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섹스, 그리고 사랑
고민 1. 서울에 사는 평범한 여대생입니다. 제 남자친구(남친)는 똑 부러지는 남자예요. 저를 현명하고 논리적으로 리드 해줘요. 문제는 제 남자가 ‘낮이밤져’라는 거예요. 낮엔 이기고 밤엔 져주는 남자. 밤만 되면 180도 돌변해요. “자세는 편해? 불은 끌까? 입을 좀 맞춰도 될까? 아, 미안.” 제가 뭘 어떻게 해야 남친을 ‘낮에도 이기고 밤에도 이기는 남자’로 만들 수 있죠?
고민 2. 스물일곱 남성입니다. 지금 사귀는 여자친구(여친)는 얼굴도 마음도 예쁩니다. 만난 지 5년째인데 아직도 따뜻하게 잘해줍니다. 문제는 제가 5년 전에 만났던 두 살 연상의 전 여친을 잊지 못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물어뜯을 듯이 싸웠지만 ‘그날 밤’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화해했습니다. 성격은 아주 사나운 강아지 그 자체였지만 완벽한 속궁합의 매치였죠. 그 누나가 자꾸 떠올라요.
‘2030세대’에 섹스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지난달 듀오휴먼라이프연구소에서 25~39세 미혼 남녀 1000명에게 혼전 성관계에 대해 물었더니 ‘부정적’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15.1%, ‘보통’은 37.5%, ‘긍정적’은 47.4%였다. 10명 중 1~2명만이 반대를 한 셈이다. ‘마녀사냥’에 들어오는 고민도 ‘성관계를 해야 되느냐’는 질문보다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서로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 더 많았다.
“3분이면 끝나는 ‘3분 카레’ 남친, 저는 괜찮은데 어떻게 하면 남친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줄 수 있을까요” “여친의 진도가 너무 빨라서 힘들어요”처럼 섹스에 대한 대화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고민, “첫 만남에 성관계를 갖고 교제를 시작했는데 과연 이 남자가 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가요” 라며 몸과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연 등 다양했다. ‘마녀사냥’의 정효민 PD는 젊은 세대들의 과감함에 대해 “예전엔 20대 중·후반에 결혼을 했다. 성적인 부분을 참아야 한다는 관념이 있었는데 지금은 결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30대 중반까지 성생활을 안 하고 살 수는 없는 분위기가 됐다. 우리 사회나 기성세대도 이제 그 부분을 용인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재고 따지고 간 보는 남자들
고민 3. 서른아홉 직장인입니다. 사무실에 스물네 살의 인턴이 있는데 볼 때마다 싹싹하게 인사를 합니다. 따로 연락하거나 회사 밖에서 만남을 갖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신경쓰이는 게 회식에 가면 이상하게 제 옆에 앉아 있고, 얼마 전엔 제주도로 휴가를 갔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감귤 초콜릿을 돌리면서 저한테는 “과장님은 단 거 잘 안 드시죠”라며 특산물 오메기떡을 선물했어요. 이거 저한테 관심 있는 거 맞죠?
고민 4. 직장인입니다. 팀 회식을 하는데 인턴 여직원이 취해서 제 옆에 앉더군요. 이 친구가 은근슬쩍 제 허벅지 안쪽을 만지는 겁니다. 갈수록 등을 손바닥으로 쓰다듬고 실수인 척 허벅지를 짚는 거예요. 끝나고 택시를 잡아주는데 “저한테 하실 말씀 없어요?”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없다고 말한 뒤 택시를 태워 보냈습니다. 저한테 신호를 보냈던 걸까요?
남성들이 사랑의 신호를 감지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친절. “너 같은 얼굴이 여자들이 좋아할 얼굴”이라며 끊임없이 외모를 칭찬하는 동기, “친구가 중요해, 내가 중요해” 물으며 여친처럼 연락하는 영어 선생님, “늦었으니까 우리 집에 있다가 택시 할증 끝나면 가”라고 말하는 직장 동료 등 과한 친절이 호감의 표시라고 의심했다.
또 다른 하나는 스킨십이다. “남자는 허리가 중요하다”며 요대를 직접 대주고, 등을 쓰다듬는 물리치료사, “손!” 하고 손을 내밀면 손을 잡아주는 아는 누나, 가슴 성형을 하고 와서 단추를 풀더니 “티 나는지 만져봐”라고 말하는 9년지기 친구 등 여성들의 몸짓언어를 궁금해했다.
연애컨설턴트인 이명길씨는 “요즘 남성들은 여성이 안 넘어간다고 열 번 나무를 찍지 않는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두 번 정도 찍고 만다”고 말한다. 상대방의 신호를 예민하게 감지해서 신중하게 직진한다. 그만큼 재고 따지고 간을 본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이씨는 “남성은 군대와 어학연수를 갔다가 졸업하면 28~29세가 된다. 결혼 적령기인 30대 초·중반까지 4~5년밖에 시간이 없다. 그사이에 결혼자금 약 1억원을 모아야 하는데 사실 불가능하다. 연애도 사치가 되는 거다. 그래서 아무나 칼을 뽑지 않고 누울 자리를 보고 뽑게 된다”로 분석했다.
실제로 ‘마녀사냥’을 방청했던 이영민(24·가명)씨는 “거절당하면 받을 상처가 두렵다”며 “사실 취업 때문에 사랑 고민이 뒤로 밀린다. 사랑을 해도 데이트 비용이 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쪼잔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감’과 ‘주저’ 고민하는 여성들
고민 5. 스물두 살 소녀입니다. 동갑 남친과 100일 여행을 갔습니다. 우리의 혈기왕성한 첫날밤이 깊어가던 중이었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쉬워 보이나?’ 놀란 척하며 스킨십을 멈췄어요. 남친 눈에는 제가 순수 결정체로 보였을 거예요. 그런데 이후 문제가 생겼습니다. 조금만 진도를 나갈라치면 남친 스스로 ‘쓰레기’라고 자책하는 거예요. 저를 지켜주겠다며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않는 겁니다. 진짜 문제는 제가 순수하지 않다는 겁니다. 집에 가면 혼자서 별별 상상을 다하는데, 이제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성들이 보낸 스킨십 관련 사연 중에는 개방적인 가치관과 보수적인 가치관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민이 많았다. 정조 관념이 사라지고 여성이 관계의 주도권을 나눠 갖게 되면서 여성 앞에 선택지가 놓인 셈이다. ‘내 순수함을 지켜주겠다며 하나부터 열까지 걱정인 남친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 ‘개방적인 성격이 좋다며 사귀게 됐는데, 이제는 야한 이야기를 하면 남친이 싫어한다’ ‘유학생활 중 흑인 남자친구를 만나게 됐는데, 확신이 서지 않아 복잡하다’ 등이 그런 사례다.
‘마녀사냥’에 방청을 왔던 직장인 김미나(29·가명)씨는 “내가 적극적인 행동을 했을 때 남자친구가 어떻게 생각할지 무척 궁금했다. 남자 MC만 출연하는 1부를 더 즐겨 보는 이유는 부끄러워서 묻지 못한 남자들의 심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학이나 기업 등에서 연애상담을 하는 이명길씨는 “남성들이 스킨십의 기술을 묻는 ‘목적지향적 성향’이 있다면, 여성들은 남성의 심리, 스킨십의 타이밍, 피임 문제 등 스킨십의 전과 후를 따지고 그것이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하는 ‘관계지향적 성향’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사랑, 돈으로도 살 수 있을까
고민 6.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인 남자입니다. 여친이 임용고사를 준비하는데 점점 돈과 시간관리에 예민해지네요. 형편이 안 좋아지면서 점점 데이트 횟수도 줄었습니다. 하지만 여친은 주말에 맛있는 것을 얻어먹어야 한다며 예쁘게 꾸미고 나가 남자 선배들을 만나요. 또 저에게 데이트할 돈으로 쌀·소시지·방울토마토 등을 살 생활비를 보태달라고 합니다. 계속 만나야 하나요?
고민 7. 서른 살 직장인입니다. 4년 전 지하 월셋방에서 아르바이트 3개를 하며 열심히 사는 4살 연하의 남친을 만났습니다. 목표도 뚜렷하고 자기계발도 열심히 하는 게 멋있어 보였습니다. 만나면 돈은 거의 제가 썼고, 혹시나 기가 죽을까봐 늘 격려했습니다. 그러다가 남친이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는데 소위 ‘대박’이 터졌습니다. 남친은 명품과 외제차로 치장을 하고, 고급 클럽을 빌려 성대하게 파티를 열었습니다. 돈을 벌더니 허세 가득한 철없는 사람이 된 겁니다. 한번은 제게 “예쁘게 입고 다녀. 친구들이 내가 너 같은 여자를 만날 급이 아닌데 왜 만나느냐고 묻더라”고 말하더군요. 남친과 헤어져야 할까요.
상대방의 재력이나 집안 등 현실적인 조건은 젊은 세대에게도 큰 관심사였다. 특히 데이트 비용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취업포털 커리어가 지난해 3월 20~30대 미혼 직장인 41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데이트 비용에 부담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76.5%였다. 월평균 데이트 비용은 ‘21만~40만원’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34.5%로 가장 많았다.
‘마녀사냥’에 도착한 사연도 취업 준비를 하면서 데이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고민부터 공과금의 반을 내주던 회사 부장님의 속마음이 궁금하다는 여성, 데이트 비용을 모두 부담하는 여자는 상대방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러는 것인지 묻는 남성, 패션·데이트·선물·스킨십 모든 면에서 센스가 너무 없는 남자친구와 헤어져야 하나라고 묻는 여성까지 다양했다.
‘마녀사냥’의 인기는 곧 젊은 세대에게 연애의 멘토가 필요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연애코치부터 연애컨설턴트, 연애연구소, 연애 학원까지 생기는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인간 관계에 정답이란 없다. ‘마녀사냥’의 MC 신동엽의 지론이 문득 떠오른다. “많이 만나고, 사랑하고, 상처받아야 한다. 그래야 더 좋은 사람, 나에게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