2) 두 개의 공간도형이 한 쌍의 평행선 사이에 끼어 있고, 그 평행면들과 평행인 임의의 면으로 그 두 공간도형을 잘랐을 때 생기는 두 단면의 넓이가 항상 일정한 비를 가지면, 두 공간도형의 부피도 또한 그 비를 갖는다.
이 원리들은 넓이와 부피를 계산하는 데에 유용한 도구가 된다.
 
20. 변환 - 풀이 - 반전 기법 : 해석기하학의 발견(1637년)
해석기하학의 진수는 그것의 변형 - 풀이 - 반전의 성격에 있다. 여기에서 기하학의 문제는 먼저 그에 대응하는 대수학의 문제로 변환되고, 대수적 문제를 풀이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기하학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대수적 문제를 반전시킨다. 해석기하학이 현재와 같은 실용적 형태를 갖추는 데에는 데카르트(Descartes)와 페르마(Fermat)가 공헌하였다. 데카르트가 해석기하학을 발견하였다는 주장은 1637년의 그의 논문 ‘방법서설’에 실린 세 가지 부록 가운데에서 ‘기하학’이라는 제목이 붙은 마지막 부록에 근거한다. 페르마가 1636년에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힌 기하학에 대한 작업의 내용은 그의 사후에 출판된‘평면 및 입체 궤적입문’에 실려 있다. 테카르트는 단지 몇 개의 곡선을 제시한 반면에 페르마는 많은 새로운 곡선을 제안하였고, 대수적 방정식도 정의하였다. 그리고 테카르트는 주로 궤적에서 시작해서 그것의 방정식을 찾은 반면에, 페르마는 방정식에서 시작해서 그것의 궤적을 연구하였다. 이것이 해석기하학의 기본적 원리의 서로 역관계에 있는 두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