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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성희롱 판단 기준.

후암동남산 2014. 9. 26. 16:31

'애매한' 성희롱 판단 기준.."커피 타와"는 희롱 아닌 性차별박희태-골프장 캐디 사건으로  본 性희롱·性추행

박희태(76) 전 국회의장이 골프장 캐디 성추행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박 전 의장은 피해자 측과 합의하고, 피해자도 고소 취하 의사를 밝혔지만 경찰은 박 전 의장 소환조사 등 수사를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성추행에 대한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폐지됐기 때문이다. 법원에서도 최근 성추행 범죄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판결을 내놓고 있다. 성추행뿐 아니라 성희롱 역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가해자에 대한 징계조치뿐 아니라 특별법 등을 통한 법적 제재가 확대되고 있다. 주변에서 쉽게 발생할 수 있는 성희롱·성추행 등의 성폭력 사례와 함께 피해자 보호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최근 추세 등을 자세히 살펴본다.

1. 성희롱 판단 기준은

성추행과 마찬가지로 성희롱 역시 성범죄의 하나인데 성희롱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게 더 까다롭다. 성추행이 주로 신체 접촉으로 발생한다면 성희롱은 말이나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발전기본법 제3조 제4호에서 성희롱은 "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에서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해 성적 언동 등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 "상대방이 성적 언동이나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성희롱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 기준인 피해자의 느낌, 상황과 다른 일반인이 피해자 입장에 처했을 때 성적 불쾌감, 모욕감을 느낄 만했는지를 판단하는 객관적 기준을 함께 고려한다.

2. 어디까지 성희롱인가

성희롱은 크게 시각적 성희롱, 언어적 성희롱으로 나뉜다. 음란한 농담을 하거나 외모에 대해 성적인 비유를 하는 경우가 언어적 성희롱이다.

음란한 사진, 그림, 낙서 등을 보여주는 행위는 시각적 성희롱이다. 성희롱과 성차별은 다소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을 여성의 누드사진으로 바꾸고 여직원에게 자랑한다면 시각적 성희롱에 해당한다.

그러나 직장상사가 여직원에게 "○○ 씨는 커피나 타와"라고 요구한다면, 성적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부당한 요구를 한 것이기 때문에 성희롱이 아닌 성차별이 된다.

3. 직장내 대표적 성추행·성희롱

직장 내 성추행과 성희롱은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 동료 사이, 직원과 외부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이 중 직원과 외부인 사이의 성희롱은 하청업체 직원 혹은 바이어 등 확실한 갑을 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그만큼 피해를 감추는 경향이 강하다.

직장 내 성추행은 주로 업무를 가장해 신체접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컴퓨터를 가르쳐 준다면서 어깨를 끌어안는 행위, 회식자리에서 친근함을 표현한다면서 억지로 신체를 접촉하는 행위, 서류를 건네받을 때 손을 쓰다듬는 행위 등이 있다. 복도에서 지나가면서 엉덩이를 치는 행위도 대표적 유형에 해당한다.

신입사원 면접에서 사장이 응시자에게 "만약 6개월을 못 채우면 멀리 나가서 나와 하룻밤을 자야 한다"고 농담조로 한 말은 엄연히 성희롱이다. 또 사무실에서 음란물을 보며 함께 보기를 권유하거나 사내 게시판에 게시하는 행위 역시 성희롱이다.

4. 최근 문제되는 유형은

최근에는 스마트폰, 사내 메신저 등 통신 및 전자기기를 이용한 성추행과 성희롱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글·동영상을 상대방에게 전달한 자는 성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처벌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성희롱으로 권고결정을 내린 사례를 살펴보면 사장이 업무상 등록한 메신저를 이용해 사원에게 "내 애인을 해라" "남편만 보고 살 거야?" "내게 맘 주고, 정 주고, 몸도 주고 해봐"라고 메시지를 남긴 경우도 있었다.

5. 성추행·성희롱 왜 많이 발생하나

성희롱은 사회의 잘못된 성인식과 사회문화적 규범 때문에 많이 발생한다. 남자다움, 여자다움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대표적이다.

또 조직 내 권력관계가 수직적일 경우 높은 지위에 있는 자가 권력을 이용해 성추행·성희롱을 저지르고,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특히 성추행, 성희롱이 발생해도 피해자들은 직장생활이 힘들어질 것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서 대처를 포기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6. 직장내 성희롱 처리 어떻게

언어적 성희롱만으로는 관련 법적 처벌 근거규정이 없기 때문에 처벌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 제소 등을 통해 징계처분을 받도록 하는 방법은 있다. 또 성희롱이 발생해 피해자가 사실을 회사나 기관에 알리면, 사업주나 기관장은 가해자에게 사내 징계를 내려야 한다. 공공기관의 경우 성희롱 사실을 확인한 기관장이 가해자에게 적절한 징계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기관장은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정도가 심한 성희롱이 발생할 경우 모욕죄나 성폭력범죄특례법 등에 의해 수사기관에 고소가 가능하다.

7. 성추행에 대한 법적 정의

성추행은 성욕의 자극, 흥분을 목적으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성적 수치, 혐오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신체접촉이 동반된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성추행은 일반적으로 형법상 강제추행죄로 처벌받게 된다. 이 외에도 성폭력범죄특례법에서는 친족관계, 장애인, 13세 미만 미성년자, 업무상 위력, 공중밀집 장소 등의 강제추행으로 세분화해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성추행의 상위 개념인 성폭력은 '성과 관련된 가해행위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뤄지는 모든 가해행위'를 말한다. 성폭력은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강간) 등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8. 판례상 성추행 판단 기준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통해 추행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 같은 강압이 없었더라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수치심을 유발하는 신체접촉을 했다면 폭넓게 성추행으로 인정하는 것이 법원 판례다. 지난 1월 서울고법은 초등학생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한모(68)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1500만 원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했다. 한 씨는 지난해 5월 서울 강서구의 한 공원에서 초등학교 4학년 박모 양에게 악수를 청했고 박 양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한 씨는 우발적으로 입맞춤한 것일 뿐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공원에서 성적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킨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지난 5월 대전고법은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에게 "왜 술을 안 마시느냐"며 신체부위를 치고, 귀갓길에 어깨에 손을 올린 혐의 등으로 기소된 A(36) 씨에 대해 원심처럼 벌금 600만 원을 선고했다. A 씨는 성적 만족을 추구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9. 성추행 인정땐 어떤 처벌

형법상 강제추행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피해자가 청소년이라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이 적용돼 더욱 엄하게 처벌받는다. 아청법상 강제추행 혐의는 2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사건에 따라서 가해자의 신상정보가 등록될 수도 있다. 성추행 피해자를 상해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성추행이 미수에 그친 경우에도 처벌받는다.

10. 피해자와 합의·음주 여부와 처벌

성범죄에 대해 피해자의 고소가 유지돼야만 처벌을 할 수 있는 친고죄 적용이 2013년 6월 폐지되면서 성추행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한 경우라도 처벌을 면할 수 없다. 피해자가 아닌 목격자 등 제3자가 수사기관에 고발해도 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

반의사불벌죄 조항도 폐지돼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더라도 수사기관의 판단에 따라 기소할 수 있다. 다만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는 정상 참작의 조건은 된다. 지난해 6월 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는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범죄를 한 경우 형법상 감경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올해 1월 대전고법 청주형사1부는 이혼한 전처의 10대 여조카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오모(48) 씨에게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고 무기징역을 선고, 바뀐 규정을 처음 적용했다. 성폭행뿐 아니라 성추행 범죄에서도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은 인정받기 어렵다.

유현진·김동하 기자 cworange@munhwa.com