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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대한 독일인의 지적...분하고 억울했다

후암동남산 2014. 5. 2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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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년 전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5월 18일과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 16일의 공통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바로 '국가'와 '언론'이 죽은 날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민을 무책임하게 죽음으로 내몬 정권, 그리고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 언론... 어쩌면 이리도 똑같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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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대한 독일인의 지적...분하고 억울했다

[베를린에서 보내는 그림편지] 독일에서 울려 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


5월 18일 베를린, 하늘은 회색구름으로 가득 차고 새벽부터 비가 을씨년스럽게도 내리는 일요일. 집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기 싫은 베를린의 우울한 날씨가 하루 종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에 계신 당신, 안녕하신지요. 그곳에서는 이미 17일부터 세월호 추모 대규모 집회가 진행되었고 서울 도심에만 3만 촛불이 모였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머나먼 이곳 독일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현지 시각 18일 오후 3시, 베를린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포츠다머플라츠(Potsdamer Platz)에 독일 사람들과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웅성웅성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는 한국교민들이 세월호 참사 침묵시위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베를린 중심부에 위치한 광장에서, 저마다 노란 피켓을 들고 일렬로 길게 늘어서서 입에 X자로 테이프를 붙인 한국교민들의 모습은 지나가던 사람들이 단번에 발걸음을 멈출 만한 것이었습니다.

시위대 보호 나선 경찰... 이런 시위 해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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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경찰과 독일 시민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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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교민들은 행진을 시작했고 독일 경찰들은 일사불란하게 시위대의 행진을 위한 도로 공간을 확보하며 교통정리를 했습니다. 세월호 추모 침묵 시위대는 포츠다머플라츠를 시작으로 베를린 대표관광지인 체크포인트 찰리와 박물관 섬까지 '박근혜OUT'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습니다.

저 역시 사람들 무리에 섞여 베를린의 도로 위를 걸었습니다. 마침 스마트폰으로 한국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추모집회에 참가했다가 연행되었다는 뉴스를 보곤, 독일 경찰을 유심히 쳐다보았습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습니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한 독일 경찰이 마치 시어머니처럼, 다른 동료들에게 '시위대들이 안전하게 행진할 수 있도록 잘 지키라'며 연거푸 잔소리를 해댔기 때문입니다.

경찰에 의해 정말 안전하게 집회를 하고 있다는,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이 묘한 느낌은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행진을 하던 다른 교민들 몇몇 역시 독일경찰들의 호위(?)가 고맙고 감탄스럽다는 말을 하더군요.

집회에는 처음 참석해본다는 최명보씨를 만났습니다.

"지금의 한국 현실이 너무 슬퍼요. (일부) 고국 친구들이 끔찍한 세월호 참사를 보고도 행동하지 않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시위에 참여해본 적 없었지만 지금은 반성하고 있어요."

이날 70여명(독일 경찰 추산)이 넘는 많은 한국교민들이 침묵시위에 나선 것은 독일교민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역할을 하는 '베를린리포트'에 글이 한 편 올라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70여 명이라는 시위대의 숫자가 턱없이 적게 느껴질지는 몰라도, 이곳 베를린에서는 3만 촛불의 열기가 부럽지 않을 큰 숫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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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에 참여한 독일인 빈프리드푸힌거씨(Winfried Puch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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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이후에 무능한 모습만 보여주다 결국 유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만 안겨주는 정부의 모습 역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잊지 않고 현실을 바꾸는 것이 죽은 분들에게 진정한 애도를 표하는 길입니다. 이에 우리는 '잊지 않겠다'라는 모토로 5월 18일 오후에 침묵행진을 하기로 했습니다.' – 베를린 리포트의 세월호 참사 침묵행진 제안 글

이 글을 쓴 한상원씨에게 세월호 침묵시위를 제안하게 된 동기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분향소가 베를린에 설치되었을 때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셔서 많이 놀랐었습니다. 그 후, 애도를 넘는 분노와 세월호 유가족들의 요구안을 연대, 지지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이날 시위행렬 맨 앞에 선 독일인 빈프리드푸힌거(Winfried Puchinger)씨는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라며 "세월호는 운항하지 말았어야 했다, 한국의 잘못된 미디어, 정권을 이제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을 수첩에 적는데, 순간 눈물이 울컥했습니다. 한국의 문제를 한국인이 아닌 독일인으로부터 들으니 새삼 한국의 현실이 분하고 억울하기까지 했습니다.

5·18과 세월호 참사 공통점은 국가·언론의 죽음

이후 저는 독일에서 한국의 위안부 문제 등, 한국 역사와 시대과제를 연구하고 알리는 뜻 깊은 역할을 하고 있는 코리아페어반트(Koreaverband)의 한정화 대표에게 5.18을 기념하는 날, 세월호 참사를 규탄하는 집회에 참가하게 된 심정을 물었습니다.

"저희는 매해 교민들과 5.18을 기념하는 5월 민중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17일부터 이번 민중제를 진행한 뒤, 세월호 집회소식을 듣고 참석하게 되었어요. 34년 전 광주민주화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대표 외신이 바로 독일 언론입니다. 5.18이나 세월호 모두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러고 보니 1980년 5월 18일, 전두환에 의해 광주에서 벌어진 참혹한 만행을 당시 다른 지역 사람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한국 언론들이 침묵하고 있었을 때, 언론들이 정부로부터 받은 내용을 그저 줄줄이 보도하기만 했던 때, 독일 제1 공영방송 ARD 기자였던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는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 국민들과 전 세계에 광주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당시 영상을 검색해보니 평소 제가 즐겨보던 독일대표 뉴스 <타게스샤우>(Tagesschau, 독일 제1공영방송의 뉴스)가 34년 전 보도했던 광주 관련 소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타게스샤우>를 방송하는 ARD는 한국으로 따지면 KBS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34년 전 KBS는 무엇을 보도 했을까요? 지금, 기자정신을 되살려 참 언론을 만들려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와 KBS 노동조합(구노조) 등에게 국민들이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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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츠다머플라츠의 세월호 추모 교민 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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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 2012년 MBC파업 이후, 뿔뿔이 흩어진 MBC출신 기자들은 새로운 대안언론으로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독일 교민들 사이에서도 세월호 참사에 대해 진실을 보도하는 독립 언론, 대안언론들을 실질적으로 후원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온라인상에서 모금운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걷다보니, 교민들의 세월호 시위대는 어느덧 베를린 장벽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비에 젖은 베를린의 아스팔트를 걷는 순간, 제 귓속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들었습니다.

80년 광주에서 무참히 희생당한 이들을 위한 노래, 내 고국에서는 5.18 기념식에서 제대로 울려 퍼지지 못한 노래를 교민들과 베를린에서 목청껏 불러봤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34년 후를 상상해보니 무섭습니다.

80년 5.18의 34년 후인 오늘처럼, 세월호도 그러할까봐. 지나온 과거사 청산도 못하고 있는 우리가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무섭습니다.

참으로 잔인한 5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