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과학사전

블랙홀 왜 검을까

후암동남산 2013. 4. 6. 13:07

블랙홀

블랙홀 왜 검을까

블랙홀(black hole)은 초등학생도 그 이름을 알 정도로 유명한 '스타'다. 왜 그렇게 유명한 걸까? 우주에서 가장 비밀스런 존재라는 점이 우리의 호기심과 함께 무한한 상상력을 자아내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주변 물질은 물론 가장 빠르다는 빛조차 빨아들이는 신비로움도 블랙홀의 명성에 한껏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믿기 힘들겠지만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이 천체는 현재의 인기에 걸맞지 않게 최근에야 블랙홀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얻었다. 1969년에 미국의 물리학자 존 휠러(John Wheeler)가 처음 붙여주었던 덕분이다. 그전까지는 '얼어붙은 별(frozen star)' '붕괴된 별(collapsed star)' 등의 괴상한 이름으로 불렸다. 블랙홀은 원어 그대로 해석하면 '검은 구멍'이란 뜻이다. 어째서 하필 검은 구멍이라고 했을까? 왜 검은 구멍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검다는 사실과 구멍이라는 사실로 나눠 살펴보는 게 좋겠다. 이 과정에서 자연히 블랙홀의 실체를 만날 수 있다.

먼저 블랙홀이 왜 검은지를 알아보자. 보통 별은 중심부에서 가스를 태우며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에 밤하늘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어떤 별이든 빛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뽐내는 것이다. 그런데 블랙홀은 마치 '우주의 진공청소기'처럼 물질은 기본이고 빛조차 꿀꺽 삼켜버린다. 빛을 내지 못하니 블랙홀이 검게 보이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블랙홀은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중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빛이 빠져나가지 못한다.

빛조차 탈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중력이란 어느 정도일까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좀더 쉽게 설명해보겠다. 땅에 서서 하늘을 향해 야구공을 던진다고 생각해 보라. 하늘로 던진 야구공은 어느 정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진다. 한때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잘나가던 시절의 박찬호 선수가 시속 150㎞가 넘는 강속구로 던지더라도 더 높이 올라가기는커녕 다시 땅으로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얼마나 빠르게 던져야 땅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야구공이 지구 표면에서 탈출하려면 초속 11.2㎞의 속도를 가져야 한다. 이런 속도를 '탈출속도(escape velocity)'라고 한다. 지구의 탈출속도는 전성기 시절 박찬호 선수의 강속구보다 무려 270배나 빠른 속도다.

탈출속도는 천체의 중력이 세면 셀수록 커진다. 탈출속도는 중력의 잣대인 셈이다. 천체의 질량이 무거우면 중력도 강해지므로 천체의 질량이 무거울수록 탈출속도도 커진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탈출속도는 천체의 중심에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중심에 가까울수록 탈출속도는 커진다. 지구 대기권 바깥의 우주공간으로 인공위성을 실어 나르는 로켓의 경우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지구 표면에서 로켓은 빠른 속도를 내려고 힘차게 날아오르지만, 어느 정도의 높이에 도달하면 그때부터는 그리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다른 천체의 표면에서 탈출하려면 어느 정도의 속도가 필요할까? 지구보다 중력이 약한 달의 탈출속도는 초속 2.4㎞이다. 때문에 미국의 달 탐사선 아폴로는 달을 떠나 지구로 향하는 데 그렇게 큰 힘이 들지 않았다. 반면 지구보다 중력이 센 태양의 탈출속도는 무려 초속 613㎞이다. 만약 어떤 천체가 태양보다 더 중력이 강하다면 그 천체의 탈출속도도 태양의 탈출속도보다 더 클 것이다. 그렇다면 태양보다 훨씬 중력이 센 천체 중에는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초속 30만㎞)에 달할 정도로 엄청나게 강력한 중력을 가진 종류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천체가 있다면 당연히 검게 보일 것이다. 놀랍게도 이런 아이디어는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나왔다.

1783년 영국 요크셔 손힐(Thornhill)의 교구목사이자 케임브리지 대학의 지질학 교수였던 존 미첼(John Michell)이 런던 왕립협회에 논문 한 편을 제출했다. 이 논문에서 미첼은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커서 우리가 볼 수 없는 천체가 우주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제안했던 것이다. 먼저 그는 태양보다 500배나 큰 천체를 상상했다. 밀도는 태양과 같지만 덩치(부피)가 태양보다 500배나 커서 태양보다 500배나 무거운 이 천체의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와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이 천체의 질량이 더 무거워진다면 탈출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더 커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무거운 질량을 가진 천체의 표면에서 출발한 빛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강력한 중력에 의해 다시 끌려 들어가게 된다. 즉, 빛이 이 천체의 표면에서 탈출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천체를 볼 수 없다. 결국 검게 보이는 것이다.

1795년에는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피에르 라플라스(Pierre Laplace)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 라플라스는 자신의 명저『우주체계 해설 Exposition du Systéme du Monde』에서 이 특별한 천체에 대한 논의를 담았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의 세 번째 판을 출간할 때 이런 논의를 빼버렸다는 사실이다. 아마 라플라스 자신도 이와 같은 생각이 무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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